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사용기

이다울 작가

바깥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및 헤드폰이 많은 사람의 귀에 달라붙어 있다. 내게도 3주간 기다리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홍콩으로부터 배송됐다. 나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 개처럼 흥분해 택배 상자를 뜯었다. 과학 기술은 대단했다. 버튼 하나로 외부의 소리를 차단할 수도, 극대화할 수도 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의 출현은 청각 장애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이즈 캔슬링의 세계에서는 자전거나 자동차의 돌진, 우리 집고양이 등을 비롯한 누군가의 간절한 부름, 괴한의 스토킹 등을 모두 노이즈로 취급한다. 그것은 나를 위험이나 곤란에 빠뜨릴 수 있다.

동네에 놀러 온 친구를 기차역으로 마중 가는 길에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걸었다. 외부 세계의 한 부분을 소거하자 영화 속 세트장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단절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고용된 배우처럼 보인다. 낯선 사람들이 더더욱 낯설다. 기차역 앞 광장에는 언제나 취객이 한 명 이상 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취객 한 명이 여기저기 삿대질 중이었다. 그를 포함한 역전의 취객 대부분이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지만 고성과 욕설은 아무래도 위협적이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고갯짓하며, 실례가 되는 줄도 모르고 영화 보듯 그를 관찰했다. 넋을 놓고 있다가 음악을 뚫고 들어오는 그의 고성에 잠시 머리에서 헤드폰을 벗었다. 그는 그때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게 다였다. 나는 다시 헤드폰을 썼다. 혹시 실례가 된다 할지라도 그를 다시 내가 고용한 배우로 만든다. 그는 이제 실험적인 힙합 음악의 빠른 비트에 맞춰 삿대질한다. 그 모습을 슬로 모션으로 편집하고 싶지만 아직 그런 기술까지는 내 수중에 없다. 있다고 한들 그건 정말 큰 실례 같아서 상상에 그치기로 한다.

이다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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