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오픈런 왜 해"..4만원에 명품백 드는 그들 [밀실]
명품 빌리는 MZ세대 제90화>
결혼식에 명품백 하나씩은 다 들고 오잖아요. 에코백을 들고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하루를 위해 수백만원짜리 가방을 사는 건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았어요.
누구나 한 번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나 가방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지난달 친구 결혼식을 앞두고 200만원대의 명품백을 4만원에 빌렸다는 직장인 스텔라(닉네임·31)씨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흘 동안 사용해 하루 1만원에 빌린 셈인데, 커피 2잔 살 돈으로 수백만원짜리 명품백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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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나만 알고 있는 MZ 트렌드,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MZ세대의 이야기 등을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으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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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 들고 줄 섰지만…좌절감만 남았다
스텔라씨도 처음부터 명품 대여를 이용한 건 아니었습니다. 500만~600만원대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백화점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선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픈런을 했지만, 끝에는 “좌절감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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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대신 ‘대여’하는 MZ
MZ세대는 현재 명품 시장의 ‘큰 손’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세대별 온라인 소비 행태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온라인 명품 결제의 약 55%는 2030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대의 온라인 명품 구매 결제 금액은 전년 대비 80% 증가했고, 30대는 75% 증가했다고 합니다.
명품 대여 서비스 이용도 늘고 있습니다. 한 명품 렌털 업체 관계자는 “이용자 10명 중 9명 이상이 MZ세대인데, 2년 전보다 5~6배 정도 매출이 올랐다”고 했습니다. 최근 거리두기 완화로 결혼식 등 모임이 늘면서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데요, 성주희(36) 클로젯 셰어 대표는 “3년 전보다 회원 수는 6배 늘었고 매출은 5배 증가했다. 전체 고객의 80%인 MZ세대는 소유보다 경험하는 데 스스럼없이 지출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MZ세대가 평소 본인들이 갖고 싶었던 명품을 다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대여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브랜드를 경험해보고, 내가 진짜 구매하고 싶은 것을 구매하는 과정의 전 단계인 것 같아요. (성주희 대표)
밀실팀은 명품을 빌려서 사용해 본 MZ세대를 만나봤습니다. 특히 수백만원에 달하는 명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사회 초년생과 취업 준비생 등은 “명품 판매가의 200분의 1 가격으로 사용해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지난 2월 친구와 고급 호텔에 호캉스(호텔+바캉스)를 가기 위해 200만원대의 명품 가방을 3만원에 대여했다는 이재현(22)씨는 “20대 초반이고 취준생이라 명품백은 비싸서 못 샀는데 특별한 날에 착용하고 싶어 빌리게 됐다”며 “눈으로만 봤던 명품백들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SNS에 올렸는데, 명품은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또 다른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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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빌렸다고 할 수 있나” 회의론도
다만, MZ세대 안에서도 명품 대여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었습니다. “명품 가방을 빌렸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나”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 같다”는 등의 지적입니다.
2030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누가 가방을 물어보면 빌렸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안 들고 말지” “렌털까지 하면서 허세 부리고 싶지 않다” “내 것도 아닌데 굳이 왜 빌리나” 등 댓글이 다수 있었습니다.
‘솔직함’ ‘당당함’이 무기인 MZ세대지만, 실제로 명품을 빌렸다는 걸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명품렌털 업계 관계자는 “명품 렌털을 인증하는 SNS 이벤트 참여도가 적은 편”이라며 “MZ세대 ‘샤이(Shy) 고객’이 많다. SNS 게시용으로 올라가는 명품들은 빌린 것이 아니라 본인 소유인 것처럼 보여지게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묘한 MZ세대의 심리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명품을 이용하는 이들과 같은 무리에 속하는 기분을 느끼는 ‘동조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며 “MZ세대 내에서도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해 코인 등으로 돈을 번 일부 2030은 명품을 사는 반면, 렌털 이용자는 아직 적다 보니 빌렸다는 걸 감추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경제력을 고려한 합리적 소비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명품은 갖고 싶은데, 사회 초년생의 경우는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다 보니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명품을 사용해 보고 싶은 MZ세대의 마음이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요. 2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을 빌려서 사용해봤던 밀실팀의 강민지(21) 인턴은 “제 것이 아니다 보니, 혹시 흠집이 생길까 신경 쓰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 명품 렌털도 렌터카처럼 보험 서비스가 있다고 하네요. 소유보다 대여를 선택한 2030들의 이야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영상=황은지, 강민지·김민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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