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대리만족했다" 요즘 가장 핫한 동네서점

김은경 2022. 5. 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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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작가

[김은경 기자]

최근 대세인 서점이 한 곳 있다. 책이니 서점이니 하는 것이 사실 참 환호 받기 쉽지 않은 소재인데 무려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황보름 작가의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아래 휴남동 서점) 이야기다.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전자책으로 나왔다가, 독자들의 끊이지 않는 요청으로 종이책으로도 다시 출간된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책이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 2022) 전자책으로 먼저 출판되었다가 독자 요청 쇄도로 종이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 김은경
 
<휴남동 서점>은 전체적으로 순하고 폭신한 느낌의 이야기다. 제일 특별했던 때는 책 속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과 그곳을 오가는 모든 인물에게서 느껴지던 편안함이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싶은 장면을 만났을 때다.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정서'가 "여기에선 내 쪽에서 예의를 지키는 한 아무도 나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겠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아, 휴남동 서점이 정말 그런 곳이네'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안도감"이라는 말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무례하게 굴지 않"는 당연한 일에 안도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생각하면 참 씁쓸해서다. 그래서 <휴남동 서점>의 따뜻함은 저 바닥에 깔린 씁쓸함과 무정함을 견디며 이룩된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가 궁금해 서면으로나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독자 요청으로... 전자책 이어 종이책 출간
 
▲ 황보름 작가와의 만남 지난 14일, 진주문고 혁신점에서 독자와 만나고 있는 황보름 작가.
ⓒ 진주문고
 
- 먼저 <휴남동 서점>의 승승장구부터 축하드린다. 이번에 나온 동네서점 에디션의 책 띠지엔 '전 세계 6개국 판권 수출'이라는 기분 좋은 문구도 보이고.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나?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된 후 종이책이 나왔는데, 지금까지 놀랍고 신기한 경험을 내내 하고 있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쓰기 시작하던 때가 생각난다.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나 대사를 한 문장 한 문장 구현해나가면서 혼자 무지 즐거웠다.

하나의 세계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내가 만든 그 세계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니. 정말 놀랍고 신기하다. 덕분에 요즘엔 좀 바쁘게 지내고 있다. 물론 내 기준이다. 한 달에 한 번 약속이 있을까, 말까 하던 사람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약속 장소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차분하고 평화롭다. 마치 '나도 차근차근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소프트웨어개발자로 일하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들었다. 그럼 이제 작가님의 속도와 방향은 정해진 것인가? 
"차분하고 평화롭게 느꼈다니 감사하다. 소설을 쓸 때만 해도 내 소설을 읽어줄 독자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만약 내 소설을 읽는 분이 있다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마음이 편안해지길 바랐었다. 

사실 아직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해 나가는 중이다. 긴 시간 글만 쓰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좀 넘었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만큼 글을 쓰고 책을 읽던 시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어진 몇 시간을 쪼개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몇 시간 동안 글을 쓰고 책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을 하고 오니 피곤해서 좀 쉬기도 해야 하고, 밥도 먹고 청소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요즘엔 <휴남동 서점>에 나오는 승우를 본받고 싶다. 투잡러 승우는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었을까. 승우만큼 '빡세게' 살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퇴근 후의 삶을 단순하고 질서 정연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가득하다." 

- 소설 속에서 책을 읽으면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되지만 다른 면에서는 성공한다고, '조금 더 인간다워진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소설 속 이아름 작가의 성공론에 황보름 작가님께서 덧붙일 의견이 있을까? '인간다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방 주인인 주인공과 작가가 북토크를 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엔 내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지식의 양을 늘리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 독서도 물론 필요하지만, 마음의 크기를 키우는 독서에서도 멀어지지 말자고 말해보고 싶었다.

쉽게 타인을 재단하고 혐오하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더 많은 타인을 내 마음에 들여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물론 모든 독서가 우리 마음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좋은 독서는 결국 우리를 섬세하게 단련시켜 타인을 향한 이해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워진다는 건,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이 세상은 혼자 달리는 운동장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길이라는 생각, 이 생각을 잊지 않는 것 아닐까." 

