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뿔소라·쌍화차..공연과 함께 향토 음식을 맛보다
김유정 문학촌은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가 있는 춘천시 신동면 실레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김유정 문학촌의 건너편에는 강원도 1호 문화예술단체 사회적 기업인 문화프로덕션 도모의 둥지인 ‘아트팩토리 봄’이 있다. 춘천국제연극제 예술감독과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 연출가를 역임한 황운기 감독이 이끄는 도모는 지난해 춘천 도심에서 교외인 실레 마을로 이사한 뒤 옛 막걸리 공장을 1층 소극장(150석), 2층 카페 겸 식당, 3층 예술가 레지던스 및 에어비앤비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춘천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온 도모는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지원을 받아 3년간 김유정의 해학적인 단편소설 7개를 무대화해 상설공연으로 만드는 ‘김유정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올해는 ‘동백꽃’ ‘소낙비’ ‘금따는 콩밭’ 등 3편을 공연한 뒤 내년과 내후년에 각각 신작 2편을 포함한 5편과 7편을 선보일 계획이다.
김유정이 1936년 발표한 ‘동백꽃’은 소작인의 아들인 ‘나’와 마름의 딸인 점순이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점순이는 눈치 없는 ‘나’가 자신의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닭싸움을 시키고, ‘나’도 결국 점순이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김영선 작가와 우상욱 연출가가 각각 각색과 연출을 맡아 불과 몇 페이지에 불과한 단편소설을 60분짜리 공연으로 만들었는데, 원작의 닭싸움을 ‘춘향전’ 이야기와 섞어 패러디함으로써 코미디를 극대화했다. 의인화시킨 닭들에게는 ‘춘향전’ 속 인물을 연상시키는 춘닭, 몽닭, 향닭, 방닭 등의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닭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은 극중 ‘나’의 엄마를 비롯해 울타리, 숲 등 극 중 다양한 역할로 빠르게 변신하는 모습을 통해 웃음을 준다.
공연이 끝나면 예약한 사람들의 경우 2층 식당에서 닭갈비 스테이크와 인근 양조장에서 생산된 전통주 등 음료들을 즐길 수 있었다. 배우들이 식당에 올라와 인사하거나 함께 사진도 찍어주기 때문에 관객에겐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는다. 식사 메뉴는 공연에 따라 달라지는데, 올 7월 ‘소낙비’나 10월 ‘금따는 콩밭’에선 닭갈비 스테이크 대신 다른 향토 음식을 활용한 요리가 나올 예정이다. 도모는 앞으로 극장에서 공연을 본 뒤 바로 식사까지 할 수 있는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운영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총 12회 공연된 ‘동백꽃’은 첫 주엔 매진되는 등 전체 예매율 70% 정도를 기록했다. 다만 김유정 프로젝트가 이제 첫발을 뗀 상태라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았다는 게 도모의 판단이다. ‘동백꽃’의 경우 춘천 시민과 공연계 관계자들이 객석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만큼 앞으로는 강원도 전역과 수도권에서도 관객을 불러모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도모는 실레 마을을 비롯해 인근 지역의 여러 문화예술시설과 연계해 장소 마케팅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황운기 도모 감독은 “실레마을에서 공연을 보고, 식사와 음료를 즐기고, 숙박까지 해결할 수 있는 문화마을기업이자 아트밸리를 조성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며 밝혔다.
지역에서 공연과 향토 음식의 결합 마케팅은 도모가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 2019년 1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문을 연 뒤 폭발적 반응을 얻은 ‘해녀의 부엌’이 대표적으로 수많은 문화예술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황운기 도모 감독 역시 해녀의 부엌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아동연극 활동을 하던 김하원 대표가 만든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해녀가 주인공인 공연이 펼쳐지고, 해녀가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로 음식이 차려지는 것이 특징이다.
종달리의 해녀 집안에서 성장한 김하원 대표는 일본으로 대부분 수출되던 뿔소라와 톳의 판로가 막히면서 해녀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고 해결 방법을 찾았다. 단순히 식당 운영이나 판촉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김 대표는 ‘해녀에 문화를 입힌다’는 콘셉트로 해녀 영화제와 축제 등을 개최하고 뿔소라 유통망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해녀 공연을 곁들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선보이기로 한 김 대표는 종달리 어촌계의 도움을 얻어 30년 동안 방치돼 있던 어판장을 리모델링했다. 문을 연 해녀의 부엌은 1인당 가격이 5~7만 원대로 꽤 높지만, 제주를 찾은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워낙 인기를 끌어서 2~3개월씩 예약이 밀려있을 정도다. 또한, 해녀의 부엌 성공으로 뿔소라 등 현지 해산물의 판로까지 이전보다 확장됐다.
지역 일자리 창출과 어촌계의 전통을 잇는 가치를 보여준다는 호평을 받은 해녀의 부엌은 관광벤처 최우수기업으로 꼽히며 로컬크리에이터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예술경영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녀의 부엌은 지난해 11월 조천리에 미디어 아트를 더한 2호점을 열었다. 1인당 가격은 1호점보다 더 높아서 7~9만 원대다.
공연장이나 예술단체가 직접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지역의 향토 요리를 즐길 수 있게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도 한다. 강원도 정선 아리랑센터는 정선아리랑을 소재로 한 뮤지컬 ‘아리아라리’를 정선 오일장이 열리는 날(매주 끝자리 2일과 7일)에 맞춰 상설로 선보이고 있다. 정선 오일장을 찾는 수도권 관광객이 공연과 시장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관광객은 뮤지컬 ‘아리아라리’ 관람 전후 인근 정선 오일장에서 곤드레나물밥 및 콧등치기 국수, 감자옹심이 등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또 전북 정읍시립국악단은 오는 6월 17~18일 정읍사예술회관에서도 쌍화차를 소재로 한 뮤지컬 ‘쌍화지애-태인의 전설’(연출 정도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정읍은 쌍화탕의 주재료인 지황의 주산지로 현재 시내 쌍화차 거리는 지역 테마 여행코스 중 핫플레이스다. 정읍시립국악단은 지난 13일 연지아트홀에서 ‘국악정감-쌍화탕 콘서트’를 여는 등 올해 들어 쌍화차 소재 공연을 적극적 기획해 향토 음식을 외부에 알리고 있다.
지역문화 콘텐츠 전문가인 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은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지역을 알리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완성도와 지역 특색의 적절한 결합 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최근 제주 해녀의 부엌 등의 사례는 공연과 먹거리를 직접 연계시킴으로써 지역의 매력도를 높이는 등 규모보다 내실을 다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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