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타자기 치는 남자'의 시대와 정치

2022. 5. 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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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타자기 치는 남자’의 시대와 정치

1980년대는 최루탄 연기로 가득했다. 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 10·26 사태가 불러온 ‘서울의 봄’은 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5·17 비상계엄조치에 의해 ‘죽음의 봄’으로 싸늘해졌다. 대학가(街)는 전투경찰이 상주해 있었고 위장 경찰도 강의를 들었다. 시위 진압용 가스 차와 경찰버스 ‘닭장차’ 가 한국 사회 도로를 점령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의 저항은 거세졌고 신군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5·18 내란음모 사건 주범으로 조작한다. 이 ‘조작’ 사건으로 수많은 민주투사와 정치인들이 감옥으로 보내졌고 신군부의 ‘타자기 소리’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작과 은폐의 도구가 되어 있었다. ‘타자기’ 치는 공안 경찰과 검사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좌공, 용공 세력들을 색출해냈고 좌·우 이념과 무관하게 수많은 대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70∼80년대를 뜨겁게 거친 세대들은 대통령으로 정치 거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인물들이 되었고 한국 사회의 타자기 소리는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고철로 퇴화해 갔다. ‘서울의 봄’을 거친 386세대 정치인 일부는 시대의 매서운 저항과 열사들의 죽음, 민주화 함성을 뒤로한 채 시대의 감성을 소환하며 정치 거물(巨物)이 되어 있다.

올해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 극단 ‘명작 옥수수 밭’<타자기 치는 남자>( 차근호 작, 최원종 연출 5.7~5,15, 아트원씨어터 3관, 기획 아트리버, 대표 김효준)은 2021년 초연을 거쳐 그해 대산문학상(희곡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자행된 ‘삼청교육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해 5·18의 광주의 전남도청은 계엄군의 공격으로 시민들의 시체 더미로 넘쳐 났고 시민군의 격렬한 저항과 함성은 군홧발로, 총탄으로 삼켜졌다. 광주 ‘전일빌딩’에 박혀있는 탄흔은 계엄군의 헬기 사격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데도 진실은 침묵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사태가 일어나던 해 신군부는 정권과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계엄포고령 13호’를 선포했다. 이어 ‘삼청5호’ 계획에 따라 사회정화사업 명목으로 이름만 들어도 살벌하고 소름 돋는 ‘삼청교육대’를 신설하게 된다. 당시 공안 경찰의 타자기 소리로 다듬어진 시대의 은밀한 정보와 보고서는 조작과 은폐의 소리였고 민주화를 외치던 항쟁의 소리는 최루탄의 죽음으로 쓰러져 갔다. 고문실 탁자 소리로 ‘억’하고 죽어가던 시대였으니 저항은 곧 좌경용공 세력으로 몰리며 구타와 전기, 욕조의 물로 사라져 가는 죽음을 의미했다.

차근호 작가는 이 시대 대공 경찰인 극중 인물 경구(최무인 분)와 8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지식인 문식(김동현 분)을 통해 국가 폭력의 상징이 된 삼청교육대를 소환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의 삼청교육대는 1980년부터 1981년까지 군부대에 삼청교육대를 설치해 일반 시민을 구금하고 ‘보호 감호’ 등의 명목으로 ‘순화교육’과 강제 노역, 구타, 가혹행위 등을 자행했다. 영장 없이 검거한 인원은 60,755명이었고 실제 삼청교육대 지옥 훈련을 받은 인원은 40,347명 정도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2)가 밝혔으나 명단으로 존재하지 않는 국가폭력 가해자는 더 많을 것이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대상자는 일부 사회정화 문란 및 흉악범으로 분류된 조폭, 범죄자를 비롯해 운동권 학생, 정치인과 코미디언, 초·중·고등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길다가 끌려온 사람, 싸움 말리다 삼청교육대로 보내온 사람, 구두 닦기를 하던 어린 소년 등 연고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인권이 상실된 삼청교육대 지옥 훈련을 견디고 받아야 했다.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학교폭력 가해자들이었는데 인원 조달을 위해 국가공문으로 하달된 전국 고등학교에서 기준도 없이 선별해 삼청교육대로 보내진 학생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 선생님의 훈화 정도면 될 만한 피해자들도 있었다. 대법은 계엄포고 13호는 위헌이라는 결정(2018)을 내렸다. 어린 나이에 국가폭력을 견디지 못해 삼청교육대를 탈출한 뒤 계엄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은 한일영 씨는 2020년에 40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었다. 한 씨는 “당시 법이 정확하게 판결했어도 40년 동안 힘들게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하며 날 것의 울음을 들어내던 장면은 국가폭력의 만행과 잔인한 역사를 실감하게 했다. 삼청교육대 실체적 진상규명과 보상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은 전두환의 죽음으로 규명되지 못하고 80년대 타자기 소리만 살아있다.