- 책을 읽으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다는 표현도 계속 마음에 남았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지난 4월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많은 분이 후원과 지지를 표할 때 사실 작가님의 후원금 인증 포스팅을 보고 저도 동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매일 읽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면,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인간다워진다면, 부조리함을 더 많이 마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 피로감에 지친 적은 없는지? 있다면 극복 방법도 있을까?
"그렇게 물으니 너무 부끄럽다. 그렇게 열심히 사회 참여를 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이슈가 있을 때 잠깐씩 멈춰 서서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리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한 뒤 또 내 삶을 사는 식이다. 전장연 후원 인증은 나도 다른 분의 인증을 보고 그 뒤를 쫓은 건데 그걸 보고 후원했다니,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다. 

그런데 질문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된다. 읽고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진이 빠지는 순간이 온다. 말씀처럼 피로가 겹겹이 쌓이기도 하고. 그럴 땐 일부러 얼마간 세상과 담을 쌓고 살거나, 아니면 나를 감동시키는 이야기들을 찾아다닌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서 노인이 연애 소설을 읽는 것처럼,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읽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 안에 퍼지기를 기다리고. 

나를 더 좋은 사람이게 만들어주는 이런 이야기를 음미하고 또 음미하고 나면 나는 많이 다행스러워진다. 이 세상엔 좋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날 이렇게나 감동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살아갈 맛이 나게 하니까.

최근엔 김민섭 작가님의 '김민석 찾기 프로젝트'를 보고 또 눈물을 흘렸다. 책으로 읽을 때도 울었는데, '김민섭'이라는 동명이인 두 분의 목소리로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니 또 눈물이 났다. 많은 분의 말씀처럼 나도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인류애 충전'을 한다." 

- <휴남동 서점> 덕분에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평이 많다. 또, 휴남동 서점이 실제로 있으면 좋겠다는 독자평도 '굉장히' 많이 봤다. 소설 속에서도 서점의 책 배치나 책 소개 문구, 서점 이벤트가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는지?
"동네 서점을 해야겠단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꿈꿔본 적은 있다. 그것도 여러 번. 다른 책덕후분들도 한 번씩 꿈꾸지 않을까? 동네 어느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하나 열어서 저녁에는 북토크를 하고 낮에는 독서 모임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하는 그런 꿈 말이다.

그러다 손님이 없으면 이 소설 저 소설 읽다가 창 밖을 보며 멍도 때리고. 멍 때리는 데 딸랑,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오면 소설 속 영주처럼 작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이런 꿈을 꾸긴 했었는데 직접 이루진 못하고 소설을 통해 대리만족했다."

- (웃음) 정말 꿈같은 장면이다. 온갖 진상 손님과 노동에 관한 책방지기들의 증언이 이어질 것 같다.
"맞다. 정말 꿈으로만 가능한 장면이다.(웃음)"

-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독자께 한 말씀 부탁한다. 
"다시 한번 '휴남동 서점' 많이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그리고 모든 독자분의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응원한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응원합니다"

메일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책에서 '100% 독서가'로 써 놓은 그녀의 작가 소개 글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주위를 돌아보고, 더 인간다워지고, 감동과 반성을 되풀이하며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진정한 '독서꾼'이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우리가 꿈꾸는 이런 공간과 사람들이 펼쳐지는구나 싶었다. 

모든 책은 읽는 사람 각자에게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따뜻하게, 냉정하게, 건조하게… 아마 그 들려주는 목소리도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느껴질 테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 들린 목소리는 '아, 이런 속도도 있구나, 저런 방향도 있을 수 있지, 그렇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있어, 내 속도와 방향도 나만의 것이 있겠지, 무엇도 신경 쓸 것 없어 내 것을 찾으면 돼' 하는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에세이 <매일 읽겠습니다>, <난생처음 킥복싱>,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와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까지.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로 전방위 글쓰기를 하고 있는 100%의 독서가 황보름 작가는 다음 책으로 나올 에세이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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