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자유', 바이든의 '가치'..이 둘이 만나 기술동맹 이끌었다 [한·미 정상회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서울 용산 청사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 안보 동맹을 넘어선 기술 동맹으로 양국 동맹을 진화·확장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외교·안보에 초점을 맞춰온 동맹의 외연을 반도체 같은 최첨단 기술로 넓히겠다는 취지다.
이날 오후 1시 32분부터 1시간 49분 동안 진행한 회담에서 두 정상은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 협력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등 경제 이슈를 비롯해 북한 및 글로벌 이슈 등을 논의했다. 이를 토대로 양 정상은 "공동의 민주주의 원칙과 보편적 가치에 맞게 기술을 개발·사용·발전시킬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부터 자유와 인권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한 윤 대통령, 또 가치 외교를 글로벌 외교의 기조로 삼아온 바이든 대통령 두 정상이 '보편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한 기술과 경제동맹'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한 모양새다.
공동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공급망 등 경제안보와 관련해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배터리, 원자력, 우주개발, 사이버 등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며 “그 첫걸음으로 대통령실 간 ‘경제안보 대화’ 핫라인을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규범에 기반을 둔 인·태 지역 질서를 함께 구축해 나갈 것”이라며 “첫걸음은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여”라고 말했다. 공급망·디지털·청정에너지 등 신(新)통산 의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제안한 IPEF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간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이 핵심이다. 윤 대통령은 23~24일 진행되는 IPEF 참가국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할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양국이 경제·가치 동맹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정상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과의 동맹관계는 어느 때보다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며 “미국에 반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베팅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그는 “태평양 지역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군사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더 긴밀히 협력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미국, 일본, 한국뿐 아니라 태평양 전체와 남태평양, 인도 태평양으로 확대할 필요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 “민주주의와 독재국가 간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며 “우리는 (한미 동맹이) 역내뿐 아니라 글로벌 동맹이라는 점에 대해 오래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정상회담 성과 설명자료를 내고 “민주주의,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반부패, 인권 등 가치에 뿌리를 둔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에 대한 양 정상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같은 한·미 가치동맹 노선의 본격화는 중국과의 갈등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윤 대통령 앞의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양 정상은 북한 이슈에 대해선 확장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되, 인도주의 지원 기조는 유지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공동 선언문의 대북 메시지 톤은 전체적으로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 강경해졌다. 또 단순한 선언적 조항외에 구체적 액션 플랜도 담겼다. 한·미연합훈련 확대를 위한 협의 개시를 비롯해 미군 전략자산 전개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북한이 반발해 온 이슈들이다. 윤 대통령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다른 어떤 이슈보다 우선순위로 다뤄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했다"며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한 양국의 연합훈련도 다양한 방식으로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연합방위태세 제고를 통해 억제를 보다 강화할 것을 약속하고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면서 “이를 유념하며 북한의 진화하는 위협을 고려해 양 정상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양 정상은 북한의 안정에 반하는 행위에 직면해 필요하면 미군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대한 미군의 공약과 이러한 조치들의 확대와 억제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또는 추가적 조치들을 식별하기로 하는 공약을 함께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은 2018년 이후 가동이 중단된 한·미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에도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이 만남에 대해 진지하고 진실됐는지에 달려있다”고 전제를 달았다.
이와 동시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북한에 대화에 나설 것도 촉구했다. 성명은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빈틈없는 공조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면서 “북한과의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길이 여전히 열려 있음을 강조하고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표현 대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라는 표현을 썼다. 양 정상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에 나선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경제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두 정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는 “비극이 조속히 해결돼 국민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기자들과 따로 만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현재까지는 없었다”고 답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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