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합격이세요" 엉터리 심리상담사, 기자도 땄다[이슈&탐사]

강창욱,이동환,정진영,박장군 2022. 5.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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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시장 X파일] <1화>야, 너도 딸 수 있어
마음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심리상담소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상담사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마음 고치러 갔다가 되레 다치는 분이 많습니다. 몹쓸 짓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이슈&탐사팀이 한 달여간 파헤친 심리상담업계는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너도나도 돗자리 깔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수준입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많습니다. 돈 몇 푼에 자격을 딸 수 있었습니다. 엉터리 자격이지만 우리는 속습니다. 성범죄 전과자도 상담소를 차릴 수 있습니다. 자정 기능이 먹통인데 정부는 손을 놨습니다. 우리만 몰랐던 ‘상담시장 X파일’을 7화 아홉 편에 걸쳐 고발합니다. 다 보신 뒤에는 적어도 엉터리 심리상담에 헛돈 쓰는 일은 피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슈&탐사팀 박장군 기자가 신분증처럼 얼굴 사진이 들어간 A업체의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자격증은 강의와 시험을 통틀어 2시간 만에 속성으로 취득했다. 이한형 기자


지난달 21일 대뜸 전화를 걸어온 여자는 공짜 강의 한번 들어보라고 꾀기 시작했다.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A업체 홈페이지 회원가입만 했을 뿐인데 배가 꺼지기도 전에 연락을 해왔다. 청산유수였다. 취재를 위해 미끼를 던진 쪽은 기자였지만 여자 얘길 듣다 보니 누가 낚인 건지 헷갈렸다. 그는 영업사원처럼 ‘무료수강 이벤트 중’임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집요했지만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국가자격 발급기관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이곳은 잡화점처럼 이런저런 민간자격을 만들어 발급하는 업체였다. 업체명에 ‘교육’이니 ‘협회’니 하는 단어를 주렁주렁 달았지만 그냥 개인사업체다. 이익단체도, 교육 분야 공인 기관도 아니다. 그런 척할 뿐인 이름은 고객을 끌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수화기 너머 여자는 보험 약관을 읽어주듯 부지런히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해진 진도율, 정해진 강의수가 따로 없으세요. 시험도 상시 검정이라 원하시는 시간과 날짜에 응시 가능하시고요.”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자유롭게 듣다가 언제든 시험을 보면 된다는 설명. 강의를 안 들어도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급하게 자격증 필요하신 분들은 1주일 만에 취득하는 분도 계세요. 불합격하셨을 땐 재응시 기회가 3회 주어지세요.” 무조건 합격이니 걱정 붙들어 매라는 소리로 들렸다. 모든 자격증이 강의도 시험도 공짜다. 세상에 이렇게 자비로운 자격시험이 있었단 말인가! ‘1급 심리상담사’ 되기가 이렇게 쉬웠다. 나도 딸 수 있었다.
눈 감고도 합격

기자가 모 대학 교수가 진행하는 A업체의 심리상담사 1급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다. 30분여씩 모두 25강으로 구성된 강의는 2배속으로 돌리면 6시간 만에 완주할 수 있다. 이한형 기자

동영상 강의는 30분여씩 모두 25강이었다. 약 13시간 분량이다. 길어 보이지만 매일 1시간씩 들으면 13일, 2시간씩 들으면 1주일 안에 끝낼 수 있다. 2배속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전체 강의를 6시간 만에도 완주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강의를 전혀 듣지 않아도 시험을 볼 수 있다. 강의를 얼마나 봤든 응시 버튼을 누르면 곧장 시험으로 점프했다. 그렇지만 공부도 안 하고 어떻게 시험을 통과하느냐고? 그 어려운 걸 기자는 해냈다.

사실 강의를 듣지 않아도 하루 만에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1시간 동안 보기 4개짜리 객관식 30문제만 풀면 된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이면 합격. 떨어져도 세 번의 기회가 더 있지만 굳이 재수 삼수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교재를 보면서 문제를 푸는 오픈북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화요일이던 지난달 26일 2배속으로 돌리던 7번째 강의를 듣다 말고 시험에 응시했다. 어차피 자격증이 목적이었다. 이 업체는 매주 목요일 자격증을 발송했다.

