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시시각각] 140번째 태극기 생일

박정호 입력 2022. 5. 23. 00:36 수정 2022. 5. 23. 06: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40년 전인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사용된 태극기 도안. 당시 미국 측 대표였던 슈펠트 제독이 직접 그려 미국 해군 측에 전달했다. 대한민국 상징인 태극기가 탄생한 날이다. 아쉽게도 아직 태극기 창안자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가로 6.1㎝, 세로 3.8㎝. 명함보다도 작다. 한국 최초의 태극기 도안이다. 손으로 직접 쓴 ‘Corea Ensign(깃발)’도 보인다. 도안자는 미국 해군 제독 슈펠트. 그가 남긴 ‘슈펠트 문서’ 중 일부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7년 겨울 학회 참석차 미국에 갔다가 미 의회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아냈다.
지난 13일 이 교수의 특강 ‘슈펠트 태극기, 어떻게 찾았나’가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 교수는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정말 뜻밖이었어요, 깜짝 놀랐죠.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이하 조미조약) 때 사용된 태극기 도안이 아닙니까. 당시 슈펠트는 미국 측 대표였어요.”

■ 1882년 조미조약 때 만든 태극기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염원 상징
눈앞의 난국 헤쳐가는 지혜 담아


슈펠트의 태극기 도안은 요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미 해군이 49개국 국기를 소개한 『해양국가의 깃발』(1882.7)과 함께다. 조미조약을 맺은 지 불과 두 달 만에 태극기를 실을 만큼 조선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슈펠트 도안은 1882년 5월 22일 태극기의 탄생을 공식화했다. 태극기의 생일이라 부를 만하다. 조미조약 미국 측 대표가 직접 보고 그린 것을 미 해군에 보냈기 때문이다. 그해 9월 일본 수신사로 파견된 박영효가 선상에서 처음 태극기를 그렸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
22일 어제는 140번째 맞는 태극기의 생일. 조미조약(한·미 수교) 140돌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조미조약은 조선이 서구와 맺은 최초의 조약으로,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는 출발점이 됐다. 그날 태어난 태극기도 역사적 현장을 지켜봤다.
태극기는 19세기 후반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역학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조약을 중재한 중국(청나라)은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점을 명문화하려 했다. 미국과 함께 조선을 공동 보호하는 국가로서, 러시아와 일본 세력을 견제하려고 했다.
미국 측 대표 슈펠트는 중국의 여러 차례 요청을 거부했다. 그가 조선을 각별히 아껴서가 아니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 확장 정책에 몰두했다. 해양제국 건설, 이른바 시장 확대를 노렸다.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이 돼야 조선이란 시장에서 기회 균등의 원칙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조선의 사정도 급박했다. 중국·일본·러시아의 포박에서 벗어날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과거 중국과의 책봉-조공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 독립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미국과 손을 잡게 됐다. 조선이 제3국으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미국이 즉각 개입하고, 조선도 수출입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관세 자주권을 인정받았다. 이후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구 열강과 잇따라 체결한 조약의 모델이 됐다.
하지만 아직 태극기 창안자는 불분명하다. 명확한 자료가 없어서다. 고종 임금과 조약 당시 역관(譯官)으로 참여한 이응준이 주로 거론된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인 실록도 도움이 안 된다. 『고종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27~35년 일본 학자들 중심으로 편찬돼 누락·왜곡된 측면이 많다. 더욱이 태극기 관련 기록은 고종이 대신들의 요청에 제작을 윤허했다는 단 한 줄만 나온다. 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초상이다.
어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굳건한 한·미 동맹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다. 한·미·일 3국의 연대도 가시화했다. 향후 중국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평행이론을 믿지 않지만 140년 전 조미조약 때의 혼돈이 떠오른다. 당시 조선의 안위와 함께하겠다던 미국은 이후 약속을 어기며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역시 자강만이 살길이다. 게다가 지금은 북한이란 돌발 변수도 있다. 한국은 이제 구한말 나약한 나라가 아니다. 한층 유연하고 당당한 자세가 요청된다. 하늘과 땅, 물과 불 4괘가 어울리며 역동과 통합을 동시에 구현한 태극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박정호 수석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