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 사태로 주목받는 재건축 신탁..사업 속도 빠르지만 높은 수수료 부담

2022. 5. 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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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동 한양아파트. 요즘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받는 단지다. 지난 4월 중순 한양아파트는 주민 75%의 동의를 받아 ‘신탁방식’으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KB부동산신탁을 신탁방식 재건축 예비 신탁사로 선정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이후 KB부동산신탁이 정식 신탁사로 지정되면 재건축 조합이 설립된 것과 같이 사업시행인가 등의 향후 절차가 진행된다. 한양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상반기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을 거쳐 2028년 준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사태를 계기로 신탁방식 재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탁방식이란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조합 대신 사업시행을 맡아 사업 전반을 관리하고 일을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조합보다 투명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 조합과 시공사, 혹은 조합 내분에 따른 공사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지금까지 신탁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고 신탁 수수료 역시 만만찮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최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등은 재건축 신탁 제도를 전면 재정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신탁방식에 대한 관심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올림픽파크포레온’ 공사 현장. (윤관식 기자)

▶신탁방식 재건축이란?

▷전문업체가 사업 전반 관리

민간이 추진하는 재건축 사업은 크게 조합방식과 명의신탁에 따른 신탁방식 등 2가지로 나뉜다.

조합방식은 현재 대부분 재건축 단지가 추진하고 있는 방법이다. 입주민으로 구성된 조합이 조합장 등 임원진을 꾸리고 시공사 등과 계약하는 방식이다. 주택 소유주로 구성된 조합이 시공사 선정과 각종 인허가, 분양 등 모든 절차를 맡아 진행한다. 즉, 입주민이 모든 사업을 알아서 해야 하는 구조다.

조합방식 재건축은 별도 수수료 없이 주민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재건축은 사업비만 수조원에 달하는데 소위 ‘동네주민’들로 구성된 비전문가들이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조합원 간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각종 비리로 조합 집행부가 교체되면서 사업이 기약 없이 지연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업이 지체되면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 사업성이 떨어진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사업 형태가 바로 신탁방식이다. 2016년 도입된 신탁방식은 조합이 일부 수수료를 지불하고 사업 진행 전반에 걸쳐 전문 신탁업체가 관리하는 형태다. 신탁사를 시행사로 지정하려면 단지 전체 소유주의 75% 이상 동의와 동(棟)별 소유주의 50% 이상 동의를 확보하고, 토지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신탁해야 한다. 신탁사가 시행을 맡으면 사업 초기 단계부터 안정적인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신탁사가 자체 신용도를 기반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통해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탁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 신탁사가 시행을 맡으면 일단 조합을 설립하지 않아도 돼 추진위원회 구성에서 조합설립인가까지 소요되는 4년가량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시공사 선정 역시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신탁사)시행자 지정 후’로 앞당겨진다.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조합에 부담인 초기 사업비도 신탁사가 조달할 수 있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활발한 모습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총매출액의 약 1~3%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가 큰 서울 재건축 단지는 수수료만 해도 수십억원에 이른다. 때문에 여의도 일부 재건축 단지를 제외하면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탁방식 재건축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영향 때문이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공사가 52%나 진행됐지만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소송전이 벌어졌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둔촌주공 조합원 중 일부는 ‘지금이라도 신탁방식으로 바꿀 수 있냐’는 문의를 한다”며 “애초부터 둔촌주공이 신탁방식으로 진행됐다면 신탁사 신용도에 따라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해 지금과 같은 사업 지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탁방식이 재건축 ‘만능키’ 될까

▷서울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 없어

각종 장점이 부각되면서 서울시와 정부는 신탁방식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현재 신탁 계약서는 조합이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하거나 해지할 경우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사업 실패에 따라 손실이 날 경우 조합이 손실을 대부분 떠안기도 한다. 일부 계약서는 시공사 선정 주체가 모호해 조합의 선택권이 침해될 소지도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와 정부는 조합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표준 계약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가 표준 계약서를 고시하면 신탁사가 이 계약서를 기본으로 조합과 계약을 맺도록 하는 방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탁방식 재건축은 장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계약 때문에 조합 외면을 받고 있다”며 “신탁사 대비 비전문가인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공정한 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 신탁 계약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신탁방식과 별개로 현행 조합방식 재건축 사업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예컨대 재건축 단지에서 직전 3년 거주, 5년 이상 소유해야 조합 임원 자격이 부여되는 현행 기준에 예외 조항을 두는 방식이다. 변호사나 회계사, 건축사 등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을 활성화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조합 집행부 교육 의무화도 검토 대상이다.

둔촌주공 영향으로 신탁방식 재건축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숙제도 산더미다. 일단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이 최고 걸림돌이다.

신탁방식 재건축 사업 중에서는 코리아신탁이 시행한 경기 안양시 동안구 진흥·로얄(현재 한양수자인평촌리버뷰)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아파트는 2016년 9월 시행자 지정 후 불과 5년 만인 지난해 11월 준공했다. 다만 서울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 자체가 없다. 2016년 서울 여의도에서 신탁방식 재건축 붐이 일면서 시범아파트를 시작으로 공작, 수정, 대교 등 6개 단지가 줄줄이 이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착공한 단지는 없다. 대교는 예비 신탁사 선정 후 5년이 지나도록 50%를 넘어야 하는 동별 동의율을 채우지 못했다. 광장은 사업 방식을 둘러싼 주민 간 대립으로 시행자 지정이 취소될 처지에 놓였다. 시범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2017년 말까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할 예정이었지만, 현재까지 시행자만 지정한 상태다.

주민들로선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신탁 수수료도 부담이다. 예상보다 더딘 사업 속도와 높은 수수료 때문에 서초구 신반포4차와 방배7구역은 신탁방식을 검토하다 결국 포기했다. 시행자 지정을 위해 토지 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도 신탁방식 활성화를 막는 요인이다. 주민 이익을 대변할 법적인 주민 협의체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규모 단지거나 주민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지 않은 곳은 조합방식을 택하는 것이 사업성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0호 (2022.05.25~2022.05.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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