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범죄..조국 부끄럽다" 러 외교관 공개적으로 사표 던졌다

김서원 입력 2022. 5. 24. 14:47 수정 2022. 5. 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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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 주재 유엔 사무국에서 일하던 20년 베테랑 보리스 본다레프(41) 러시아 외교관이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조국이 부끄럽다며 사임했다. [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실상 서방 세계 전체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war)'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범죄(crime)일 뿐아니라 어쩌면 러시아 국민에 대한 가장 심각한 범죄이기도 하다."
스위스 제네바 주재 러시아 외교관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이같이 공개 비판하며 사임했다고 AP통신 등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리스 본다레프(41) 러시아 외교관은 이날 오전 제네바 주재 유엔 러시아 대표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본다레프는 40여 명의 동료 외교관 등에게 보낸 영문 입장문을 통해 "외교관 경력 20년간 외교 정책이 바뀌는 것을 봐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인) 지난 2월 24일만큼 조국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그는 AP통신에 "작금의 우리 정부 행태를 참을 수 없다"며 "공무원으로서 내 몫의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말했다. AP는 러시아 외교관이 자국을 공개 비판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본다레프의 사퇴 입장문. [트위터]

본다레프는 입장문에서 러시아 지배층도 겨냥했다. 그는 "이 전쟁을 구상한 자들은 단 한 가지만 원한다"며 "영원히 권좌에 남아 무제한의 권력을 누리며 완전한 면책을 누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그들은 적당히 필요한 만큼의 생명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며 "이미 수천 명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이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러시아 외무부의 수장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 대해선 "수많은 동료들이 전문가이며 지식인인 그를 높이 평가해왔으나, 이제 그는 끊임없이 분쟁 성명을 발표하고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사람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늘날 러시아 외무부는 외교는커녕 전쟁을 조장하고 거짓말과 증오만 일삼고 있다"고 개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입장문에 대해 러시아 내부 엘리트층에서 나온 가장 눈에 띄는 비판 글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크렘린궁은 전쟁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려 갖은 노력을 해왔다"면서 "반대자들이 반역자로 낙인 찍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어떤 정부 당국자도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앞서 아나톨리 추바이스 대통령 특별대표가 전쟁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임 후 러시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외적으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은 "진정한 애국자와 매국노를 구분할 수 있다"며 자신과 다른 의견은 용납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본다레프 사임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러시아 관영 매체들도 보도를 자제하며 쉬쉬하는 분위기다. 다만 WP는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 작전'이 아닌 '전쟁'으로 표현하는 등 전쟁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자에 대해 최대 징역 15년 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건물 전경. [AP=연합뉴스]

본다레프는 러시아 대표부에 전쟁에 대한 우려를 수차례 피력했으나, 매번 묵살됐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모든 러시아 외교관이 전쟁을 꿈꾸는 건 아니다"며 "그들은 합리적이지만, 입을 다물어야 했다"고 밝혔다.

제네바 비정부기구(NGO) 유엔워치의 힐렐 노이어 이사는 본다레프의 입장문을 트위터에 공개하며 "본다레프는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다른 러시아 외교관들도 그와 같이 도덕적 모범을 따라 사임하라"고 촉구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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