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찬의 퍼스펙티브] 문 정부 5년간 무너뜨린 '재정 기강' 다시 세울 때다

입력 2022. 5. 24. 00:30 수정 2022. 5. 24.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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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윤석열 정부 7대 재정개혁 과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물러난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바람에 재정지출을 역대급으로 크게 늘렸다. 그 결과 국가부채는 2017년 600조원에서 2022년 말에는 1000조원(GDP의 51%)으로 무려 400조원이나 불어날 전망이다.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네 정부 동안에는 모두 합쳐 570조원 증가했다.

코로나19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부 지출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데 급격히 늘어난 국가 부채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해서 늘어나 미래 한국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재정지출이 늘어나도 필요한 곳에 효율적인 방법으로 투자됐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동안에는 재정 원칙이 무너져 비효율적인 투자가 많이 늘어났다. 미래 재정 건전성이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문 정부 5년동안 국가부채 400조원 불어나고 공무원은 13만명이나 증원
재정원칙 무너져 비효율적 투자 급증, 재정건전성과 미래세대에 큰 부담
예비타당성 원칙 살리고, 병장 봉급 200만원 공약은 과감하게 철회하길
재정구조·연금·세제 개혁하고, 비효율 공기업·공공기관 구조조정해야

최종찬의 퍼스펙티브

예컨대 문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대대적으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증원을 추진했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 여건을 개선해 기업이 고용을 늘리도록 해야 하는데, 단기 성과를 위해 공공부문 고용을 대폭 늘렸다. 문 정부 이전 네 개 정부의 공무원 증원이 모두 합쳐 9만 6000명이었는데 문 정부 동안에만 13만명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매년 공무원 인건비 증가는 물론 퇴직 이후의 연금 부담도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적자 보전액이 4조8000억원인데, 공무원의 대폭 증원으로 향후 적자 보전액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공공기관 인원도 많이 늘어났다. 공공기관 350개 직원 수는 2021년에는 2017년보다 35%가 늘어났다. 자산 2조원 이상 공기업의 경영수지는 인력 증원 등으로 인해 2016년 14조원 흑자에서 2020년 2065억원 적자로 반전됐다.

더 중요한 것은 문 정부 동안에 투자 효율성에 의한 사업 선정 원칙이 무너진 사실이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압력에 맞서 재정 효율성을 지키기 위해 예비타당성(예타)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문 정부는 지역 형평 등을 내세워 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을 대폭 늘리는 방법으로 예타 제도를 무력화했다. 예타 조사 면제 건수는 이명박 정부 90건(61조원), 박근혜 정부 87건(24조원)보다 문 정부에서 122건(97조원)으로 많이 증가했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타당성 없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남동부 허브 공항으로 김해·밀양과 부산 가덕도 등 세 후보지를 검토해 김해공항을 최적지로 선정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일부 조사항목에 오류가 있었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부산 가덕도를 선정했다. 경제성도 없고 과거 세 후보지 검토에서 꼴찌였던 지역을 오직 부산시 선거 득표를 위해 다시 선정했다. 당초 7조원 규모의 공사비가 14조원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다른 지역에서 공항·도로 등을 건설해 달라면 무슨 명분으로 막을 것인가.

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기피해 미래세대 부담을 가중했다. 국민연금은 설계 당시보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해 인구 추계를 할 때마다 고갈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최근 예측에 따르면 연금 고갈 연도는 당초 2061년에서 2055년으로 6년 빨리 올 전망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새로운 인구 추계에 따라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그런데 문 정부는 5년간 국민연금 관련 대책을 전혀 추진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고갈될 경우 연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요율이 현행 9%에 30% 이상으로 인상돼야 한다. 미래세대에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나.

