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풍 부는 서울 경매 시장..실거주 의무 없는 재건축 아파트 경매 인기
# 얼마 전 경매로 나온 서울 강남구 ‘삼성동롯데아파트’ 6층 전용 91.77㎡(사건번호 2020타경6369). 최초 감정가가 20억4000만원이었던 이 아파트는 앞서 1차 경매에서 한 차례 유찰된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12일 최저 입찰가가 감정가의 80% 가격인 16억3200만원까지 낮아져 다시 경매로 나오자 이번에는 경매받겠다는 사람이 29명이나 몰렸다. 결국 이 아파트는 최초 감정가보다 1억2000만원, 최저 입찰가보다 5억2800만원 높은 21억6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105.9%)이 100%를 훌쩍 웃돌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초까지 얼어붙었던 부동산 경매 시장이 반등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이후 주저앉나 싶던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 금액 비율)은 다시 100% 위로 치솟았다. 아파트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대출마저 막히자 경매 시장에서도 ‘패닉바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이 최근 발표한 ‘2022년 4월 경매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건수는 1274건으로 이 중 627건이 낙찰됐다.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은 49.2%로 전월(48.5%) 대비 0.7%포인트 올랐고, 낙찰가율 역시 전월(96.4%)보다 1.5%포인트 오른 97.9%를 기록했다. 평균 응찰자 수는 전달(7.3명)보다 0.7명이 증가한 8명으로 집계됐다.
▶4월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 105%
서울의 경우 4월 낙찰률(55.3%)이 전달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낙찰가율이 훌쩍 뛴 점이 눈에 띈다. 전월(96.3%) 대비 8.8%포인트 상승한 105.1%를 기록했다. 낙찰가율이 100%를 넘어섰다는 것은 서울 아파트 입찰 가격이 감정가보다 높게 형성됐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해 10월 119.9%를 기록한 후 5개월 연속 하락했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각각 97.3%, 96.3%로 100%를 밑돌기도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줄곧 하락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이 6개월 만에 반등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 경매에 뛰어든 평균 응찰자 수(6.7명) 역시 올 들어 가장 높았다. 낙찰률은 55.3%로 전달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수도권 아파트 낙찰가율도 반전 분위기가 감지된다. 수도권 낙찰가율은 지난해 8월(117%) 이후 7개월째 하락하다 지난 4월 102.6%를 나타내며 다시 100%대를 회복했다.
전문가들은 주로 강남권이나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기대되는 아파트에 많은 응찰자가 몰리면서 평균 낙찰가율을 끌어올렸다고 분석한다. 일반 매매 거래를 통해 강남권 중에서도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 있는 주택을 구매하려면 제약이 많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 일정 면적 이상 주택, 상가, 토지를 거래할 때 관할 구청장 허가를 받아야 해서다. 실거주 거래만 허가하기 때문에 사실상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반면 경매로 낙찰받은 주택은 실거주 의무, 거래 허가 등 신고 대상이 아니다. 자금조달계획서 제출과 실거주 의무도 없다. 낙찰받은 뒤 전세를 놓을 수 있다 보니 자금 여력이 부족한 투자자들이 ‘갭투자’ 용도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실제 올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나오는 주택 경매 매물은 최초 감정가보다 수억원씩 높은 가격에 낙찰되고 있다”며 “높은 가격에 낙찰받아도 당장 들어가는 자금이 적고 직접 입주할 필요도 없다 보니 수요가 꾸준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재건축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경매 시장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인다.
지난 4월 26일 감정가의 7264%에 낙찰된 노원구 중계동 노후 주택(건물면적 23㎡)이 대표적이다. 토지 없이 건물만 경매 대상이던 이 물건은 감정가(640만원)의 72배인 4억6400여만원에 매각됐다. 재개발이 본격화하면 조합원 자격으로 아파트 입주권을 얻는다는 점이 투자자를 끌어모아 이례적으로 높은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달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11단지 전용 51.48㎡ 물건은 감정가(9억3200만원) 대비 31.4% 높은 12억2510만원에 낙찰됐다. 응찰자가 18명이나 몰리며 경쟁한 결과였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재개발 사업은 건물, 토지, 지상권 중 하나만 있어도 조합원 조건이 충족된다”며 “재건축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입주권을 얻을 수 있어 경매 시장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재건축 경매? 예외 많으니 ‘주의’
다만 법원경매 시장에서 재건축·재개발 예정 구역의 주택·상가를 낙찰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조합원 자격이나 입주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 재건축 아파트를 일반 매매하면 조합원 지위 승계에 제한이 있고 경매로 낙찰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경매로 정비사업 예정 구역 물건을 낙찰받았다 해도 조합원의 지위 양도 금지 규정은 똑같이 적용된다. 현행법상 재건축 사업은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는 조합원 지위를 제3자에게 넘길 수 없도록 돼 있다. 재개발 사업 역시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에는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없다.
다만 경매에서는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규정과 관련해 예외 규정이 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지 못해 나온 경매 물건이나 국가 세금을 미납해 진행되는 공매의 경우에는 사업 단계와 상관없이 낙찰자도 조합원 지위를 승계받을 수 있다. 이때 경매 신청자는 공인된 금융기관이나 국가기관이어야 하며, 개인이 사적인 채무를 갚기 위해 경매를 신청했다면 그 물건은 낙찰받아도 분양권을 받을 수 없다. 이 경우에는 현금 청산 대상이 된다. 청산한 현금이 낙찰가보다도 낮을 가능성도 있다.
윤재호 대표는 “특히 재개발의 경우 해당 물건이 입주권이 생기지 않는, 일명 ‘물딱지’인지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컨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제39조 1항에 따르면 이미 조합설립을 인가받은 특정 재개발 구역 내 여러 주택을 보유한 소유주가 주택 중 하나를 매도한 경우, 그 집을 매수한 사람은 입주권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다만 조합설립 이전에 나온 물건이라면 매도인·매수인 모두 입주권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 여기서 매도인 가족(가구원)이 같은 구역에 다른 주택을 보유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건축·재개발과 상관없이 매매 시장 시세와 입찰 가격을 꼼꼼히 비교해보는 수고도 필요하다. 경매로 나오는 아파트 감정가액은 통상 입찰 6개월 전에 매겨진다. 지난해 말까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값 상승세가 유독 가팔랐던 만큼, 최근 경매로 나오는 물건 중에는 최저 입찰가가 시세보다 높은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때문에 경매 낙찰가와 급매물 시세가 비슷하다면 굳이 경매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경매는 기존 주택 구입과 달리 낙찰 후 점유자를 내보내는 명도 절차 등을 거쳐야 해서 훨씬 복잡하다. 낙찰 후에도 점유자와 이사 협의를 거쳐야 해 명도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이사 협의가 수월하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때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애초에 경매 과정에서 각종 권리 분석도 거쳐야 해 일반 매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만큼 경매 입찰 전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좋다.
[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0호 (2022.05.25~2022.05.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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