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던 것 뿐인데"..졸지에 범죄자 됐다, 2만8011명의 눈물

박건 입력 2022. 5. 25. 05:00 수정 2022. 5. 2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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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크리미널 <上>

“일개 자영업자가 발음도 어려운 ‘감염병예방법’이라는 걸 언제 들어봤겠어요. 저희는 살아남으려고 가게 문 연 건데 그게 법을 어겼다는 거잖아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서울 종로구 인생횟집에 손님이 들어차기 시작했지만, 사장인 양승민(37)씨는 장사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정부의 심야 영업 제한에 반발하며 24시간 영업 시위를 강행한 데 따른 일이다. 구청이 양씨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그는 난생 처음 ‘피의자’ 신분이 됐다.

2만8011명.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2020년 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감염병예방법을 어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람의 수다. 사적모임 제한, 영업시간 단축 등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대표되는 ‘K방역’은 성과만큼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생업 때문에 가게 문을 연 자영업자와 확진 후 어쩔 수 없이 회사에 출근한 직장인,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코로나 크리미널(Criminal·범죄자)’이 됐다.
코로나 피해 자영업 총연대 회원들이 1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열린 ‘분노와 저항의 299인 릴레이 삭발식’에서 삭발을 하는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영업했다고, 출근했다고 ‘피의자’ 됐다


코로나 크리미널 중에는 영업 제한을 어기고 가게 문을 열었다가 수사 대상이 된 자영업자들이 많다. 정부의 방역 조치로 생업이 끊기자, 알면서도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달 경찰 조사를 받고 약식기소돼 법원의 벌금형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영업이 금지된 심야에 가게 문을 열었다가 적발됐다. A씨는 지난 14일 통화에서 “엊그제도 직원 한 명이 생활고 때문에 자살했다. 신문에 안 나와서 그렇지 강남에서 유흥주점 운영하던 사장들이 영업제한 걸리고 나서 극단적 선택을 많이 했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에 걸린 채 출근했다가 졸지에 범법자가 된 직장인도 적지 않다. 지난 3월엔 한 40대 남성이 확진 후 서울 중구에 있는 회사에 나갔다가 지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조사를 받았다. 이 남성은 경찰에게 “확진돼서 격리된 직원이 많아 일손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출근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2020년 4월엔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 중이던 한 60대 여성이 무단이탈해 출근했다가 강남구청으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인생횟집 사장 양승민씨가 점심시간 가게 안을 바라보고 있다. 박건 기자


보건범죄 18%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경찰에 따르면 지난 2년 2개월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람 중 절반에 가까운 1만3906명(49.6%)이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됐다. 구체적인 혐의를 보면, 집합금지를 어긴 사람이 2만4696명(88.1%)으로 가장 많았고, 격리조치 위반 2474명(8.8%), 기타 위반사항 453명(1.6%), 역학조사 방해 388명(1.3%)가 뒤를 이었다.
경찰이 수사한 보건범죄에서 감염병예방법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2020 범죄통계’를 보면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경찰이 검거한 사람은 4055명으로 식품위생법(7066명)과 의료법(6113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그해 보건범죄 총 검거 인원인 2만2472명의 18.0%에 달한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국내를 덮쳤던 2015년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검거된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대규모 총파업 집회가 예고된 지난해 10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에서 경찰 병력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감염병예방법 위반 무죄는 단 한 건


검찰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사건을 다른 사건보다 엄중하게 처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1년 4월까지 1년 4개월간 검찰은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송치된 전체 피의자 중 39.8%(2744명)를 기소했다. 2020년 검찰의 전체 범죄 기소율이 30.9%였던 것을 감안하면 검찰의 강한 처벌 의지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법원은 엄벌로 마침표를 찍었다. 민변이 2020년 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감염병예방법 위반 사건 중 판결이 확정된 566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재판에 선 피고인 중 77.6%(439명)가 벌금형, 22.3%(126명)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죄는 단 1건이었다.


“불균형 계속되면 터진다”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자영업자가 새 거리두기 조정안 문구가 적힌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해제하면서 평범한 일상이 감염병예방법에 저촉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방역을 방해한 ‘죄’로 경찰 앞에 섰던 이들은 벌써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을 염려하고 있다. 양승민씨는 “지난 2년간 정부의 말 한마디에 자영업자들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져 내렸다. 다른 팬데믹이 왔을 때 또 한 집단이 낙오자가 되는 일이 되풀이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이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걸 체득한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헌법학) 교수는 “방역의 중요성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다수의 안전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균형이 지속되면 한쪽이 터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염병 시대에 국민이 어느 정도까지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에 대한 합의의 기준을 제시하고 설득시키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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