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뒤 150조' AI 반도체 잡아라 "기술은 일류인데 생태계는 '숭숭' 비어있어"
20~22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내내 ‘기술동맹’을 강조하면서 미래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대한 주목도가 커졌다. 반도체 강국 타이틀을 지켜줄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선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직 시장 형성 초기인 데다 메타버스·음성인식·기계번역·자율주행·빅데이터·사물인터넷 같은 응용 기술 활용도가 부각되면서다.
AI 반도체는 학습∙추론 등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시스템반도체로 분류된다. 영상 정보를 처리하는 GPU, 주문형 반도체(ASIC), 뇌의 작동 방식을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효율·저전력·대용량 연산이 특징이다.
일부는 상용화를 추진하는 단계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AI 연산 시스템 ‘아트브레인’은 초당 5000조 회를 연산할 수 있다. ETRI는 앞서 개발한 AI 반도체 ‘알데바란9(AB9)’를 활용해 아트브레인을 만들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사활 걸어”
여준기 ETRI 인공지능프로세서연구실장은 “아트브레인은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서버와 비교해 연산 능력이 4배, 전력 효율이 7배 뛰어나다”며 “이 시스템을 활용해 영상 인식을 하면 거의 실시간과 비슷하게 나타나며 움직임이 부드럽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트브레인은 공항 자동 출입국 심사 시 얼굴 인식 시스템으로 사용될 계획이다.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AI 반도체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미래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AI 반도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세계에서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회사가 50개 이상이며, AI 반도체 시장 규모가 지난해 343억 달러(약 44조원)에서 2025년 711억 달러(약 91조원)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2030년 1179억 달러(약 150조원) 규모로 성장을 예상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AI 강화
기업들의 움직임이 진작부터 활발하다. GPU 시장의 90%를 장악한 엔비디아가 최강자로 꼽힌다. 자율주행 자동차용 AI 반도체 ‘자비에’를 선보이는 등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인텔은 올 초 미국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시에 200억 달러(약 25조4600억원)를 들여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이곳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제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기존 제품보다 연산 속도가 두 배 빠른 신제품 ‘가우디2’를 내놨다. 구글·화웨이·테슬라 등도 AI 반도체를 선보이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 주력해온 한국 기업도 시장 공략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데이터 저장과 연산을 함께 할 수 있는 최첨단 메모리반도체로 뉴로모픽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또 모바일용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2100의 AI 기능을 강화해 단말기 자체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했다.
SK하이닉스는 SK텔레콤·SK스퀘어와 함께 AI 반도체 회사 사피온을 미국 실리콘밸리와 한국에 설립했다. 사피온은 추론 성능이 있는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X220’에 이어 내년 학습 능력까지 갖춘 ‘X330’ 등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 밖에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체)인 퓨리오사AI는 지난해 글로벌 AI 반도체 대회에서 엔비디아 제품보다 뛰어난 성능을 인정받아 주목받았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오는 2029년까지 지능형 반도체 개발 사업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연산 기능을 갖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PIM 반도체 개발에 2028년까지 4027억원을 추가 투입할 방침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핵심전략 산업으로 반도체와 AI를 꼽았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닫혀 있는 구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2006년부터 AI 반도체를 연구해온 유회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세계적 반도체 학회인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 앞선 기술을 발표하는 등 대학교·연구원 등의 기술 연구 수준은 높다”며 “다만 기업이 기술을 상용화하는 단계가 중국·미국보다 뒤처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기술을 개발하면 기업이 이를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양산한 뒤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대학과 기업 간, 제품 개발과 파운드리 간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는 형편이다.
“투자 규모 실리콘밸리의 10분의 1”
유회준 교수는 “중국은 AI 반도체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고, 미국은 일찌감치 시장이 형성돼 대대적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투자 규모가 실리콘밸리의 10분의 1 수준일 만큼 생태계가 빈약하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AI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에 내보낼 수 있게 하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형준 소장 역시 “대학과 연구소는 원천 기술을 연구하고, 기업은 유망 기술에 투자하는 연계 구조가 빈약하다”며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면 대학·연구기관과 기업이 집단으로 대형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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