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으로 만나는 훈민정음.. "책임감 많이 느껴"
[박순영 기자]
▲ 국립합창단 '훈민정음' 초연.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살린 웅장하고 섬세한 음악과 대본, 연출로 한국인의 자긍심을 세워주었다. |
ⓒ 국립합창단 |
작년 10월 한글날을 맞아 초연된 창작합창서사시 <훈민정음>의 감동이 또다시 찾아온다!
오는 5월 31일 저녁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합창단(예술감독 윤의중) K-클래식 시리즈 2022시즌 첫 번째로 <훈민정음>이 재공연된다.
이 작품은 우리 정서에 더욱 맞게 대취타 장면에 나발을 넣고 소금/대금 연주자, 태평소/피리 연주자 등 국악기가 첨가되었다. 또한 초연 이후 지방시립관현악단에서도 공연요청이 많아서, 이번에는 음악적 구성적으로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당시에 세종대왕이 비밀리에 한글 만드는 것을 진행하셨는데요. 10년 동안 조선초기의 불교, 몽골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연구하신 겁니다. 이 부분을 신비롭고 특색있는 음색으로 하고 싶어서 '운라'라는 악기를 사용했습니다."
2부 1곡 '비밀의 방' 부분인데 이 부분은 영상에 한글이 익살스럽게 애니메이션을 펼치며 재밌었던 부분이다. 여기에 '운라'가 어떻게 신비로움을 더할지 궁금해진다.
이렇게 한 시간 반의 대규모 합창곡을 오랜기간 작업하면 어떤 느낌일까.
"작업 초기 두 달 동안 제가 만주벌판에서 말을 타고 달렸죠. 제작 회의 때 <훈민정음> 대본의 탁계석 선생님께서 '위화도 회군'을 말씀하셨어요. 최영 장군은 고려를 넓히자 요동 지역을 정벌하자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전쟁으로 죽어가는 백성을 생각하면 정벌할 수 없었던 겁니다. 저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중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라는 부분에 나타난 애민정신도 이 태조 때부터 깃든 정신 아닌가 생각합니다."
▲ 국립합창단 '훈민정음' 초연. 세종대왕 역 바리톤 김진추가 백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중후한 목소리로 잘 표현해주었다. |
ⓒ 국립합창단 |
"고려시대 귀족은 사치품에 향락이 가득했던 반면 궁궐 밖 거리에는 굶어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가득했다고 해요. 이게 조선초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세종 5년에 '백성이 나무껍데기를 먹고 흙을 파서 떡이나 죽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더라고요. 백성들의 힘든 삶을 함께 살기 위해 세종대왕이 경회루 앞에 초가집을 짓고 2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글자를 몰라 불리한 상황을 당할 수밖에 없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세종대왕이 한글 28자를 짓고, 한글의 창체원리와 그 기쁨, 세종대왕의 아내 소헌왕후의 남편이 훌륭한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세종대왕의 백성을 향한 가득한 사랑이 합창서사시 <훈민정음> 무대에서 음악과 가사, 영상으로 멋지게 표현되고 있다.
그럼 <훈민정음> 실제 제작과정은 어떤지 궁금하다.
2020년 하반기에 탁계석 평론가가 국립합창단 윤의중 예술감독에게 한글날 기념작품을 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3개월간 탁계석 대본, 오병희 작곡, 안지선 연출/각색의 제작준비가 각자의 리서치로 시작되었다. 2월부터 5월까지 본격 구성회의를 다섯 차례 가지면서 작품의 구성, 악장, 장면, 가사, 음악적 색채 등을 구체화했다.
"정말 로켓배송, 새벽배송이에요." 인터뷰 중인 오병희 작곡가가 말한다. "보통 대본가들은 자신의 가사를 안 바꿔요. 그건 작곡가 중에도 마찬가지지만, 서로 수정이 안 되면 작품의 방향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죠. 기획 단계부터 초점을 세종대왕으로 할 것인가에서 제가 '한글'로 하자하니 탁계석선생님께서 바로 '그럼 정공법으로 <훈민정음>으로 합시다' 하셨어요."
"그리고 4월부터 가사 만들 때에도 대본가 탁계석 선생님께서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음악적인 가이드를 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첫 악장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것으로 하자' 하시면 저는 조선의 '첫 여섯 왕이 앞에서 노래하는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려요. 세종과 이성계, 그리고 이성계의 조상 네 분 이렇게 여섯 왕이에요. 마치 그리스 신화 같죠. '용비어천가 125장을 제가 축약해서 끌어내는 가사를 만들 테니까 선생님께서는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가사를 주세요' 하면 또 빠르게 가사를 새벽에도 주세요. 이게 작업이 제일 빨라요."
여기에 대해 대본의 탁계석 평론가는 말한다. "작품이 좋게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하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수정 작업하면 글 양이 세 배가 되니까 대본료를 세 배, 뭐 이런 식으로 요구하는데 작업예산이나 실제 작업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잖아요. 서로 빠르게 수정하고 협력해야 되죠."
다시 오병희 작곡가로 돌아와서, <훈민정음> 작업은 오병희 작곡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훈민정음'을 작곡한 오병희 작곡가는 "클래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대중성과 예술성, 상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 국립합창단 |
우리 문화에 대한 책임감도 언급했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로 우리 문화를 전세계에 알렸잖아요. 너무 감동적이죠. 저의 <훈민정음> '반포' 부분에도 대취타가 들어갔는데요. 클래식 작곡가들이 우리 문화를 발굴하고 대중에게 쉽게 좋은 작품으로 전달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더 많이 느꼈습니다."
오병희 작곡가는 작년까지 국립합창단 작곡가 활동을 마쳤다. 국립합창단 전속작곡가로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공모선발해서 원래 1년씩 계약인데 제가 매해 연장되어 4년을 국립합창단에서 일했어요. 저는 원래 성가 작곡가였어요. 시립합창단에서 위촉작곡가로 활동을 많이 했고요. 국립합창단 작곡가가 되면서 기념곡을 많이 쓰게 되고요. 2관 편성의 한 시간 넘는 대규모 작곡을 하면서 애국심이 어마어마하게 생겼어요."
오병희 작곡가가 바라는 클래식의 방향을 말했다.
"클래식이 위축되는 게 안타깝죠. 대학에서 클래식 음악학과가 축소되고 실용음악과로 바뀌는 학교도 있고요. 1980~1990년대는 클래식음악이 음악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대중문화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어려워보였던 창작뮤지컬은 엄청 많이 발전했잖아요. 그렇듯이 분명 클래식을 베이스로 좋은 장점을 발휘해서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옛날처럼 그냥 공연을 하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요."
이어서 말했다. "코로나 시대를 통해서 클래식 연주자들이 다양한 방면을 모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을 현장감있게 실시간 스트리밍하면서 라이브의 소리나 영상, 의상 등을 전달하고요. 대중의 기호도 맞추어 전략을 가지고 진보해야 하지 않을까. 클래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대중성과 예술성, 상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립합창단 K-클래식 시리즈인 <훈민정음>을 작곡한 오병희 작곡가의 포부대로 클래식계가 방향을 가진다면 이는 한 작곡가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 뿐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나라의 합창단인 국립합창단의 비전이 성공하고 창작과 순수예술이 일상생활에 균형을 주는, 그야말로 훈민정음 반포처럼 또 하나의 건국이 이루어짐과 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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