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신화의 부작용,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신기루
[이준목 기자]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의미의 'NFT'(Non-fungible Token) 기술은 과연 디지털 세상이 만들어낸 새로운 신화인가, 아니면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또다른 거품인가. 21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피카소와 NFT - 신화인가 버블인가' 편을 통하여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NFT 열풍의 현실에 대하여 조명했다.
2021년 3월 '얼굴 없는 화가'로 불리는 뱅크시가 그린 판화 '멍청이'(Morons)라는 작품을 불태워버리는 모습을 트위터로 생중계하는 깜짝 이벤트가 벌어졌다. 이들은 자신들을 '불에 태운 뱅크시'(Burnt Banksy)라고 밝혔다.
'멍청이'는 이미 스캔을 통하여 디지털로 변환한 NFT 작품으로 경매에 올라온 상태였다. NFT화된 작품은 앞선 2021년 3월 7일 열린 경매에서 한화 1억 7천만 원이었던 원본 가격의 4배에 가까운 약 4억 3000만 원에 팔렸다. 오프라인으로 존재하던 실제 작품보다 디지털로 변한 NFT 작품의 가치가 더 상승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원본을 구입하여 불태운 '불탄 뱅크시'의 정체는 미국의 블록체인 회사인 '인젝티브 프로토콜'(Injective Protocol)인 걸로 드러났다. 이들은 그림을 구입한뒤 NFT로 변환시켜 경매를 앞두고 원본은 불태움으로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기획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NFT를 통해 디지털 세계에만 존재하는 그림이 거장들의 실제 작품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마이크 윈켈만)의 '매일: 첫 5000일'라는 작품의 가격은 NFT 경매에서 무려 한화 약 785억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는 NFT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현실 속의 명품들이 그러하듯 인간의 욕망은 디지털 세계의 가상 재화에 상상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유명 화가의 작품은 물론 디지털 세상에서 탄생한 돌멩이나 원숭이 그림조차 가치가 수십억을 호가하는 일도 빈번하다.
블록체인은 분산데이터 저장환경에 정보를 저장함으로서 데이터 위변조를 방지하는 기술이다. NFT는 이러한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디지털 자산에 일련번호를 부여하여 원본을 증명할 수 있는 기술이다.
NFT는 블록체인 상에 기록되어있는 '소유권'이라는 콘셉트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그림, 디지털 아이디어, 개인의 소소한 기록들이 이제까지는 그저 방치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자산으로 등록되고 거래가 될 수 있는 길이 NFT 때문에 열리면서 디지털 자산시장이 형성되기에 이른 것.
NFT는 현재 전 세계는 물론 한국에서도 뜨거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NFT 투자자라는 20대 청년 이영준(가명)씨는 이른바 인생역전 고릴라라고 불리우는 '메타콩즈'에 투자하여 큰 수익을 올렸다. 그가 보유한 NFT 그림 콜렉션은 장당 100만원대에서 1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가격이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림의 '희소성'에 따라 가격이 올라간다고. 이 씨는 "방구석에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것도 21세기의 또다른 투자다. 전쟁이 나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NFT 그림의 가치는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가수 선미를 모티브로 한 그림은 NFT 시장에서 60만 원으로 시작하여 가격이 400만 원대까지 폭등했다. 모니터 화면 속의 그림일 뿐인데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NFT 투자자 김동현 씨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고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가격이 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이 순간도 디지털 세상 곳곳에서는 오늘도 각종 NFT 민팅(새로운 NFT를 최초로 배정하거나 판매하는 행위)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이들은 가치있는 NFT를 하나라도 더 얻고자 이 민팅에 참여하고 있다. 민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하고, 참여하지 몇분만에 몇배로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빈번하다.
전세계에서 유행중인 BAYC(지루한 원숭이 요트 클럽)에서 각기 다른 고유번호를 지닌 원숭이 NFT 그림의 가격은 수억원대를 호가한다. 마돈나, 스테판 커리 등 유명인들은 물론이고 내노라하는 백만장자들까지 동참하여 자신들만이 보유한 원숭이 NFT를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BAYC 보유자들이 모여서 각자의 NFT로 단체 사진을 찍은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NFT 생태계는 예술과 상품 분야를 넘어 메타버스 세계부터 가상의 부동산 분양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업체가 현실에 있는 서울 지도를 모방하여 NFT 상품으로 제작된 가상 토지가 실제 땅값과 맞먹는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또한 같은 업체는 전세계의 주요도시들의 지도 조각을 선착순으로 분양하기도 했다. NFT 가상토지의 소유자들은 실제 토지처럼 그안에서 건물을 짓는다거나 기업체를 들여오는 등, 실제 현실같은 투자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NFT 광풍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늘고 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 감정연구센터대표는 "NFT는 인간의 과도한 소유욕이 낳은 변종상품"이라고 정의하며 "인간의 욕망을 노려서 만든 IT 파생상품이고 사실은 허상을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NFT와 메타버스는 밀접한 연결고리를 지닌다. 메타버스는 곧 온라인 세계를 의미하는 다른 표현이다. 모든 인간은 소유욕을 지니고 온라인 세계에서 뭔가를 소유하려면 소유권을 증명해야한다. NFT는 증명을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가상화폐에서 채굴을 한다는 의미가 기록한다는 의미라면, NFT에서도 채굴을 한다는 의미는 그 거래를 기록한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하고 누군가는 받는 것이 채굴자다. 결국에는 모두의 호주머니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이 NFT 시장의 구조다.