| 지식인의 책 그리고 타자기 소리

80년대 타자기와 원고지로 써 내려간 시와 소설은 신군부시대의 검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는 시대의 저항으로, 은유의 말들로 채워져 시대의 ‘타는 목마름’으로 절규했고 한국사회는 글과 소리, 민주열사 죽음의 거름으로 민주국가가 되어갔다.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길목을 투영하며 80년대 삼청교육대의 폭력성을 지워낼 수 없는 시절을 돌아간다. 정확한 작가의 시대적 배경은 1983년도로 삼청교육대 종료 시점 2년 후가 된다. 50년생 문식(김동현 분)은 한국 전쟁 통에 태어나 70년대 유신시대를 거치며 시인과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도였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지식인이다. 문식은 80년도 교사 시절 학교로 하달된 삼청교육대 문제아 명단색출에 당시 제자인 극중 인물 문형원(오민석 분) 이름을 제출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62년생 고등학교 2학년 형원은 81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414번을 달고 삼청교육대 훈련소에서 폭력과 인권을 유린 당하게 되고 지워낼 수 없는 얼굴의 화상자국은 그 시대의 잔혹한 폭력을 환기하게 된다.

연극으로 돌아가 보자. 허름한 세운상가 안의 글짓기 학원이 무대공간이다. 우측에는 학생들이 글짓기를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앞으로는 대형 칠판과 작은 창문이 보이고 그 위로는 액자의 태극기가 비스듬히 걸려있다. 온전하지 못한 채 걸려 있는 80년대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신군부의 등장으로 권력을 탈취한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며 시민과 학생들의 균열 적인 시선으로 투영된다. 그 앞으로는 책상 6개 정도가 놓여 있고 좌측으로는 문식이 생활공간으로 원장실이다. 주변에는 소주병과 식기들이 널려있고, 그 뒤편 벽으로 문식이 70년대 군부정권을 지나며 대학시절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책들이 책장에 쌓여있다. 문식은 제자 문형원을 삼청교육대에 보낸 뒤 그 죄책감으로 국어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글짓기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왜 문식이 글짓기 학원을 운영하는 곳이 세운상가로 설정했을까. 생각해 보면, 지금과 다르게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건축된 세운상가는 1969년도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욱 서울시장이 준공 테이프를 끊으면서 산업화 시대의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상가를 중심으로 청계천 쪽과 을지로로 이어지며 1962년부터 1972년까지 상가와 고급 타운이 조성되었고 1981년 마지막으로 지어진 1개 동 건물이 풍전호텔이었다.

세운상가는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으로 세운(世運)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로는 최대 규모였고, 건물에는 최신식 맨션아파트로 지어져 70∼80년대에는 정치인들과 부자들이 살았다. “여기는 장사가 좀 됩니까? (중략) 그래도 세운상가인데 어떤가 싶어서요.” 경구의 말에 문식은 “학원 상가에 있다 보니까 수업 환경은 좋아요. 낮에만 좀 시끌벅적하고 다른 시간에는 조용하거든요, 공부하려면 일단 조용한 게 최고죠” 두 남자의 대화로 유추하면 당시 세운상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원을 운영하기 수월했던 부촌으로 형성된 지역이었고 장소였다. 연극 <타지기 치는 남자>은 공안 형사인 경구(최무인 분)가 상부에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하기 위해 글짓기를 배우기 위해 학원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고 경구는 학원으로 들어오자마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태극기 액자를 바로 잡는다. 비스듬한 태극기는 민주국가로 성숙되지 않은 채로 균열이 가 있으며 문식에게 신군부는 지식인으로 저항해야 할 대상이 되면서도 형원이의 사건과 트라우마로 매몰되어 있다. 70년대 유신과 군부시절 학습된 문식의 지식은 타는 목마름으로 사회와 국가로 토해 낼 수 없는 박제(剝製)되어 있는 지식(知識)이자 죄의식으로 살아야 할 문장의 도구일 뿐이다.

| ‘타자기 치는 남자’의 나이를 묻지 마세요.

