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EF 통해 美는 '반중 연대', 韓은 '신기술 경쟁력' 노린다

손해용 2022. 5. 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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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도하는 경제협력체인 인도ㆍ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23일 공식 출범했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한국ㆍ일본ㆍ호주ㆍ뉴질랜드와 인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7개국(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ㆍ싱가포르ㆍ태국ㆍ베트남ㆍ브루나이) 등 총 13개국이 창립멤버로 참여한다.

IPEF는 신뢰가 쌓인 국가들끼리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상호 협력하는 이른바 프렌드쇼어링 (friend-shoring)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경제와 외교ㆍ안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디지털ㆍ공급망ㆍ청정에너지 등 새로운 통상 의제에 공동으로 대응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은 IPEF를 통해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경제 패권을 지키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포석이다. 특히 중국의 ‘라이벌’ 격인 인도가 막판 IPEF에 동참하면서 힘을 받았다. 그간 독자적인 경제 노선을 걷던 인도가 참여하면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인도ㆍ태평양 지역으로 남하하지 못하도록 막는 그림을 완성하게 된 셈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첨단기술 분야에서 기술 수준에 비해 생산시설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전 공정)-한국(메모리 반도체 설계ㆍ생산-일본(제조장비)-말레이시아(후 공정) 등으로 이어지는 다자간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해 가입을 결정했다. 한국은 미국이 이미 만들어 놓은 틀에 단순히 ‘참여국’ 형태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창립멤버’로 참여한다. IPEF는 핵심 의제만을 정했을 뿐 구체적 내용은 가입국이 함께 채워 나가야 하는 상태로, 세부 논의를 통해 자세한 틀을 잡아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출범 초기인 만큼 앞으로 구체적 내용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룰 메이커’로서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고, 미국과의 연대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IPEF를 통해 핵심 소재·광물 등의 분야에서 공급망의 다변화와 안정화도 꾀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회원국 간 정보 공유를 통해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급망 교란 행위 발생 시 공동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또 미국ㆍ일본 등 참가국과의 협력을 통해 디지털 경제 및 인공지능(AI)ㆍ양자컴퓨터ㆍ클린에너지 등 신기술 분야 관련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탈탄소, 인프라 투자, 공동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국내 기업의 인도ㆍ태평양 시장 진출 기회가 확대되는 것도 기대효과 중 하나다. IPEF 참가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의 40.9%를 차지하고, 한국과 이들 국가의 교역 규모는 3890억 달러(약 491조원)에 이른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 제조 강국이지만, 원천 기술과 생산 장비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미국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다. 세계 1위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있는 대만이 IPEF 참여국에 빠진 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2025년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만이 IPEF에서 빠진 것의 득실은 지금 예단하긴 힘들다”면서도 “다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파운드리 역량을 키워나갈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보수적으로 봐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새롭게 형성되는 통상 규범ㆍ질서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IPEF 가입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질서에서 각종 혜택은 취하고 규범 준수는 회피하고 있다고 판단하는데, 이것이 IPEF라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 배경”이라며 “한국은 과도하게 높은 중국에의 경제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컸는데, IPEF를 통해 대중 의존도를 분산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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