그런데 만일 모든 소유자들이 NFT를 현금화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부터 현금화를 둘러싼 소유자들의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만일 충분한 현금이 없다면 NFT는 그저 무의미한 전자파일에 불과하다.
NFT 산업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이를 악용하여 검증되지않는 프로젝트나, 사기로 인하여 피해,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 등, 부작용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뿐만 아니라 실제 예술품들이 NFT로 재가공하려는 사례도 빈번하다. 특히 최근 NFT 시장이 성장하면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바로 미술업계다.
작년 5월 국내에서 한 회사가 거장 피카소와 앤디 워홀의 그림 38점을 구매한 후, NFT 사업을 계획했다가 분쟁에 휩싸인 사건이 있었다. NFT 사업을 위하여 작품을 구입했지만 그림을 매입해준 미술관에서 진품증명서를 제공하지 않아 상장폐지에 내몰렸다는게 회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제작진이 확인한 결과 '피카소 재단'은 어떠한 NFT 판매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앤디 워홀의 작품 역시 한국 저작권 협회에 문의한 결과 필수적인 저작권 사용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거나 허가를 내린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애초에 실행차제가 불가능한 계획을 추진했던 NFT 발행업체나 회사에 믿고 투자한 일반인 주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 NFT라는 신기술을 입혀 새로운 콘텐츠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발상은 겉보기에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저작권'이다. '소유권'과의 중요한 차이는, 원본은 소유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그림을 복사,재가공할수 있는 권리는 오직 창작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당연한 상식이 피카소-앤디 워홀 NFT 논란에 휩쓸린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예술을 예술작품으로서 보는 것이 아닌, 투자와 수익의 돈벌이 대상'으로만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NFT가 뭔지는 몰라도, 10퍼센트씩 이자를 준다는 이야기만 들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NFT는 흔히 '부자가 되는 티켓'으로 불리우며, 구매행위인 민팅은 이른바 복권긁기에 비유된다. 하지만 주식, 부동산, 금테크, 가상화폐 등 한때 열풍을 일으켰으나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결국 거품이 꺼지거나 몰락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다. 한때 광풍을 일으켰던 가상화폐도 폭락을 거듭면서 최근 NFT를 포함한 가상화폐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유럽연합은 가상화폐 규제안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과세 사각지대인 NFT가 자금세탁 등에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도 제기된다.
현재 가상화폐를 다루는 사업자들은 특정금융정보법의 규제를 받는다. 그런데 NFT에서는 아직 가상화폐 수준의 관리가 국가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많은 투자자나 사업자들이 기초지식도 없이 플랫폼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투자나 회사 운용 등이 가능해지려면 NFT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규율을 정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NFT에 대한 분명한 개념과 인식을 정립하는게 필요하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교 교수는 'NFT의 본질은 소유권을 증명하는 기반 기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소유권을 증명해주는 가치란 거래가 쉬워진 만큼인 거지, 그 작품이나 자산의 내재적 가치가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
가장 큰 문제는 현재 NFT라는 기술을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본인이 직접 제작한 그림을 NFT에 올리고 있는 정윤성 작가는 "디지털 아트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전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NFT라는 기술 덕분에 가능해졌다"는 데서 의미를 찾았다.
또한 중학생으로 최연소 NFT 작가로 활동중이라는 박하름 군은 "NFT는 나 자신을 펼쳐낼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NFT를 단지 수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대중들과 함께 소통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필리프 드 상파뉴가 그린 '바니타스(허무)'에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불었던 튤립 투기 열풍을 풍자한 작품이다. 튤립과 모래시계 사이에는 해골이 그려져있다. 당시 튤립 한 송이 가격이 집 한 채 가격까지 올랐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실화를 다루며 오늘날 과도한 투기 거품의 위험성을 경고할 때 자주 거론되는 작품이다.
튤립이라는 꽃은 다른 어떤 용도보다 꽃 자체일때가 가장 아름답다. NFT 속의 수많은 그림이나 컨텐츠들도 가상세계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숫자보다도 그 자체의 매력으로 평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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