"논문 쓰는 고등학생? 우리 사회 공정 돌아보는 계기 되길"
[이영광 기자]
몇 년 전부터 미성년자의 논문 등재에 대한 의혹이 잇따랐다. 교육부는 지난 4월 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발표에 따르면 2017~2018년 발표된 논문 중 미성년자가 공저자인 논문은 총 1033건이었다. 그리고 이 중 96건의 논문이 부정이라고 판단했다. 미성년자는 어떻게 논문의 공저자가 됐을까.
지난 17일 MBC < PD수첩 > '부모 찬스! 논문 쓰는 고등학생들' 편이 방송되었다. 탐사 전문 매체인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공동 기획으로 준비한 이날 방송에서는 부정 논문의 사례들이 소개됐다. 당사자들의 입장 또한 들어봤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8일 '부모 찬스! 논문 쓰는 고등학생들' 편을 취재한 이중각 MBC PD·진실탐사그룹 '셜록' 황정빈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 < PD수첩 >의 한 장면. |
ⓒ MBC |
- MBC <PD수첩 >과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협업으로 방송을 만들었는데요. 소회가 어떠세요?
이중각 PD(이하 이): "미성년 공저자 문제가 아주 보편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그 기회를 이용해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물론 그분들 자격을 박탈하고 다시 원위치시켜야 한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황정빈 기자(이하 황): "저도 누구의 처벌을 원해서 취재 시작한 건 아니고요. 특권 가진 층들이 자녀한테 편법으로 기회를 주는 것을 보도해서 직업의 대물림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반성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거죠."
- 고등학생의 연구 부정(不正) 논문은 어떻게 취재하게 되셨나요.
황: "작년 10월 국정감사 때 서울대 미성년 공저자 논문이 64건었어요. 그중에 34%가 연구 부정 논문이라는 보도자료를 보고 '미성년자들이 어떻게 논문에 이름을 올리게 됐지? 이들은 누구고 이 논문을 이용해 대학에 갔을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등의 의문이 들었죠. 그 뒤의 스토리가 궁금해서 취재하게 됐죠."
- 미성년자가 진짜로 논문 쓰는 경우도 있나요?
황: "똑똑한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쓰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거의 34%나 된다는 점에 많이 놀랐죠. 논문에 이름을 올린 친구들이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는 논문이 하나의 스펙으로 쓰일 수 있어요. 이 친구들이 논문 발표 사실을 지원서류나 자기소개서에 기재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기에 부당하게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경우가 발생한 거죠."
- 지금은 그런 사례가 없나요?
황: "네, 지금은 이런 사례가 많이 발각돼 교육부가 논문 발표한 사실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 대학이 고등학생에게 왜 논문 등을 요구하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황: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요. 연구에 참여해서 경험을 쌓은 정도까지는 이해하는데 굳이 논문에 이름까지 올리고 그 논문 참여를 점수에 왜 반영해 줬는지 이해가 안 가요. 똑똑한 친구들을 선별하겠다는 취지였는데 그 과정에서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 2017~2018년 발표된 논문 중 미성년자가 공저자인 논문은 1033건이고 96건에 이름 올린 고등학생이 부당 저자란 거잖아요. 그럼 나머지는 문제가 없는 건가요?
이: "교육부가 직접 판단한 게 아니라 논문이 발표된 소속 대학교 연구윤리팀을 통해 진상 조사한 거잖아요. 그 사람들의 양심과 상식을 믿어야죠.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는 미성년자가 논문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음을 입증하는 자료,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면 부당 등재라고 결론 내렸더라고요. 다른 대학은 알 수가 없죠."
황: "지금 서울대 연구 부정 건수가 22건으로 제일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연구 부정 건수가 없는 대학도 있고 한 건밖에 안 되는 대학도 있고요. 그럼 서울대가 제일 부패해서 제일 많이 나왔냐. 조사 강도가 달랐을 수도 있죠. 아무래도 운 좋게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 처음에 취재는 뭐부터 하셨어요?
황: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실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사례들을 먼저 취재했거든요. 왜냐하면 보도자료에는 부정 판정 받은 논문이 실린 저널명이 적혀 있어서 해당 논문을 추적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네 건의 사례들 먼저 취재했어요."
- 서울대 위주로 취재한 이유가 있을까요?
황: "일단은 서울대가 갖는 상징성이 있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최고 대학이라고 불리고 공적 재원이 가장 많이 투입되는 대학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겠다고 생각해서 서울대 교수들의 논문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게 됐습니다."