상식선에서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여러 개였다. 예컨대 ‘질문의 긍정적 효과가 아닌 것을 고르시오’ 같은 문제다. 답은 ‘질문은 내담자가 부정적인 면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불이 났을 때 하면 안 되는 행동의 답이 ‘불길을 향해 부채질하기’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언젠가 예비군 온라인 교육 문제였다).

프로이트의 의식구조, 게슈탈트 이론, 로저스의 인간중심상담처럼 비전공자에겐 생소한 내용이 일부 있었지만 풀이에 지장은 없었다. 한글파일로 제공된 교재에서 문제를 검색하니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정답이 나왔다. 문제 ‘복붙’(복사해 붙이기)을 반복할 때마다 짜잔 하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문제를 다 풀고도 시간이 반이나 남았다.

A업체의 심리상담사 1급 시험에 합격한 뒤 홈페이지에서 점수를 확인하는 기자의 모습. 이한형 기자


결과는 96점. 한 문제 틀렸다. 100점 못 맞아 아쉽지만 상관은 없다. 자격증에 점수가 박히는 것도 아니니까. 난 이제 심리상담사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상담이 뭔지도 모른 채 심리상담 1급 자격자로 변신한 순간이다. 강의와 시험 시간만 따지면 2시간 걸렸다. 처음부터 요령을 부렸다면 30분도 안 걸렸을 것이다.

9만3000원짜리 자격증

9만3000원을 결제하고 3일 뒤 배송받은 A업체의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 금테를 두른 종이 증서에 자격번호와 등록번호가 부여됐고, 업체 직인이 선명히 찍혀있다. 이한형 기자

기다리던 자격증이 집 앞에 도착한 건 3일 뒤였다. 합격까지는 한 푼도 안 냈지만 자격증을 받으려면 돈을 내야 했다. “수강료부터 응시료까지 지원해드리기 때문에 별도로 납부하시는 금액 없이 진행하시다가 자격증이 필요하셔서 발급받고자 하실 때 발급비용이 발생하세요. 1급 기준 8만원이시고, 배송비 3000원 별도세요. 자격증은 상장형, 카드형 이렇게 2가지로 준비돼 있고요. 2가지 동시에 신청하시면 1만원 추가되시고요.”

전부 공짜인 것처럼 홍보했던 업체는 자격증 발급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니 수강생이 합격해야만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문외한이 강의를 안 들어도 만점 가까이 맞을 수밖에 없도록 한 덴 다 이유가 있었다. 강의나 시험은 자격증을 팔기 위한 밑밥이나 다름없었다. 상장형과 카드형 모두 신청하고 9만3000원을 결제했다.

제작은 일사천리였다. 금테를 두른 종이 증서와 기자 얼굴이 박힌 자격증이 왔다. 감색 케이스에 모셔진 상장형 자격증엔 ‘위 사람은 심리상담사 1급 교육훈련 과정을 성실히 이수하고 소정의 자격시험에 합격하였으므로 본 자격증을 수여합니다’라는 문구가 기자를 치켜세웠다. 자격번호와 등록번호가 부여됐고 맨 아래엔 ‘협회’라 자칭한 업체 직인이 선명히 찍혔다. 자격증만 보면 다른 사람들이 기자를 대단한 전문성을 갖춘 심리상담사로 깜빡 속을 거 같았다.

