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디지털 금' 가상화폐.. 첨단 잠재력과 투자 위험성 사이

2022. 5. 2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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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식시장 하락세와 함께 ‘디지털 금’이라는 가상화폐(Cryptocurrency)도 반토막이 나버렸다. 더구나 5월 들어서는 일부 가상화폐가 대폭락하면서 이 시장에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아마도 지금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대부분 손실을 보고 있을 텐데 투자자 다수를 점하고 있는 청년들이 걱정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청년들이 미래의 꿈조차 꾸기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희망처럼 보였던 가상화폐마저 흔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가상화폐는 신박한 발명품

게티이미지

우리가 이해를 못한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이 녹아 있는 가상화폐가 그렇다. 블록체인은 중개거래의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1991년 고안됐다. 당사자가 직접 거래하면서도 사기를 막기 위해 거래내역(block)을 모두 공개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앞에 공개한 거래내역에 덧붙여서(chain) 새로운 기록을 보내는 것이다. 만일 사기꾼이 위조를 하려면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컴퓨터에 수록된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은 굉장한 아이디어였지만 기록을 보내는 등 귀찮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기에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8년 어떤 사람(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으로만 알려져 있다)이 이 귀찮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지급하는 유인책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관심받지 못하다가 2017년쯤부터 마른 들에 불길 번지듯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의 시장가치가 1조8000억 달러(약 2300조원)에 달했는데, 작년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을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다. 처음에는 청년들끼리 주고받는 틈새시장 같더니 지금은 유수의 금융기관까지 참여하면서 주류 금융시장의 일원이 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가상화폐 시장이 무너지면 여타 금융시장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가상화폐 투자의 위험성


최근 테라와 루나라는 가상화폐가 폭락함으로써 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해당 가상화폐를 바로 거래정지시킴으로써 기존 시장으로의 파급을 차단했다고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위험성은 여전하다.

먼저 가상화폐를 이용의 관점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안하다. 사람들이 가상화폐를 거래의 매개 수단(예를 들면 물품 구입대금)으로 이용하기보다 금과 같은 가치 축적의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화폐가 가치 축적의 수단이 되는 것은 이제까지 거래를 할 때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라도 동일한 가치의 재화와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가상화폐는 거래의 매개로 채 이용되기도 전에 투자의 대상으로 인기를 끌어버렸다. 결국 가상화폐는 투자 수급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게 됐고, 급기야 거래의 매개 수단으로 이용하기에 매우 불편하게 됐다. 화폐의 본질적 기능을 잃어버린 격인데, 핵심 기능이 변질된 재화가 오래 존속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가상화폐는 여타 유가증권과 달리 실물자산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공식 화폐와 같이 국가가 가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 가격은 순전히 투자의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지난 4~5년간 가상화폐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는 점이 꺼림직하다. 예를 들어 작년 11월에 비트코인 가격은 코로나 직전에 비해 무려 1700%나 상승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풀린 유동성의 상당 부분이 가상화폐로 몰렸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인데, 이제 통화정책이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유동성을 대거 흡수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아무래도 높이 오른 놈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

가상화폐의 종류가 많다는 것도 걱정거리다. 현재 전 세계에는 1만9000여종의 가상화폐가 있는데 그중 몇 개가 10년 후에도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가상화폐는 아직도 개발 중인 미완성품이기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국가가 가상화폐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거래는 국가가 통제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통한 거래에 세금을 물릴 수도 없다. 경찰이 갖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마약이나 무기 암거래를 잡는 영화를 떠올려 본다면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세상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중국인데, 중국 당국이 작년 11월에 가상화폐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이후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의 급속한 디지털화에 가장 적합하다는 가상화폐의 필요성 또한 인정해야만 한다. 가상화폐의 잠재력은 실로 엄청나다.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가상화폐 연구를 하는 것도 그 증거다. 특정 국가의 디지털통화(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가 새로운 기축통화로 부상하게 된다면 전 세계 경제·정치판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격이 심하게 등락한다고 해서 가상화폐를 완전히 내치거나 그 기저기술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차제에 가상화폐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잘 정비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기술개발 장려와 함께 금융 안정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투자자 보호에도 균형을 맞추는 법규 제정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덧붙여 가상화폐 투자자 가운데 다수가 청년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신기술 몰이해에 대한 반감이었든지 혹은 이해집단의 부추김이었든지 간에 본인의 여력을 넘어 투기를 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한탕주의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분위기가 만연하는 사회 현상까지도 청년층의 잘못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공정한 경쟁 구조와 균등한 기회 부여가 보장될 때 청년세대가 투기판을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도 미래가 막막하다면 어느 누가 먼 앞날을 위해 당장의 편안함을 포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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