무대가 시작과 함께 장면 전환마다 방미의 ‘올 가을엔 사랑 할거야’를 반복적으로 설정하는데 “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중략)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거야”라는 가사와 멜로디가 묘한 현대사의 아픔을 파동(波動) 시키는데 극중 장면으로 물리는 방미의 허스키한 멜로디와 가사는 군부독재와 신군부 시대를 거쳐 윤석열 정부까지 지울 수 없는 한국 사회 참혹한 민낯의 역사로 들려진다. 나이를 먹어도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고문실에서, 시대의 죽음으로 망자가 되어간 폭력의 80년대 현대사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다. 실체적 진실이 밝혀졌을 때 비로소 용서할 수 있는 과거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공안 경찰인 것을 눈치 챈 문식은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문식이 불러준 ‘영희와 철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만나기로 했습니다.’라는 문장도 언제, 어디서, 왜 만났는지, 구체적으로 몇 살인지가 중요한 공안 경찰(경구)이다. 문식은 이 말을 듣고 소설의 허구처럼 철수와 영희의 존재를 육하원칙에 따라 상상으로 말해주는데 경구에게 이 문장의 의미는 철수와 영희가 만난 자체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사건 수첩으로 기록된 육하원칙의 시간과 대상들은 공안경찰들이 그려낸 수첩의 소설로 사실처럼 기록되고 은폐되어 왔을 것이다.

문식이 불러주는 두 번째 받아쓰기 하는 장면이다. ‘철수는 영희와 헤어지고 오랜 짝사랑의 상대였던 민영과 결혼했다’를 “철수 이 새끼는 민영이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영희를 미끼로 쓴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히 전력 전술을 세워서 영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포섭한 겁니다.”로 해석되고 맞춤법이 틀려도 각인(刻印) 되어 있는 것은 국가에 충성해야 할 공안 경찰로 애국가 가사와 노랫소리다. 문식은 경구한테 책을 읽고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위해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는데 건네준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입센의 ‘인형의 집’,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E, H 카가 쓴 ‘ 역사란 무엇인가’와 이고 경구가 얇다고 고른 책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다. 경구에게 80년대 신군부의 등장과 국가는 공안 경찰로 좌경, 용공 세력을 색출해 조작과 은폐로 충성을 다해야 하는 시대이며, 그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다. 문식에게 책과 지식은 주어진 라면을 먹으면서도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글짓기의 글들일 뿐이다.

시인과 소설가를 꿈꾸며 군부독재시절 대학을 다니며 읽었을 것 같은 운동권의 필독서 <역사란 무엇인가>(E. H. 카 저)는 책장에 꽂혀 있다. 문식은 더 이상 지식인으로 과거와 현재의 한국 사회 역사를 정의할 수 없으며 80년대 한국 사회의 문제의식과 저항의 소리는 시대를 향해 전진 할 수 없는 구호로 매몰되어 있다. 문식의 지식은 자기반성적 글로 환치(換置)되어 폭력의 시대를 정의하고 비판 할 수 있는 시인으로, 소설로 문장에 메타포가 되어야 함에도 책과 글은 심리적으로 몰락한 지식인의 생계 수단이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안 형사가 된 최경구(최무인 분)는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들은 애국자 맥베스 장군을 선동해 왕을 죽이는 인물이 되고, 마녀들의 존재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80년대 선량한 애국시민을 선동하는 좌경용공 분자로 해석한다. ‘인형의 집’ 노라는 80년대 봉고차 인신매매가 득실거리는 한국 사회에 집을 나가 고생만 하는 철없는 여자일 뿐이며 ‘역사란 무엇인가’는 승자로 기록된 역사가 된다. 살인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까지 끌려간 ‘부활’의 카투사의 이야기는 법과 경찰이 제대로 일을 안 해 좌경, 용공 분자들이 선동해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뼛속까지 80년대 한국 사회 공안 경찰이다.

| 경구의 소설, 문식의 <타자기>

연출은 문형원이 등장하기 이전 장면까지 문식과 경구의 대화로 장면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극 중 장면들이 어긋나지 않고 텍스트가 시대가 포개지는 힘을 발휘하고 서사를 단단하게 압축해 나간다. 최경구로 분한 최무인의 캐릭터와 과장되지 않은 연기는 웃음을 터트리게 하면서도 학생운동을 하다 유치장에 갇힌 붕어와 국가가 좌경, 용공 세력으로 몰고 있는 K를 경구의 대사로 80년대 신군부의 현대사를 소환하는 대화에서는 현대사의 파동을 따라간다. 특히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은 두 배우의 앙상블이 느슨해 보이면서도 장면으로 견고하게 이어져 차근호의 <타자기 치는 남자>를 완성해 내는데 역할을 한다. 특히 문형원 사건으로 죄의식에 사로잡혀 글짓기 학원을 운영하며 자기반성적 태도로 살아가며 80년대 국가의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가해자로 70년대 뜨거웠던 문식의 지식은 저항할 수 없는 지식인으로 80년 시대에 매몰되어버린 지식인 극중 인물 김문식을 배우 김동현은 최무인의 동(動)의 연기를 정(靜)의 연기로 받으며 장면을 그려내는데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으로 소리를 내는 6할은 배우들의 연기로 4할은 작가와 연출의 시선으로 채워진다.

