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0만 쌍 갈라서는 시대, 안방 파고든 '이혼 예능'

남수현 입력 2022. 5. 24. 00:04 수정 2022. 5. 2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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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 오은영 박사가 안무가 배윤정 부부를 관찰한 뒤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습. [사진 MBC]

“왜 너는 항상 남들이랑 (나를) 똑같이 대하느냐고. 그럴 거면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겠냐고!”(아내) “그럼 남이랑 살아.”(남편) “그러고 싶어, 지금이라도.”(아내) 결혼 4년 차 부부가 세 살 아들을 앞에 두고 벌이는 설전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10개월 아들을 둔 다른 부부는 남편이 아내를 향해 “생각이라는 걸 처 안 하나? 아메바냐?” “앞으로 뭐 산다고 설치면 죽는다” 등 폭언을 퍼붓는다. 지난 20일 첫 회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결혼과 이혼 사이’의 장면들이다.

한해 19만여 쌍이 결혼하고, 또 다른 10만여 쌍은 이혼하는 시대. (지난해 국내 혼인 19만2507건, 이혼 10만1673건) 안방 예능에도 이혼 소재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이미 이혼한 ‘돌싱(돌아온 싱글)’ 개개인을 조명한 예능은 있었지만, 부부가 이혼을 고민하는 갈등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 예능의 등장은 새로운 흐름이다.

티빙 ‘결혼과 이혼 사이’. 이혼을 소재로 한 예능이다. [사진 티빙]

지난해 연애 리얼리티 ‘환승연애’로 흥행에 성공한 티빙이 내놓은 ‘결혼과 이혼 사이’는 이혼을 고민하는 네 부부의 일상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잘한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라 말하는 작사가 김이나, 결혼 8년 차 가수 이석훈 등이 패널로 출연해 관찰 카메라에 담긴 부부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 이혼 이력이 있는 방송인 김구라 부자까지 포함된 MC 라인업이 진솔함을 끌어올린다.

지난 16일 첫 방송을 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도 비슷한 포맷이지만, 오은영 박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차별점이다. 그간 주로 육아 문제를 다뤘던 오 박사가 갈등을 겪는 부부를 관찰하고 고민을 나눈다. 오 박사는 제작발표회에서 “많은 상담 프로그램에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부부 갈등을 다룬 적은 없다. 이혼 위기에 있는 부부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2’도 이혼을 소재로 한 예능이다. [사진 TV조선]

전문가를 내세운 만큼 문제를 관찰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과정이 한층 길고 세밀하다. 한 회에 한 부부만 관찰하고, 해당 부부도 스튜디오에 출연해 속내를 털어놓는다. 첫 회에는 안무가 배윤정과 축구선수 출신 남편 서경환이 육아 분담 문제 등으로 다투는 모습을 다뤘다. 배윤정은 산후우울증을 호소하는데, 서경환은 “아내를 위해 재택근무를 한다”면서도 일에만 몰두할 뿐 육아와 가사에는 소홀한 상황. 오 박사는 “남편의 가사와 육아에 대한 무관심은 산후 우울을 악화시킨다”며 “(남편이) 좀 더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혼 예능’의 원조 격인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지난달 8일 시즌2를 시작했다. 시청률(6%대)도 꾸준하다. 그룹 유키스 전 멤버 일라이와 레이싱모델 출신 지연수 등 이혼한 유명인이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리얼리티다. 신동엽·김원희·김새롬이 이들을 관찰한다. 5월 2주차 비드라마 TV 프로그램 화제성 조사(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서 MBC ‘놀면 뭐하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혼 예능이 쏟아지는 건 관찰 예능의 인기가 지속하면서 제작자들이 새로운 관찰 거리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이혼을 금기시하던 사회 인식이 바뀐 영향도 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가족 구성을 둘러싼 사회 제도나 관습에 대해 과거보다 자유로운 시각을 갖고 있다”며 “사생활 공개에도 거리낌이 없다 보니 금기시했던 것도 공개하기 시작한 양상”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혼 상대와 편한 친구로 지내는 등 새로운 관계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거나, 전문가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포맷 등은 이혼 예능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평했다.

다만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전시하는 데만 치중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구 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무감각해지는 상황에서 갈등을 관찰하는 예능은 자칫 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도 “방송이 일종의 ‘불구경하기’ 식으로 흥미만 유발한다면 자극만 남게 된다. 편집과 구성을 통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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