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선 경제안보, 日선 국제규범 외쳤다..'장르' 달랐던 바이든

박현주 2022. 5. 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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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5일에 걸친 한·일 순방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간 경쟁'에서 핵심 동맹인 한·일과의 연대를 공고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각기 달랐다. 이틀 차이로 공개된 한ㆍ미 및 미ㆍ일 정상 간 공동성명의 키워드를 살펴보니 한국에선 '경제 안보 협력'에 집중했고, 일본엔 '국제 규범 수호' 역할을 당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 오산 공군기지 항공우주작전본부(KAOC)에서 2박 3일 간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환송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공급망ㆍ기술 언급 '두 배'


한ㆍ미 및 미ㆍ일 정상 공동성명은 각각 지난 21일과 23일 발표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찾아가 이틀 차이로 대면 회담을 연 결과였다.

우선 미국 경제 안보 정책의 핵심인 '공급망(supply chain)'은 한ㆍ미 성명(영문 기준)에서 10회 등장했다. 미ㆍ일 성명에서 5회 나온 것의 두 배다. 기술(technology) 관련 언급도 한ㆍ미 성명에서 14회, 미ㆍ일 성명에서 7회로 한·미 성명에서의 언급이 정확히 두 배였다.

미국을 비롯한 13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23일 출범한 '인도ㆍ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도 한ㆍ미 및 미ㆍ일 성명 모두에 명시됐다. 다만 미ㆍ일 성명엔 IPEF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지지와 협의체 출범을 환영한다는 내용만 담긴 반면 한ㆍ미 성명의 관련 문안은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IPEF의 '원칙'을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으로 밝혔고 '우선적으로 다룰 이슈'로 "디지털 경제, 회복력 있는 공급망, 클린 에너지,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 촉진"을 꼽았다.

정상급 성명에 개방성 등 IPEF의 원칙을 명시한 건 한국의 참여 명분을 확실히 하는 한편 중국의 우려에 대한 대응 논리를 구축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선적 이슈를 짚은 분야는 한국이 창립 멤버로서 '룰 메이킹'을 주도할 수 있는 '주종목'들을 선제적으로 강조한 거란 분석이 나온다.

21일 한ㆍ미 확대 정상회담의 배석자 면면을 봐도 경제 중시 기조가 뚜렷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상목 경제수석, 왕윤종 경제안보비서관 등 경제 관료가 대거 자리했다. 정통 외교·안보 라인으로 구성한다면 확대 회담 멤버로 국방부 장관이 들어올 법 했지만, 대신 산업부 장관이 들어간 격이었다.
2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확대 정상회담. 한국 측에선 추경호 경제부총리, 박진 외교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조태용 주미대사 내정자, 최상목 경제수석,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이문희 외교비서관, 왕윤종 경제안보비서관, 강인선 대변인, 임상우 외교부 북미국장 등등 11명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선 크리스토퍼 델 코르소 주한미국 대사 대리, 지나 레이몬드 상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젠 딜런 백악관 부비서실장,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 요하네스 에이브러햄 NSC 비서실장 겸 수석사무국장,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에드가드 케이건 NSC 동아시아·동남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미라 랩-후퍼 NSC 인도태평양 담당 보좌관, 헨리 해거드 주한미국대사관 정무 공사참사관 등 11명이 참석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국제 규범'은 日과 단단히


23일 백악관이 공개한 미ㆍ일 정상 공동성명의 제목에는 한ㆍ미 성명과 달리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 강화'라는 부제가 붙었다. 경제와 기후 협력 관련 세부 내용은 각각 별도의 팩트시트(설명 자료)로 다뤘고, 공동성명 자체는 인도ㆍ태평양 전략의 진전, 확장억제 강화,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 성장 등 상위 개념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이날 미ㆍ일 성명에서 중국은 8차례 언급(남중국해, 동중국해 제외)됐는데, 앞서 중국을 아예 특정해 거론하지 않은 한ㆍ미 성명과 대비됐다. 러시아에 대한 언급도 한ㆍ미가 6회, 미ㆍ일이 13회로 약 두 배 차이를 보였다. 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언급은 한ㆍ미가 4회, 미ㆍ일이 5회였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한ㆍ미 동맹과 미ㆍ일 동맹은 '장르'가 다르며, 양측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일본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이동하며 중국 견제 메시지 강도가 확연히 세졌고, 덕분에 한국으로선 중국의 노골적인 반발을 피할 수 있었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 동선도 회담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21일(현지시간) 백악관이 공개한 한ㆍ미 정상 공동성명의 제목. 백악관 홈페이지 캡처.
23일(현지시간) 백악관이 공개한 미ㆍ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제목. 한ㆍ미 공동성명과 달리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 강화'라는 부제가 붙었다.


한‧미‧일 대북 싱크로율은 ↑


대북 원칙론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ㆍ미ㆍ일 3국의 대북 정책 간 일치성은 더 높아졌단 분석이다. 이번 윤석열·바이든 대통령 간 성명에는 지난해 5월 문재인·바이든 대통령 간 성명과 달리 북한 미사일에 대한 "규탄"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중대한 우려"가 담겼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선 순조롭게 소통했고 양측이 거의 전폭적으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한 한ㆍ미 및 미ㆍ일 공동성명에서 모두 북핵 위협에 대응한 '확장억제 강화'가 중시됐다. '억지력(deterrence)'은 한ㆍ미 성명에서 4회, 미ㆍ일 성명에서 6회 언급됐다. 관련 소통 채널도 양국 성명에 각각 명시됐다.

이에 더해 두 성명 모두 비핵화 목표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로 통일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ㆍ일은 비핵화 대상으로 '북한'을, 한ㆍ미는 '한반도'를 언급해 다소 차이를 보였다.

다만 한ㆍ미는 성명 영문본에서 북한을 'DPRK'(13회 언급)로 칭한 반면, 미ㆍ일은 'North Korea'(3회 언급)로 불러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었다. 전자는 북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의 공식 영문 국호다. 통상 북한 정권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3일 오전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회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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