‘신뢰감 뿜뿜’인 자격증의 원가는 얼마일까. 인쇄업체들에 알아보니 1만원이면 됐다. 종이 증서 3000원, 플라스틱(PVC) 카드 7000원 정도다. 종이 자격증은 한번 짜둔 판을 계속 활용하면 종이값 170원씩만 추가됐다. 감색 케이스도 1400원밖에 안 했다. 업체 로고와 스티커를 도드라지게 찍는 덴 440원이 들었다. 하나하나 다 추가금이 드는 옵션이지만 비싸지 않았다. 일반 사원증에도 쓰이는 플라스틱 카드는 종이 증서보다 비싸지만 대량주문 땐 할인된다. A업체는 수강생에게 자격증 한 세트를 팔 때마다 8만원가량 차익을 남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1급은 무슨 …”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강의를 제대로 안 듣고 커닝이나 한 수강생 잘못 아니냐고. 옳은 말이지만 정말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되려 했다면 애초 이렇게 쉽게 자격을 딸 수 있는 곳은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다. 제대로 자격을 검증하겠다면 강의 진행이나 시험 방식에 심혈을 기울였어야 한다. 엉터리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놓고 “우리 의도는 그게 아닌데 왜 엉터리로 시험을 봤느냐”고 응시생을 탓한다면 양심에 털 난 소리다.

한발 양보해서 동영상 강의를 착실히 들었다면 1급 심리상담사 자격을 충분히 갖출 수 있게 될까. 배성만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 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등 여러 전문가에게 A업체 교재와 기출문제집, 시험문제에 대한 분석을 맡겼다. 구색만 갖췄지 ‘1급’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엔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게 공통된 평가였다.

배성만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왼쪽), 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이게 1급이라는데 내용 봐서는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시험 보는 2급 수준도 안 돼요. (국가자격인) 임상심리사 2급보다도 낮고요. 전공자 아니어도 교재 하나 갖고 몇 개월 공부하면 다 맞출 수 있는 정도. 이거는 정말 자격증이라 할 수가 없는 거죠. 심리학과 학부생들도 조금만 공부하면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배 교수)

“그럴싸한 난이도는 갖추고 있습니다. 임상심리사로 보면 2급보다 어렵지는 않습니다. 1급보다는 확실하게 떨어지고요. (또 다른 국가자격인) 청소년상담사는 1~3급으로 돼 있는데 3급 시험보다는 약간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시험문제가 그렇게 조악하지는 않습니다. 근데 난이도보다 시험 방식이 중요해요. 문제는 다른 국가시험이나 수험서를 참고해서 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오픈북도 그렇고 그 업체처럼 하면 못 붙을 사람이 거의 없는 거죠.”(서 교수)

나라에서 내주는 상담 관련 자격은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청소년상담사 직업상담사 정도다. 임상심리사와 정신건강임상심리사는 보건복지부가, 청소년상담사와 직업상담사는 각각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가 관리한다. 이들 자격시험은 모두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한다. 흔히 말하는 ‘심리상담사’라는 이름의 국가공인자격은 없다.

국내에서 공신력을 인정받는 심리상담 관련 자격은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각각 발급하는 전문상담사, 상담심리사 1·2급이다. 이들 자격 모두 시험문제가 어렵고 과목도 많다. 임상심리사 2급만 해도 필기시험만 다섯 과목인데 실기시험까지 통과해야 한다. 오픈북은 꿈도 못 꾼다. 학회가 주관하는 자격시험은 더 어렵다. 게다가 급수에 따라 석·박사 학위나 수년의 수련(실습)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험만 잘 본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회 자격이나 국가공인자격을 따서 간신히 현업에 발을 들인 상담사들은 A업체 시험문제를 보더니 하나같이 허탈해 했다. 오성희 서울교대부설초등학교 전문상담사는 “교양 수준에 불과하고 공신력도 없는데 이걸로 1급 자격을 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이런 자격증은 전문가가 아니면 엉터리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임상심리사 1급, 청소년상담사 2급,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2급 자격 등을 보유하고 있다.

그 교수의 변명

시험 절차나 난이도를 놓고 보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민간자격증을 가지고 얼마든지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상담을 받는 입장(내담자)에서도 구별하기 어렵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담자에게 돌아간다.

