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섭의 한반도평화워치] 경제·기술안보 확보하려면 정부와 산·학·연 공동 대응해야

입력 2022. 5. 24. 00:32 수정 2022. 5. 24.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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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이후 과제


한용섭 우리국익가치연구회 대표, 전 국방대 부총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탈냉전 이후 30년간 유지된 유럽의 안보와 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무책임하고 반인륜적 무력행사에 맞서 집단적으로 새로운 안보 질서와 경제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 중립국이던 핀란드·스웨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옛소련의 영광을 재건하려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희생 제물이 된 우크라이나를 보며 민주주의 국가 간 집단안전보장기구를 강화하려 한다.

유럽 국가들은 안보와 경제가 상호 연관됐음을 깨닫고 있다. 탈냉전기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는 러시아에, 안보는 미국에’ 노선을 견지했다. 그 결과 2020년 말 EU의 에너지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가스 41.1%, 원유 26.9%, 석탄 46.7%에 달한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로 돈을 벌어 군사력을 키웠고, 유럽의 에너지 의존을 대유럽 외교안보 카드로 활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더는 과거처럼 경제와 안보를 분리할 수 없게 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미국·EU의 대러 제재에 발맞춰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하려 하며 대체 에너지원을 찾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월 원자력을 탄소 중립 에너지로 분류했으며, 독일 등 원자력을 중단했던 국가들도 원자력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같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 체제가 군사 대국이자 경제 부국이 됐을 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한·미, 정상회담 통해 안보·경제·기술 포괄 동맹으로 발전
공급망 확보, 기술 우위가 중요한 신경제안보에 대응하려면
국무총리 직속 민관 신경제안보위 신설해 조정·협조 맡기고
한·미가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 위한 협력 체제 갖춰야

자유·평화·번영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국에도 큰 깨달음을 준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권위주의 강대국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걸 본 한국인들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냉전과 미국·소련의 진영 대결, 분단된 한반도에서 약소국 한국의 생존과 자유·발전을 보장하려면 자유 세계 리더인 미국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걸 인식하고 집요하게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추진해 이뤄냈다. 한·미 동맹은 1953년 체결 이후 70년에 걸쳐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에 기여해 왔다. 이제 한국의 성장한 민주주의와 경제·기술을 바탕으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글로벌 문제를 포괄적이고 깊이 있게 토의해 공동 해결책을 제시할 정도가 됐다. 한·미 동맹은 꾸준히 진화·발전했지만, 전임 정권에서 대북 정책을 동맹 정책보다 우선함으로써 한·미 동맹에 부작용이 초래되며 국가 안보 기반이 흔들리기도 했다.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이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한 입장의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파트너임을 보여줬다. 첨단산업 반도체 같은 경제안보 이슈로 시작해 확장억제 같은 군사안보 이슈로 마무리 지은 것은 그만큼 한·미 동맹의 범위가 군사안보에서 경제안보, 나아가 기술안보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동맹으로 확대 발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핵 억제력 제고와 현시 방법,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 가동, 억제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조치 마련 등을 양국 대통령 수준에서 합의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미 정상이 오산기지의 공군작전사령부 내 항공우주작전본부(KAOC)에서 확장억제 작전 지휘를 하는 모습은 양국 국민의 신뢰를 받기에 합당한 조치였다.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와 기술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미 동맹을 기술동맹으로까지 확대 발전시킨다고 합의한 것은 동맹을 확대·심화시켰다. 이는 양국의 장기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기술 동맹의 협력 분야로 첨단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용 배터리, 인공지능, 양자 기술, 바이오 기술, 바이오 제조, 자율 로봇을 포함한 핵심 신흥 기술이 포함됐다.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는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주요 품목의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 공급망 교란의 사전 탐지와 협력적 대응이 들어갔다.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공급망과 기술 분야 안보는 ‘신경제안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경제안보는 오일쇼크 이후 안정적 에너지 공급, 해상 수송로 보호, 자원과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하는 금융 제도의 설립 등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 국제사회에서 논의되는 경제안보 이슈는 통상 및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방법, 원자재 및 희토류 등의 전략물자 수급 안정, 반도체 배터리 등 공급망 회복, 디지털 통상 및 기술 표준화 경쟁에서 우위 유지, 팬데믹 이후 백신 개발, 기후변화와 탄소 중립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 개발 등이 주요 이슈로써 공급망과 기술 우위가 강조된다. 신경제안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신경제안보에 범국가적 대응 절실

첫째, 신경제안보 이슈는 어느 한 부처에서만 다룰 수 없다. 범정부적 융합과 기업·대학·연구소·정부가 함께 나서야만 가능하다. 정부에서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민관 합동 신경제안보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은 민간인 중에서 임명하며, 국무조정실 차장이 위원장을 보좌해 정부 부처 간 업무 조정과 협조를 맡으면 좋을 것이다. 한·미 경제안보 관련 협력을 추진할 때 신경제안보위원회 위원장이 한·미 경제안보대화 위원장이 되고, 양국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이 신경제안보위원회와 국가안보실 간 협조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한국의 원자력 중흥과 수출 증진을 도모하려면 지난 5년간 침체한 원자력 산업과 연구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전 정권의 무자비한 탈핵 운동과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원전 산업계와 연구 생태계는 고사 상태에 이르렀다. 원자력진흥위원회는 고리 1호기 가동 중단 결정 직후 3개월이 채 안 된 상태에서 미래 원자력산업의 먹거리는 원전 해체 산업 육성이라면서 폐로 연구 사업에 자금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폐로연구원을 곧 출범시킬 예정이다. 원자력진흥위원회가 원자력 진흥이 아니라 원전 해체를 진흥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월성 원전 1호기는 수명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앞당겨 영구 중단하였고, 원전 건설 인력과 기술자와 대학의 원자력공학과 학생 수도 급감했다. 원전의 안전성과 탄소 중립과의 연관성에 대해 비과학적인 정보가 판을 치기도 했다.

한·미, 소형원자로 연구·개발에 협력해야

이러한 상황을 완전히 뒤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원전에 대한 팩트와 유용성·안전성을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 원전이 합리성과 보편성을 가진 탄소 중립 에너지라는 점을 설득할 수 있도록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선진 원전국들과의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사용후핵연료 감축과 재활용을 위한 파이로 연구는 1단계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지원이 끊긴 상태이고, 소듐고속로 연구는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하다. 후속 소형원자로(SMR)는 납냉각고속로(LFR), 용윰염고속로(MSR) 등이 있으나, 연구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몇 가지 아이템을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동시에 선정하고 공평한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밝혔듯 한·미는 원전 수출을 위해 상호 협력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대한 일환으로 러시아와 원전 건설 계약을 체결한 국가들의 원전 건설이 중단되고 계약이 파기되고 있다. 전쟁 이전에는 세계의 원전 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주요 수출국이었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한·미 간에 세계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하기 위해 한국의 우수한 원전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양국 협력을 도모하게 된다면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침체한 원전 수출 길을 열 수 있고, 소형원자로 연구·개발을 위한 한·미 협력 동기도 부여할 수 있다.

한용섭 우리국익가치연구회 대표, 전 국방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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