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땐 나라 삼킬 듯했던 '젠더 갈등'..지방선거선 왜 뜸할까

최민지 2022. 5. 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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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강당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에선 예상치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윤 대통령에게 “내각에 대부분 남자만 있다”며 남녀 평등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답했고, 회견은 그 질문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외신 기자의 질문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정치권에서는 대선 당시 논란이 됐던 ‘젠더 이슈’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에선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지난 23일 소셜미디어에 “(윤 대통령은) 여성 장·차관이 거의 없는 남성만의 정부를 만들어 놓고, 성평등을 향상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그러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할당을 통해 여성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그 좁은 시야의 이면에는 여성의 능력에 대한 비하가 있다”고 반박하며 논쟁이 커지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불과 석 달 전 대선까지만 해도 젠더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맞붙었던 정치권에서 더 이상의 추가 논쟁은 이어지지 않았다. 권 원내대표와 박 위원장의 소셜미디어 글에는 각각 16개, 5개의 댓글이 달렸을 뿐이다(24일 오후 기준). 대선 후 젠더 이슈가 ‘불 붙지 않는 젖은 장작’이 된 셈이다.

젠더 논쟁의 폭발력이 약화된 이유는 뭘까. 0.73%포인트 차이의 박빙 대선 결과의 교훈이 첫손에 꼽힌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 윤 대통령의 공약은 젊은 남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여성 유권자를 등 돌리게 한 원인으로도 지목됐다. 득 못지않게 실도 컸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선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은 20대 이하 남성으로부터 58.7%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대 이하 여성으로부터 58%의 지지를 얻었다. 그 많은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양쪽 다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 셈이다.

당장 2030세대 남성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태도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이 대표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이대남 전략을 포기했다’는 질문이 나오자 “저희 공약 중에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공약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여가부 폐지는 특임부처의 업무 모호성 때문에 나온 얘기고, 군사 월급 상향 조정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을 위한 정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웬만해선 논쟁을 잘 피하지 않는 이 대표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젠더 논쟁을 전략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캠프에서 청년보좌역을 맡았던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민주당 역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이 당선되면 여자들 다 죽어날 것’이라며 극단적인 메시지를 내놨다가 더 큰 (남성들의) 반작용을 마주했던 경험이 있다”면서 “양당의 메시지가 조금씩 누그러진 걸 보면, 젠더 이슈에 유권자들이 피로감을 느낄 것이라는 무언의 공감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23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남녀할당론을 두고 소셜미디어에서 논쟁을 주고받았다. 김성룡 기자


한편으론 대선 과정을 통해 표출된 이대남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며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예찬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소통 태스크포스(TF) 단장은 “최근 청년 여론을 모니터링 해보면 병사 월급 상향 조정이나 여가부 폐지 등의 공약을 국민의힘이 추진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당과 청년 사이에 신뢰가 쌓인 느낌”이라면서 “젊은 남성들을 당의 지지층으로 두되 당구선수 차유람 같이 남녀 모두 거부하지 않는 인사를 당으로 영입하는 식으로 여성 유권자에게도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선과는 달리 지방 이슈가 부각되는 선거의 특성도 이대남 전략이 자취를 감춘 원인으로 꼽힌다. 박 대변인은 “지방선거에서는 중앙당의 논조보다는 지역 공약이나 인물에 힘이 실리게 마련”이라면서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윤 대통령의 당선 직후 치러진다는 특성상 당도 세부적인 이슈보다는 국정안정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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