의문이 들었다. A업체 동영상 강의에 나오는 그 강사는 자기 강의가 이런 자격을 발급하는 데 쓰인다는 걸 알고 있을까.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찍어내는 곳들을 일일이 조사하다 그의 강의가 여기저기서 쓰이는 사실을 확인했다. 똑같은 강의였다. 하나를 여러 곳에서 돌려 쓰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대학에서 상담을 가르치는 B교수였다. 실제 심리치료 전문가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예능방송에도 몇 번 출연한 적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출처=픽사베이


“한 10년 됐나. 꽤 된 거예요. 거기(업체)서 강사를 섭외하고 강사들은 계약에 따라 촬영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저는 필요한 사람들이 보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인 거고요. 상담 관련한 국가자격증이 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사 이런 정도다 보니까 민간에서 많이들 공부하시죠. 그렇지만 그렇게 온라인으로 해서 따시는 분들이 실제로 상담현장에서 기능하긴 힘드시고요. 민간자격으로 자격을 땄다고 해서 상담사로 채용되거나 그렇진 않죠.”

B교수는 자신의 강의가 1급 심리상담사 자격증 발급에 쓰이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부실 자격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기보다 강의 제공에 응한 자신의 선한 의도를 강조했다. 강의 수준을 묻는 말엔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며 회피했다. 그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심리상담사 노릇을 하기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과 (자격을 갖춘 전문가와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강변했다.

“전문가 선생님들은 그 부분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 저 또한 임상가로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수용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없앨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없어지지도 않을 거고요.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좋은 강의를) 만들어도 악용하려면 어느 장르에서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서 취재팀은 B교수 얘기를 직접 들으려고 A업체에 “시험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가 연결을 거절당했다. 업체 직원은 다소 짜증스러운 투로 “강사님이 질문받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강의 수강 전만 해도 한없이 상냥하던 그 직원이었다. B교수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질문을 전달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자격공장 전성시대

자격증 장사는 ‘스펙’에 목마른 이들을 상대로 성행 중이다. 높은 취업 문턱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이런 자격에 관심을 갖는다. “취업을 원하실 때 이런 자격증이 있으면 플러스되는 부분이 있으셔서 이력서에 기재하시려고 많이들 취득하시는 경향이에요.”(A업체 직원) 되새겨 보면 이때 그 직원은 “상당히 공신력 있는 자격증이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공신력이라기보다는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자신들이 발급하는 자격의 한계를 잘 알았던 모양이다.
22일 오후 A업체 홈페이지 첫 화면. ‘합격을 축하드립니다’라고 큼직하게 적힌 금색 글귀가 눈에 띈다. 이곳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등록한 민간자격증이라는 점과 정체불명의 브랜드대상을 받은 사실을 앞세워 수강생을 유인하고 있다. 다른 유사 업체들의 호객 방식도 다 비슷했다. A업체 홈페이지 캡처


‘자격공장’은 수두룩했다.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검색하자 이름이 비슷비슷한 80여개 업체가 쏟아졌다. ‘○○협회’ ‘○○진흥원’ 하는 식이었다. 국가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직능연)을 흉내 낸 이름도 많았다. 서로 겹치지 않으려면 무지 애썼겠구나 싶었다. 저마다 ‘합격까지 100% 무료’ ‘선착순 수강’ 같은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앞세웠다. 치열한 취업시장에서 벼랑 끝에 놓인 이들의 절박함을 노렸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직능연에 정식으로 등록된 민간자격증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추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직능연은 누가 신규 자격을 신청하면 거의 다 받아준다. 직능연 등록 자격증이라는 사실엔 어떤 공신력도 없다는 뜻이다.