연출은 무대에서 문식의 내면과 무의식으로 존재하는 80년대 고등학생 신분으로 삼청교육대로 보내진 환영(幻影)을 등장시키며 여전히 폭력적인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죄의식으로 시달리게 되는 인물로 문식이 그려지고 이어 무대는 형원의 등장으로 변화되는데 매우 연극적이다. “(중략) 내가 무슨 사고를 쳤었나요? 아, 도시락 몇 개 훔쳐 먹은 거요? 아시잖아요. 우리 집 찢어지게 가난한 거? 너무 배고파서 도시락 좀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죽을죄인가요? (중략) 선생님, 기억하시죠? 우리 반에 진짜 악질 있었던 거. 그 새끼한테 안 맞은 애들 없고, 삥 안 뜯긴 애들도 없었잖아요. 근데 왜 걔가 아니라 저였습니까?(중략)” 형원에게 복수의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문식이로 향한다. 국기 하강식의 80년대 애국가 소리에 형원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국가에 충성을 다 할 수 있는 자세로 태극기를 바라본다.

형원에게 문식은 국가폭력의 가해자이며 복수의 대상이 되기에 삼청교육대 군홧발로 찢긴 살점만큼 선생의 죽음으로 삼청교육대의 국가적 폭력은 치유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무대는 문식과 형원의 장면에서 라면을 직접 끓이고 형원이가 피다 버린 담배꽁초와 침으로 채워진 라면을 먹는 장면은 형원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적 행동과 인간의 굴욕적인 모멸 보다 진심으로 제자 형원을 향해 반성적 태도의 감정으로 전달시키는 김동현의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미장센과 의미를 어려운 연기임에도 그려 냈다. 형원의 지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행동들과 내면의 반응들은 형원을 향해 과거에 대해 속죄하려는 진실로 다가서고 있었고 그렇게 보였다. 작품에서 문식이 80년대 형원을 대상으로 하는 삼청교육대 국가 폭력의 가해자로, 형원은 피해자로 이분법적인 구도로 다소 설정되어 있고 이 시대의 권력의 위계적 질서에 공안 경찰로 복종하고 충성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경구를 극 후반까지 그려내고 있는데 문식, 형원, 경구는 80년대 괴물 같은 시대의 피해자들이다.

공안 경찰로 조작과 은폐의 80년대에 매몰되어 있던 경구의 시대의 의식이 지식인으로 변화되어 자기반성적 태도로 시대를 기록(소설)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식의 책을 통해서다. 두 번째로 책 읽기 독후감을 내준 문구의 책(순수이성비판, 시학, 짜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분석학 입문)과 서울대생 ‘붕어’한테 줄(파우스트) 등을 통해 시대의 저항성을 보이며 비판적 사고로 변화 되어 가는 행동인 반면 문식은 여전히 형원이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80년대 삼청교육대로 보내진 학생들의 환영(幻影)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문식을 통해 보고서 작성을 위해 글짓기를 배우며 맞춤법과 문장쓰기를 배우는 경구는 독후감 숙제로 내준 책의 지식은 자기반성적 태도로 변화하게 된다. 문식이 건네준 책을 읽고 제출해야 할 첫 독후감 소감을 말하는 경구한테 책과 지식은 “이 책들을 읽고 정말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이 세상에 법과 경찰이 왜 필요한지 느꼈거든요. 제 공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됐습니다.” 공안형사로 그가 처음 읽고 해석한 맥베스는 좌공용공 세력의 마녀들이 장군을 선동해 왕을 죽인 인물로 색출해 내는 것처럼 K를 쫓으며 구금되어 있는 운동권 학생 ‘붕어’와 좌경세력으로 조작해 엮는 것이 경구와 신군부의 역할이었다면 문식이가 읽었던 책을 통해 시대의 정의와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마지막 장면의 문식과 대화다. “(중략) 붕어랑 K 두 사람 역으로라고요. 그게 제가 할 일 이라고 했습너다. (사이) 국가보안법은 이 나라를 공산주의에서 지키고 좌경용공 분자들한테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겁니다. 그 법 어디에도, 아무리 좌경용공분자라고 해서 고문해서 죽이라는 조항은 없습니다. 나라에 반감 갖고 있다고 해서 하지도 않은 간첩질했다고 조작하라는 조항도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누가 좋은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인지. (중략) 욕망 때문에 법과 정의를 어긴 맥베스는 선한 자가 아닙니다. 안 그렇습니까? (중략) 악법도 법이다.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법을 만든 사람이 선하지 않으니까요.” 뼛속까지 80년대 공안 경찰인 극중 인물 경구한테 ‘타자기’는 더 이상 K와 붕어를 엮을 수 있는 조작과 은폐의 도구에서 진실과 정의를 기록해야 하는 시대의 정신으로 변화되고 ‘붕어’ 존재는 경구 소설의 문장으로 드러난다.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대학생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이송되었고, 그 학생이 그곳에서 죽었다. 붕어는 죽음으로 화장이 되었고, 경구는 ‘누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인지’ 80년대에 서서 고문으로 좌경, 용공 세력으로 몰려 고문의 후유증으로 망자가 된 시대의 폭력을 소설로 쓰고 기록하게 된다.

