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 개입 중단하라" 99세 외교전설 키신저, 대체 왜

추인영 입력 2022. 5. 24. 17:19 수정 2022. 5. 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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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베이징의 경제포럼에 참석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헨리 키신저(99)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중단을 촉구했다. 23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은 이날 세계경제포럼(WEFㆍ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격파하려는 서방의 시도는 유럽의 장기적인 안정에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러시아는 지난 400년 동안 유럽에 필수적인 일원으로, 유럽 권력 구조의 균형을 잡아준 보증인이었다. 서방이 순간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 러시아의 지위와 역할을 잊어버리는 것은 치명적”이라며 “유럽 지도자들은 장기적인 관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가 중국과 영구적 동맹을 맺도록 밀어붙이는 위험도 감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러, 유럽 균형자…평화협정 2개월 이내에”


2018년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만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그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지금까지 보여준 영웅주의에 더해서 지혜를 발휘해주길 바란다”면서 조속한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그는 “위기가 극복 불능 상태로 치닫기 전에 앞으로 두 달 안으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며 “가장 이상적인 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경선이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역할은 유럽의 국경이 아닌 중립적인 완충 국가가 되는 것”이라면서다. 이어 “그 시점을 넘어 전쟁을 계속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자유가 아니라 러시아 존재 자체를 결정하는 새로운 차원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미국이 제공했다”는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석좌 교수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으로도 이해된다. 이번 전쟁의 진짜 원인으로 러시아만을 지목할 순 없다는 맥락의 주장이다. 미어샤이머는 이번 전쟁의 발발 원인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가입을 발표했던 2008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였다고 주장했다. 푸틴이 이를 “실존적 위협”이라며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천명했는데도, 이를 무시해 전쟁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 자신도 “일반 통념에 반대되는 소수설”이라고 했던 이 주장에 키신저가 힘을 실어준 셈이다.

텔레그래프는 이 발언이 개전 이후 에너지 위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원유 수입 금지 등 대러 제재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회원국 간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는 이번 포럼에서 “독일은 (에너지 수입 없이) 버틸 준비가 돼 있지만, 일부 국가는 러시아와 이전처럼 거래하고 싶어 한다”고 했고, 크리스토퍼 쿤스 미국 연방 상원의원도 “푸틴은 서방이 (대러 제재에) 집중하지 못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게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직접 대결 피해야”


키신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대만 방어를 위해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해선 “(중국과의) 직접적인 대결은 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고 CNBC가 보도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협상에서 핵심은 대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최소한의 협력을 담보하는 상호 견제 관계를 유지할 원칙을 논의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선 미·중 양국의 적대 관계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서 『온 차이나』에서도 중국의 대외 전략은 기본적으로 방어에 있다고 주장했었다. 중국 외교 정책은 어느 한쪽을 무너뜨리기보다는 섬세하고 간접적인 전략으로 상대적 우위를 축적하는 스타일로, 중국을 위협하지만 않으면 평화를 추구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 그 토대라는 논리다. 키신저는 1971년 미국 최고위급 인사로는 최초로 중국을 두 차례 방문해 이듬해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1979년 미·중 수교의 초석을 놓은 당사자다.


평화수호 vs 전범…뼛속까지 현실주의자


1974년 11월 베이징에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맨 왼쪽) 중국 국무원 부총리이던 덩샤오핑(가운데), 국방부 장관을 두 번이나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 AP=연합뉴스
키신저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가 나치의 유대인 이주 정책에 따라 미국에 이민 왔다. 1943년 미군에 입대해 시민권을 취득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해 유창한 독일어로 활약했다. 그는 1950년 하버드대에 입학해 정치학 박사까지 취득한 후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핵무기와 외교 전문가로 정부 일을 함께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하면서 정치가로 변모했다.

그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주의자다. ‘미치광이 전략’ 창시자이기도 하다. 닉슨 행정부 시절 키신저는 베트남전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소련을 핵전쟁으로 위협해 북베트남을 협상장에 끌어들여 베트남전 평화협정 체결을 성사시켰다. 이 업적을 인정받아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반면 칠레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미국에 도움만 된다면 독재까지도 옹호하는 행보를 보여 전범이라는 극단의 평가도 상존한다. 지난해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의 별세 이후 현재 최고령 전직 미국 내각 인사이자 닉슨 내각의 마지막 생존자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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