영업 방식도 거기서 거기였다. 일단 무료 강의를 듣게 해 고객을 유인한 뒤 쉽게 합격시켜 자격증 발급 명목으로 돈을 내게 한다. 가격은 대개 8만~9만원으로 맞춰져 있다. 이들은 합격이 어렵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직원들의 설명은 하나같이 “야 너도 딸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무슨 진흥원이라고 자칭한 C업체는 회원가입을 하니 ‘학습자료를 참고하시면 큰 어려움 없이 수료가 가능합니다’ ‘수강생 합격률 99%(2022년 시험 예상 기출문제 본 교육원 수강생 특별제공)’라는 광고문자를 보내왔다. 그 업체 직원은 “평생교육원 교육기부사업 프로젝트에서 최우수 교육원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현재 강의 수강료와 시험 응시료까지 전액 무료로 지원해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나 “다만 추후에 자격증 발급하실 경우 발급 관련 비용이 과목당 동일하게 9만원 발생한다”고 안내했다. 또 다른 D업체는 회원가입을 한 지난 2일부터 2주 사이에만 카카오톡 메시지 4차례, 전화 2차례 이렇게 6차례나 연락해왔다. 특별혜택 기간이니 얼른 강의 듣고 자격증을 따라고 재촉했다. 시험문제는 자신들이 나눠주는 교안에서 100% 나오고 불합격하더라도 재응시 기회를 준다며 안심시켰다.

문전박대

지난 11일 오전에 찾은 서울 광진구 A업체 사무실 안팎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오피스건물 외벽엔 간판도 없었다. 현관문 옆 벽면에 B4용지 정도 크기의 명패만 하나 붙어 있었다. 잠시 열린 문 밖에서 들여다 본 사무실은 50㎡(약 15평) 남짓 공간에 여직원 3명이 근무 중이었다. 목소리로 보니 그중 한 명이 기자에게 전화영업을 한 사람이었다.
취재진이 지난 11일 찾은 서울 광진구 A업체 사무실 외관. 현관문 옆 벽면에 B4용지 크기의 명패가 붙어 있다. 건물 외벽에는 간판을 따로 달지 않았다. 이슈&탐사팀
사무실 한구석에는 책상 4개가 한데 모여 있고 책상엔 컴퓨터 모니터가 2대씩 얼굴을 들고 있었다. 거기에 띄워진 엑셀 문서에는 고객 정보로 보이는 내용이 빼곡했다. 기자의 이름과 연락처, 합격 내역 등도 그 문서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사무실은 심리상담사 교육을 진행하고 자격증까지 발급하는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돈을 벌고 우리는 마음을 털린다

업자들이 관련 자격증을 쏟아내는 건 이런 자격을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뒤엔 폭발적으로 늘어난 심리상담 수요가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일반상담은 2010년 16만5817건에서 지난해 235만7541건으로 11년 만에 14배로 늘었다. 2020년에 126만9756건이었으니 지난 1년 사이에만 거의 2배가 됐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만성 스트레스와 불안 심리, 최근에는 코로나19가 더욱 불을 지폈다. 우울증 조울증 같은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도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구도 심리상담소로 발길을 이끈다. 배성만 교수는 “선진사회로 갈수록 경제적 문제나 신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심리·정서적 웰빙, 자기 성장에 대한 니즈 등이 높아진다”며 “그런 것들이 맞물려 전문가에게 잘 관리받고 싶어 하는 수요가 굉장히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공급자 입장에서 심리상담 분야는 법적으로 무주공산이다. 자격 장사꾼들에겐 이만한 돈벌이가 없다. 자격증 남발은 자격 미달 심리상담사 양산으로 이어진다. 자격장사가 양질의 상담사를 배출할 리 없다. 상담의 정의도 모르면서 1급 심리상담사가 된 기자가 그 증거다. 피해는 어렵게 상담의 문을 두드린 이들에게 돌아간다. 엉터리 상담사는 엉터리 진단, 엉터리 처방을 할 위험이 크다. 엉터리를 만난 이들은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고 도움받기를 영영 포기해버린다. 기자 같은 ‘무늬만 심리상담사’가 몇이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는 관심도 없다.

제대로 된 상담사보다 자격 미달 상담사가 훨씬 많으리라는 건 분명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상담사를 찾는다면 진짜보다는 가짜를 만날 확률이 높다. 취재팀은 이제 심리상담사 행세를 해볼 것이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우리만 몰랐던 상담시장 X파일’ 시리즈는 국민일보 홈페이지 이슈&탐사 코너(www.kmib.co.kr/issue)에서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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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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