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0만건 이혼 시대..안방 파고든 '이혼 예능'

남수현 입력 2022. 5. 23. 17:13 수정 2022. 5. 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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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결혼과 이혼 사이'는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네 부부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사진 티빙]


“왜 너는 항상 남들이랑 (나를) 똑같이 대하냐고. 그럴 거면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겠냐고!”
“그럼 남이랑 살아.”
“그러고 싶어, 지금이라도.”

결혼 4년차 부부가 세 살 아들을 앞에 두고 벌이는 설전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10개월 아들이 있는 또 다른 부부는 남편이 아내를 향해 “생각이라는 걸 처 안 하나? 아메바냐?” “앞으로 뭐 산다고 설치면 죽는다” “왜 질질 짜는데” 등의 폭언을 퍼붓는다. 지난 20일 첫 회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결혼과 이혼 사이’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한해 19만여 커플이 혼인하지만, 또 다른 10만여 커플은 이혼하는 시대. (지난해 국내 혼인 건수는 19만2507건, 이혼 건수 10만1673건) 안방 예능에도 이혼을 주요 소재로 내세운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이혼을 한 ‘돌싱’(돌아온 싱글) 개개인을 비추는 예능은 지난해 우후죽순 생겼지만, 부부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갈등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 프로그램들의 등장은 새로운 흐름이다.

티빙 오리지널 '결혼과 이혼 사이' 포스터. [사진 티빙]


지난해 연애 리얼리티 ‘환승연애’로 흥행에 성공한 티빙이 내놓은 ‘결혼과 이혼 사이’는 각각의 이유로 이혼을 고민하는 네 부부의 일상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잘한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라 말하는 작사가 김이나, 연예계 소문난 ‘사랑꾼’인 결혼 8년차 가수 이석훈 등 호감도 높은 방송인들이 패널로 출연해 관찰 카메라에 담긴 부부들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 본인 스스로 이혼한 이력이 있는 방송인 김구라와 그의 아들 그리까지 포함된 MC 라인업이 진솔함을 끌어올린다.

지난 16일 첫 방송을 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도 비슷한 포맷이지만, ‘국민 멘토’ 오은영 박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차별점이다. 그간 주로 육아 문제에 멘토링을 해왔던 오 박사가 갈등을 겪는 부부들을 관찰하고 고민을 나눈다. 오 박사는 제작발표회에서 “제가 많은 상담 프로그램에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부부 갈등을 다룬 적은 없다. 이혼 위기에 있는 부부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 포스터. [사진 MBC]


전문가를 내세운 만큼 문제를 관찰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과정이 한층 길고 세밀하다. 한 회에 한 부부만 집중 관찰하고, 관찰 대상이 된 부부도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해 속내를 털어놓는다. 16일 전파를 탄 1회에서는 유명 안무가 배윤정과 축구선수 출신 남편 서경환이 육아 분담 문제 등을 두고 다투는 모습이 그려졌다. 배윤정은 산후우울증을 호소하지만, 서경환은 아내를 위해 재택근무를 한다면서도 일에만 몰두할 뿐 육아와 가사에는 소홀한 상황. 오 박사는 이들에게 “남편의 가사와 육아에 대한 무관심이 산후우울을 굉장히 악화시킨다”며 “(남편이) 좀 더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들을 관찰하고 솔루션을 제시한다. [사진 MBC]


‘이혼 예능’의 원조격인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2020년 방영된 시즌1에 이어 지난달 8일 시즌2를 런칭, 6%대 시청률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그룹 유키스 전 멤버 일라이와 레이싱모델 출신 지연수 등 이혼한 유명인 부부들이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리얼리티로, 방송인 신동엽·김원희·김새롬이 이들을 관찰한다. 5월 2주차 비드라마 TV 프로그램 화제성 조사(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서 MBC ‘놀면 뭐하니?’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화제성도 높다.

이처럼 이혼 예능이 쏟아지는 건 관찰 예능의 인기가 수년간 지속되는 가운데, 제작자들이 새로운 ‘관찰 거리’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혼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던 사회적 인식이 바뀐 영향도 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가족 구성을 둘러싼 사회적 제도나 관습에 대해 과거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시각을 갖고 있다”며 “사생활을 공개하는 데에도 거리낌 없다 보니 그간 금기시됐던 주제들도 판도라 상자가 열리듯 공개되기 시작한 양상”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혼 상대와 편한 친구로 지내는 등 새로운 관계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점이나, 전문가가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포맷 등은 이혼 예능의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평했다.

다만 갈등을 해소하는 것보다 낱낱이 전시하는 것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구 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무감각해지는 상황에서 갈등을 관찰하는 예능은 자칫 이를 치유하기보다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도 “방송이 갈등 해소보다 싸우는 모습만 집중적으로 조명해 일종의 ‘불구경’하는 식의 흥미를 유발한다면 자극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편집과 구성을 통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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