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명의 파시오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감동

입력 2022. 5. 25. 00:24 수정 2022. 5. 25.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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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올해로 42주년을 맞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여야 정치인 모두 함께 입을 모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제창은 모든 참석자가 의무적으로 부르는 것을, 합창은 합창단이 무대 위에서 부르는 것을 뜻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첨예한 대립이 끊이지 않았던 이 노래가 마침내 모든 논란에 마침표를 찍으며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빛냈다.

5년 전, 그러니까 5·18 37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처음으로 맞이했던 이 날 기념식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성악가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곡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기념식에서 제외됐던 이 노래를 제창 형식으로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그날 함께한 보수 진영 정치인들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참석은 하되 부르지 않았던 이 노래가 무려 42년 만에 여야 정치권을 하나로 묶으며 통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 올 5·18 기념식에서 통합 이뤄내
시대적 아픔 껴안는 예술의 소명
순수음악계의 참여도 계속 늘어
평화와 인권은 진영논리 넘어서

지난달 서울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린 ‘4·3과 여순 동백이 피엄수다’ 전시회 풍경. [뉴시스]

얼마 전 광주에서 전시된 그림 한 점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5·18 민주화운동 42주년을 기념해 거리전시전에 등장한 이 그림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주요 인사들을 등장시켰다.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이 풍자와 해학이라는 예술의 본령을 넘어섰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논란의 그림은 5·18 민주광장에서 전시된 박성완 작가의 ‘다단계’로,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을 5단계로 나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을 작가의 시선으로 표현했다.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은 존중돼야 하며,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다.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끈 곳이다. 그곳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제 사회의 시민으로서 전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평화를 촉구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현실 정치인을 풍자하는 것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 전반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보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크지 않을까 싶다.

예술은 정치와 역할이 다르다.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시대적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표현해내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은 그동안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 들어선 공연예술계의 참여 또한 활발해졌다. 문학·미술·연극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미비했던 순수음악계의 참여가 반갑다. 예로 광주문화재단은 제주 4·3평화재단과 손을 잡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시대적 아픔을 나눈 지역과 함께 특별음악회를 기획했다.

올해에는 여수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기획한 창작 오페라도 선보였다. 광주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 여순 10·19사건을 소재로 한 창작 콘텐트를 융합하여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특히 ‘임을 위한 행진곡’의 피아노 협주곡 버전인 ‘5월 광주’는 예술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구현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광주문화재단 황풍년 대표이사는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기억이 있는 지역들이 서로 공연 콘텐트를 공유하고, 연대함으로써 상처의 치유에도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제주 4·3 범국민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제주 4·3과 여순사건의 기획전시 ‘동백이 피엄수다’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되는 등 과거사의 비극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평화의 가치를 선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18 기념사에서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이고, 이를 책임 있게 계승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후손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출발”이라고 했다. 광주와 제주·여수는 누군가에겐 각각 42년, 혹은 74년이 지난 과거에 그치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여전히 진행되는 슬픔이다. 그 아픔의 공감대를 예술로 넓히며 화합과 상생을 이루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이제 더는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인류 보편의 가치가 이념과 진영논리에 의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정신적 유산으로 온전히 계승되기를 바란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예술가들의 시대정신이 좀 더 왕성하게 펼쳐지기를 바란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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