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72년전 납북 책임 물은 후손들, 2년만에 나온 판결은 [그법알]

오효정 입력 2022. 5. 25. 06:00 수정 2022. 5. 25.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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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강제로 끌려간 납북자는 9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어디에다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최근 법원에는 피고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김정은'을 적은 소송이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일에도 한 사건의 결론이 났습니다.


[그법알 사건번호 37] 법원 "납북 피해자 후손들에게 북한과 김정은이 손해배상해야"

1950년 6월 조선노동당 군사위원회는 '남반부의 정치, 경제, 사회계 주요 인사들을 포섭하고 재교양하여 통일 전선을 강화하자'는 방침을 세웁니다. 이른바 '모시기 공작'이 시작된 건데, 관련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그해 7월 4일부터 납치 행위를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 중에는 역사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 서울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일하던 김윤찬씨, 등록 1호 변호사인 홍재기씨, 손기정 선수의 1936년 베를린올림픽 우승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동아일보 기자 이길용씨 등이 있습니다. 마포형무소 형무부장, 철도청 기관사, 철도사무원, 회사원으로 일하던 사람들도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병원에 갔다가 끌려가기도 하고, 길가에서 잡혀가기도 하는 등 피해 면면도 다양합니다.

이들의 아들의 딸, 손주 등 10여명이 지난 2020년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북한이 납북이라는 중대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지금까지 납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행방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전시 민간인의 강제 연행을 금지한 '제네바협약', 강제실종에 의한 반인도범죄를 규정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을 들었습니다. 또 "당시 시행되던 조선형사령과 형법 역시 체포·감금 행위를 불법으로 보고 있다"라고도 언급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책임도 물었습니다. 선대의 불법 행위를 이어받아 지금까지도 자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피해자나 유해의 송환이 완전히 이뤄지기 전까지는 범죄행위가 지속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지난 2020년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 6.25 납북 피해자들을 대리해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법원 판단은!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정현석 부장판사)는 이들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북한과 김 위원장이 원고들에게 각각 최고 3000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납북 피해자가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내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경찰관으로 일하다 납북된 최태집씨의 자녀가 소송을 내 지난해 3월 승소한 적이 있는데요.

문제는 이 배상액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느냐는 거겠죠. 원고 측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보관하고 있는 북한의 조선중앙TV 저작권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사들이 취재를 위해 조선중앙TV 영상을 활용하면서 저작권료를 경문협에 내고, 경문협은 이 돈을 모아서 북한에 지급하는데요. 경문협은 조선중앙TV를 운영하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뿐 아니라 조선영화수출입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등과도 판권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8년부터 대북 제재로 북한에 송금할 수 없게 되자, 그 사이 경문협에 저작권료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습니다. 경문협은 일단 이 돈을 법원에 공탁하는 방식으로 보관해오고 있는데요. 원고들은 이 돈을 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경문협 측은 "북한을 대신해 저작권료를 배상금으로 쓸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저작권료가 북한 당국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저작자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이유입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그사이 쌓인 판례도 하나 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에서 포로로 잡힌 이들이 50년 가까이 억류돼 있다가 탈북했고, 여기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낸 사건인데요. 이 역시 민사 소송에서는 승소했는데, 배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자 경문협을 상대로 한 추심금 청구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경문협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북한 저작권료의 소유권이 북한 당국에 있다고 간주하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재판부는 또 북한을 손해배상 청구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등한 개별 독립 국가가 아니니, 법적 지위를 부여해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반면 원고들은 북한은 민법상 '비법인사단', 즉 법인에 준하는 실체를 갖춰 법적 지위를 갖는 집단이라고 보고 소송을 이어왔습니다. 북한도 민사 소송의 피고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납북 피해자들 사건을 심리했던 재판부 역시 비법인사단 주장을 인정해 북한과 김 위원장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왔는데요.

법원 판단이 엇갈리다 보니 추심금 청구 소송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입니다. 지난해 3월 승소한 납북 피해자 측은 추심금 소송을 이미 제기했고, 지난 20일 승소한 납북 피해자들도 관련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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