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4명이 주인공인 영화가 만든 작은 기적

양형석 2022. 5. 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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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소포모어 징크스 날린 강형철 감독의 <써니>

[양형석 기자]

소포모어 징크스는 2학년 학생들이 신입생 시절에 비해 학문에 대한 열의가 떨어지고 성적이 부진해지며 방황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실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단어는 스포츠에서 더 자주 사용되는데 '무서운 신인'으로 불리며 데뷔한 선수가 2년 차 시즌에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경우는 스포츠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데뷔작으로 '대박'을 친 영화 감독들에게도 심심찮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5년 데뷔작 <웰컴 투 동막골>로 전국 800만 관객을 모으며 2005년 최다관객을 동원했던 박광현 감독은 2017년 <조작된 도시>가 전국 250만 관객으로 아쉬움을 남겼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부산행>으로 1100만 관객을 모았던 연상호 감독도 차기작 <염력>이 100만도 모으지 못했고 데뷔작 <범죄도시>로 680만 관객을 즐겁게 했던 강윤성 감독도 차기작 <롱리브더킹: 목포영웅>이 100만을 갓 넘기며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렸다.

2008년 장편 데뷔작 <과속스캔들>로 무려 8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약 흥행 감독으로 떠오른 강형철 감독은 2011년 두 번째 장편 영화를 선보였다. 남성 배우 없이 젊은 여성 배우 7명과 중년 여성 배우 7명 등 무려 14명의 여성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였다. 하지만 강형철 감독은 모두가 위험하다고 했던 '칠공주 프로젝트' <써니>를 통해 740만 관객(감독판 포함)을 동원하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가볍게 극복했다.
 
 강형철 감독은 <과속스캔들>에 이어 <써니>까지 흥행시키며 두 편 합쳐 1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 CJ E&M
 
영상미와 스토리 겸비한 관객지향적인 감독

제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강형철 감독은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친구의 권유로 편입시험을 보고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에 들어가며 진로를 변경했다. 졸업 후 단편영화 연출과 시나리오 작업으로 경험을 쌓던 강형철 감독은 2008년 <과속스캔들>을 통해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많은 영화인들이 <과속스캔들>의 큰 흥행은 힘들 거라고 입을 모았지만 <과속스캔들>은 무려 8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성공했다.

강형철 감독은 <과속스캔들> 성공 이후 중견 여성 배우 7명과 젊은 신예 여성 배우 7명을 캐스팅해 2011년 두 번째 영화 <써니>를 선보였다. 철 지난 칠공주 이야기가 과연 2010년대의 관객들에게 먹힐까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지만 <써니>는 전국 740만 관객을 모으며 또 한 번 흥행 행진을 이어갔다. 강형철 감독은 <써니>를 통해 2011년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흥행 감각뿐만 아니라 연출능력도 함께 인정 받았다.

두 편의 영화를 통해 1500만 관객을 모으며 충무로의 흥행보증수표로 떠오른 강형철 감독은 차기작으로 2014년 <타짜: 신의 손>을 선택했다. 빅뱅의 TOP과 신세경, 곽도원, 이하늬 등이 출연한 <타짜: 신의 손>은 전국 4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전편과 비교되며 완성도 면에서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에 개봉한 <타짜: 원 아이드 잭>이 크게 혹평을 받으면서 <타짜: 신의 손>에 대한 관객들의 재평가가 이뤄지기도 했다.

<타짜: 신의 손>까지 철저히 관객 지향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중점을 뒀던 강형철 감독은 충무로에서 입지를 잡으면서 4번째 영화부터 자기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만화 같은 독특한 영상미가 돋보였던 도경수와 박혜수 주연의 <스윙키즈>였다. 하지만 2018년 연말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했던 <스윙키즈>는 <아쿠아맨>과 <보헤미안 랩소디> 등에 밀려 전국 150만 관객을 넘기지 못했다.