- 교신저자(학술지 편집자 또는 다른 연구자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저자)가 1·2·3 저자를 정하는 것 같은데, 몇 번째 저자인지도 중요한가요?
황: "저자 순서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1저자가 그 논문을 제일 잘 아는 저자인 거죠. 논문에 기여한 순서로 정해져요. 그래도 미성년자가 2저자 정도면 엄청 높은 스펙인 거죠. 그런 친구들은 강력한 스펙을 갖는 셈이죠."
- 교신저자의 권력이 큰 셈이네요.
이: "엄창섭 대학 연구윤리학회장님 말씀으로는 논문 저자 부정 등재의 사례가 두 가지 있다는 거예요. 하나는 기여가 없는 사람을 올리는 것, 또 하나는 기여를 했음에도 논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경우요. 실제 후자의 경우도 많다는 거예요. 그건 결국 교신저자가 정하는 거죠."
- 대부분 교수가 품앗이하듯 동료 교수 자녀를 공저자로 올리는 건가요?
황: "'내가 네 자녀 이름을 올려줄 테니까 너도 내 자녀를 올려줘라'라고 한 사례는 밝혀진 게 없고요. 협력 관계라던가 친분 등을 이용해서 자녀를 올려주는 형태였던 것 같아요."
- 이렇게 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뭘까요?
황: "저런 연구에 참여하고 싶고 논문을 써보고 싶은데 내 부모가 교수가 아니고 아는 교수가 없으면 나는 그런 기회를 못 갖는 거잖아요. 그런데 부모가 교수면 기회를 너무 쉽게 가지게 되고. 기회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거죠."
- 제자 교수에게 지시해서 자녀의 이름 올린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위계의 문제도 있나봐요.
황: "사실 교수님의 영향력과 권위가 그 안에 있으면 막강하다고 해요. 그러니까 선배 교수가 부탁했는데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 부당 저자 96건 중 5명만 입학 취소가 된 거로 나오던데요. 나머지 91명의 입학 취소는 왜 안된 건가요?
이: "일단 96건 중 미성년 저자들은 82명이었죠. 그런데 국내 대학에 진학한 수가 46명, 해외 대학에 진학한 수가 36명이에요. 국내 대학 진학 학생 중 10명이 논문 발표를 입시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고, 나머지는 입시에 활용하지 않았거나 입시자료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외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교육부 소관이 아니다 보니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요."
- 정말로 입시에 활용을 안 한 걸 까요. 아니면 못 밝혀낸 걸까요.
황: "못 밝혀냈을 수도 있고 논문 자체를 활용하지 않았어도 논문을 활용해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거나 혹은 다른 대회에 나가서 수상했을 수도 있죠. 혹은 그 논문을 학교에 제출해서 교내 우수 논문상을 받거나 수상 경력 등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입학이 취소된 친구도 있고요. 근데 교육부가 논문 자체를 안 적었다는 이유로 그런 걸 다 빠뜨린 거죠."
- 만약 논문으로 상을 받고 그 수상 경력으로 대학에 갔다면, 그것도 문제잖아요.
황: "입시 서류에 논문은 기재 안 했고 그 논문을 활용해서 수상한 내용을 기재했다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논문이 아니었다면 수상을 할 수 없었을 텐데 그런 것까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까지 철저하게 조사한 것 같지는 않아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이: "일단 서울대가 저자 부정 등재라고 판정한 건수가 제일 많기는 했는데 나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엄중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동료 교수들이잖아요. 또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로 불리는 사람들,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기들끼리 알음알음 도와주고 당겨주는 문화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황: "저는 교수 사회, 학계에 실망을 많이 했고요. 반성하는 교수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어요. '학자로서 내가 당시 연구 윤리가 좀 부족했다. 그랬으면 안 되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해서 올렸다'라고 사과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렇게 나오는 교수님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오히려 대부분 뭐가 잘못됐냐고 물었어요. 그런 태도가 참담했어요. 엘리트로서 사회에 불신을 심어줬고 박탈감을 느끼게 했으면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게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그나마 일부 학회에서 논문을 철회하는 움직임을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황: "어려운 점은 미성년 부당 저자가 누구고 그 교수가 누구인지 개인정보라 쉽게 알 수 없었어요. 제가 탐정처럼 수소문해서 찾아야 되는 과정들이 어려웠고요. 아무래도 학계가 굉장히 좁기 때문에 내부 고발자가 나오기 힘들어요. 누군가가 이 사안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취재하는 데 있어서 장벽이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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