문식을 통해 얻게 된 경구의 지식과 ‘타는 목마름’으로 시대를 바라보게 되는 세상이 되며 타자기로 기록된 ‘K’와 ‘붕어’ 관련 소설은 조작과 은폐의 허구가 아니며 진실로 기록되어야 할 80년대 신군부의 역사가 된다. 경구의 타자기를 선물로 받은 문식의 타자기는 그가 꿈꾸던 70년대의 문학도로 시인 저항의 소리로, 시대를 투영하는 소설의 활자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비로소 타자기 소리로 문식의 글이 완성되었을 때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올해 5·18 40주년에도 진실 규명이 안 되는 것처럼 여전히 한국 사회는 과거사와 광주민주화운동의 발포 명령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질 경구와 문식의 타자기 소리가 대한민국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다려지는 이유다. 경구가 소설을 일부를 문식한테 건네고 마지막으로 글짓기 학원에 매달린 태극기를 가져가는 것은 여전히 80년대 폭력의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로 규명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타자기 치는 남자>의 삼청교육대를 배경으로 하는 80년대 폭력의 현대사의 소환은 투박하면서도 담백한 연극을 보는 것 같았으며 특히 두 배우의 연기가 80년대를 그려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형원이 등장하는 앞, 뒤 장면들보다 다소 무겁게 연극적인 장면으로 그려져 문식과 경구의 장면보다 과거의 시간이 툭 튀어나온 느낌이 든다. 80년대의 일상성에서 연극적으로 변화된 느낌이다. 삼청교육대로 보내진 과거 형원의 내면과 시간이 무겁게 전달된다. 연극 <타자기 치는 남자>은 차근호, 최원종 연출의 뚝심이 보이는 작품이다. 80년대 한국 사회 현대사의 파동을 읽고 싶다면 꼭 볼만한 연극으로 추천한다.

▶<타자기 치는 남자>의 차근호 작가는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막희곡 부문에 <천국에서의 5월>(1997)당선되어 희곡작가로 등단하였으며 삼성문학상 장막희곡 부문에 <암흑전설 영웅전>(2000)이 당선되었다. 실험극장 윤우영 연출로 공연된 <조선제왕신위>(2000)로 이듬해 제36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했으며 <닭에 대한 논리>, <투란도트>, <천년제국1623>,<사랑의 기원> 등과 같은 역사와 인물을 깊게 묘사하는 글쓰기로 작품을 써오고 있다. 2005년에는 최원종(작가, 연출)와 극단 ‘명작 옥수수밭’을 창단하면서 한국사회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무대로 담아내 오고 있다. 특히 최원종 연출은 차근호 작가의 작품 <메이드인 세운상가>, <패션의 신> , <깐느로 가는 길>, <세기의 사나이>, <어느 마술가의 이야기> 등을 연출하면서 감각적인 무대를 그려오고 있고 작, 연출한 <헤비메탈 걸스>가 2019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파토리로 선정되었으며 <청춘, 간다>(2015)를 쓰고 연출해 제36회 서울연극제 대상, 희곡상, 남자연기상, 여자연기상, 신인연기상 등 8개 부문을 석권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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