강형철 감독은 유쾌한 대사와 빠른 편집, 그리고 의외의 영상미로 대중들이 선호하는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써니>의 후반부와 <스윙키즈>의 결말처럼 모든 영화가 마냥 행복하게 끝나진 않는다. <스윙키즈>를 통해 감독 데뷔 후 첫 흥행실패를 경험한 강형철 감독은 작년 11월 촬영을 마친 유아인과 안재홍,이재인,라미란,김희원 주연의 초능력 판타지 코미디 <하이 파이브>를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행복한 추억이 된 칠공주들의 이야기
 
 <써니>의 친구들은 장례식장에서 눈물보다는 그 시절에 췄던 춤과 밝은 웃음으로 친구를 보내줬다.
ⓒ CJ E&M
 
사실 영화 <써니>에 등장하는 7명의 친구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움이나 하는 '불량 청소년'에 가깝다. 만약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2010년대 후반 이후에 개봉했다면 <써니>는 오히려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형철 감독은 불량학생 또는 일진 이야기로 보일 수 있는 칠공주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중년의 이야기가 나미(유호정 분)가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 <써니>의 재미는 젊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1980년대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 그 중에서도 어린 나미를 연기한 심은경의 열연은 단연 돋보였다. 특히 옆 학교 불량서클 소녀시대와의 대결에서 당뇨 때문에 몸을 벌벌 떨다가 갑자기 아웃사이더로 빙의해 할머니에게 배운 욕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장면은 <써니>의 최고 명장면 중 하나.

친구들의 성화에 나미를 멤버로 받아주지만 나미를 못 마땅해 하던 수지(민효린 분)가 나미와 친해지는 과정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수지의 집에 찾아가는 나미는 수지의 계모를 만나 수지가 계모 때문에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술자리를 갖는다. 나미는 이 자리에서 수지가 예쁘다는 얘길 하면서 서러움(?)에 울음이 터지고 수지 역시 나미를 안아주며 "내가 예뻐서 미안해"라고 사과를 한다.

마냥 유쾌했던 영화 <써니>는 수지에게 망신을 당한 후 써니에게 앙심을 품은 상미(천우희 분)에 의해 비극으로 치닫는다. 본드에 취한 상미는 축제날 혼자 매점에서 빵을 먹던 나미에게 시비를 걸다가 춘화(강소라 분)에게 구타를 당한다. 하지만 상미는 깨진 음료수 병으로 수지의 얼굴에 큰 상처를 내는 사고를 일으키고 써니의 멤버들은 학교에서 퇴학 및 무기정학이라는 큰 징계를 당한다. 그렇게 써니의 고교시절 이야기는 슬프게 막을 내린다.

<써니>는 사업가로 성공한 중년의 춘화(진희경 분)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재산으로 친구들의 재정적 고민들을 해결해주고 끝까지 찾지 못했던 수지(윤정 분)가 나타나면서 막을 내린다. 물론 이를 두고 "'돈 많은 친구만 사귀어라'가 <써니>의 메시지인가"라고 비판하는 관객도 있었지만 각본을 쓴 강형철 감독은 슬픈 결말보다는 모두의 고민이 해결되는 해피엔딩을 선택했다.

대배우 천우희와 <지우학> '양궁누나' 배출한 영화
 
 천우희는 <써니> 개봉 후 이름보다 '써니 본드녀'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 CJ E&M
 
나미 역의 심은경은 <써니> 이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천만 배우가 됐고 2014년에는 <수상한 그녀>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4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써니> 출연 당시 신인이나 다름 없던 강소라도 <써니>로 얼굴을 알린 후 <미생>과 <맨도롱 또똣> <동네변호사 조들호>에 차례로 출연하며 주연급 배우로 도약했다. 하지만 영화 <써니>의 최대 수혜자는 주연 배우들이 아닌 상미 역의 천우희였다.

<써니>에서 본드 때문에 춘화와 멀어지고 전학 온 나미를 괴롭히는 이상미를 연기한 천우희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엄청난 호연을 선보였다. <써니>로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천우희는 2014년 영화 <한공주>를 통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천우희는 2016년 나홍진 감독의 <곡성>으로 또 한 번 주요 영화제의 조연상을 쓸어 담는 저력을 과시했다.

영화<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검사외전>, 드라마 <힘 쎈 여자 도봉순>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도 출연해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던 김원해는 대중들에게 코믹하고 유쾌한 이미지가 박힌 배우다. 하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김원해는 <써니>에서 여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해병대 출신의 학생 주임을 연기했다. 과거 시점이나 현재 시점이나 변함 없이 인자한 담임선생님(소희정 분)과 대비되는 캐릭터다.

<써니>의 초반부에서는 출근 전 용돈을 주는 아버지(백종학 분)에게 시크한 표정으로 "아빠 사랑해요"라고 하는 중년 나미의 딸 예빈이 등장한다. 예빈은 극 중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로 나오는데 이를 알게 된 써니 멤버들이 일진들을 혼내주는 장면이 꽤나 코믹하다. <써니>에서 예빈을 연기했던 하승리는 지난 1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뛰어난 활 솜씨로 좀비들을 때려 잡는 양궁선수 장하리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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