향후 재정 건전성이 우려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저출산·고령화의 심화 때문이다. 2021년 합계 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고령화도 급속도로 진행돼 고령화율(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은 17%다. 2025년 20%, 2050년에는 40%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고령화가 심화할 경우 각종 연금과 의료비 등 복지 지출이 급증하지만, 그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세입이 줄어들면서 재정수지가 악화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과 고령화 비율이 비슷했던 1990년대 일본은 국가부채비율이 GDP의 60% 수준이었다. 최근 고령화율이 27%로 더 심화해 국가부채비율이 세계 최고인 250%에 육박한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재정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 예타 심사기준을 보강하는 등 무력화된 예타 제도의 원칙을 다시 세우고 제대로 지켜야 한다. 예외 기준도 엄격히 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재정지출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최대 요인은 선심성 선거공약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도 재검토해 재정원칙을 해치는 공약은 과감히 철회해야 한다.

예컨대 병장 봉급 200만원 공약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소위 봉급이 200만원 미만인데 병장 봉급을 올릴 경우 전체 군인 봉급을 올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경찰관·소방관·교도관 등으로 도미노 인상이 벌어지면 재정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둘째, 재정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경제·사회 여건 변화로 공무원 인력 수요도 크게 변하고 있다. 예컨대 저출산으로 인구가 크게 줄어들면서 인구가 3만명도 안 되는 군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행정의 효율화가 가능해졌으니 구조조정과 기능 개편 등으로 공무원 수를 확 줄여야 한다.

셋째, 각종 사회보험과 기금에 대해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문 정부가 기피한 국민연금 개혁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은 불가피하다. 의료보험도 그동안 지나친 혜택 확대로 보험요율 인상과 국고 지원 확대가 불가피하기에 역시 개혁해야 한다. 이처럼 시급한 개혁이 계속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넷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 지금은 내국세의 20.79%를 초·중·고 교육비로 배분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학생 수는 급감하는데도 전체 내국세 규모가 늘면서 자동으로 지방교육교부금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2022년 학생 수는 2006년보다 33% 감소했는데 교부금은 2.6배 늘어났다. 적자 국채를 100조원 발행하는데 교육재정만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다섯째,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경제 여건이 크게 바뀌었는데도 수많은 공공기관이 그대로 남아있다. 공공기관의 비효율이 공공성이란 이름으로 은폐되고 있다.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영화하고 경쟁이 가능한 분야는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여섯째, 재정준칙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포퓰리즘에 따른 방만한 재정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등의 한도를 헌법이나 법률로 정해서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터키와 한국뿐이다. 한국은 2020년 정부가 재정준칙 관련 법률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하지도 않고 방치하고 있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일곱째, 지속가능한 재원 조달을 위해 세제를 개혁해야 한다. 향후 재정 운용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세입 증대가 불가피하다. 지금까지는 국민의 조세 저항을 고려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 인상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법인세는 상위 10% 기업이 전체의 96%를 납부하고, 소득세는 상위 10% 고소득층이 전체의 72%를 납부하고 있다. 이들 기업과 계층에 증세해도 세수증대 효과는 크지 않다. 소득세를 한 푼도 납부하지 않는 근로자가 37%나 된다.

따라서 부가가치세율의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부가가치세는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일률적인 세율 10%가 적용됐다. 소득분배에 역진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증세 대상에서 줄곧 제외됐는데, 이제는 재고해야 한다. 징수 시점에 소득분배 개선 효과는 소득세보다 떨어지지만, 징수 이후 사회적 약자 위주로 지출할 경우 소득분배 개선 효과는 크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9%이고 스웨덴·덴마크 등 복지 모범국가는 부가세 세율이 25%나 된다.

비효율적인 재정지출 확대는 민간 기업의 활동을 저해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미래세대에 엄청난 국가부채를 떠넘기게 한다. 재정 개혁을 시급히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개혁은 기득권층의 반발로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당시 기획예산처에 정부개혁실을 설치해 개혁의 구심체로서 많은 개혁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새 정부가 힘이 있는 출범 초기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개혁 추진기구를 설치해 개혁을 힘있게 추진하길 바란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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