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으로부터 시작된 깊은 상흔을 아십니까 [마음으로 떠나는 그림책 여행]

이정희 2022. 5. 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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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림책 '경극이 사라진 날'

[이정희 기자]

어른들과 함께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현대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학생들, '메시지'를 넘어 함께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담은 그림책들을 고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더듬더듬 그 여정을 시작해보았다. 
 
 경극이 사라진 날
ⓒ 사계절
 
5월에 함께 본 그림책은 야오홍(姚紅) 작가의 <경극이 사라진 날>이다.
 
1927년에 태어난 나의 어머니와 그 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에게 삼가 이 책을 바칩니다. 

위 문구와 함께 '중국화' 풍의 서정적인 친화이허강의 풍경이 펼쳐진다. 거기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아홉 살 소녀가 있다.

1937년 난징

<경극이 사라진 날>의 줄거리는 이렇다. 깊은 가을날, 소녀의 외할머니댁에 낯선 손님이 한 명 찾아온다. 거리에 나붙은 경극 포스터, 그 포스터의 주인공인 '샤오윈센'이었다. 새벽 친화이허 강가에서 아름다운 목소리와 나긋나긋한 자태로 연습하는 샤오 아저씨, 그를 보러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 이 평범한 일상들은 장사진을 이룬 '샤오 아저씨'의 경극 공연으로 이어진다.

이 그림책은 마치 한 편의 경극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덮개를 열면 그 안에 경극의 장면을 그대로 묘사돼 있다. 대중적인 장르 경극은 일본에 대항하는 시대적 흐름을 담은 듯 적군에 대항하여 북을 치며 항전을 독려하던 여장부의 서사를 그린다. 그리고 경극 포스터와 함께 벽을 도배한 '징병' 포스터, '중국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젊은이들, 그렇게 <경극이 사라진 날>은 1937년의 어느 날을 기록한다. 
 
 경극이 사라진 날
ⓒ 사계절
 
빛바랜 듯한 풍경들이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건,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날 저녁, '침략군을 위해 공연을 하지 않습니다'라며 샤오 아저씨가 떠나고,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캄캄하고 눅눅한 방공호 속 숨을 조여오던 소녀, 마지막 장 어둠 속 소녀의 춤사위는 '죽은 이들을 향한 추모'의 씻김굿처럼 보여진다.

명나라의 수도였던 난징은 개항장이다. 아편전쟁 후 이곳에서 '난징조약'이 체결되었고, 신해혁명 후 중화민국의 수도가 되었다. 침략자 일본에게 '난징'은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937년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은 다음 해 2월까지 6주 동안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대량 학살, 강간, 방화를 일으켰다. 이 기간 동안 20~30만 명 정도의 중국인이 학살되었고, 도시의 2/3가 넘게 파괴되었다.

평범하고 설레던 나날들은 뒤이은 잔인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처연한 기억이 되어 돌아온다. 그 뒤로 더는 소식을 들을 수 없다던 샤오 아저씨, 그리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생존'했을까.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는 익숙하지만 난징 대학살은 낯설다. 그 낯선 우리 곁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 한·중·일의 미묘한 관계를 짚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고른 책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합방하고, 그 식민지적 야욕을 중국을 향해 뻗어갔다. 만주를 손에 넣고, 중국 본토를 향해 뻗어나간 그 '야욕'의 정점에 난징 대학살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는 나이가 지긋해진 우리의 어린 기억 속 '중국', '중국인'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어린 시절 어른들은 중국을 낮잡아 표현하는 말을 사용하곤 했었다. 아마도 떼로 몰려온 중공군에 대한 어른들의 기억이 그런 용어를 만들어 냈으리라. 하지만 그런 역사적 기억뿐일까? 
 
 경극이 사라진 날
ⓒ 사계절
 
되새겨봐야 할 역사 

일본의 식민지가 된 우리 땅에서 더는 살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은 조국 땅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떠났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로이 이주한 그곳에는 토착민들이 있었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우러져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시간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농사를 지을 수로를 둘러싸고 중국인들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만보산 사건(1931)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만주 침략을 위해 일본이 조장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의 현장에서 부딪친 건 이주한 우리 농민들과 중국인들이었다. 언론은 사건을 과장 보도했고, 이를 빌미로 우리나라에서 반중 감정이 터져나왔다. 튀틀린 민족적 감정은 우리 나라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중국인, 화교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린치 등으로 이어졌다. 

'호떡 집에 불구경'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의 유래는 안타깝게도 바로 1931년에 발생한 '화교' 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방화와 폭행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조선에 와서 호떡집 등과 같은 소매업에 주로 종사하던 화교들이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평양과 인천을 중심으로 수백 명의 화교들이 사망하고, 잔인하게 유린당했던 역사를 우린 잊고 산다. 우리는 일본의 '피해자'인 기억만을 가지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거침없이 불붙은 민족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히 중국인들 역시 우리 민족에 대해 반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인의 앞잡이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중국에 근거지를 둔 임시 정부 등 독립운동 세력의 위기를 불러온다. 1932년 상해사변을 축하하는 자리였던 흥커우 공원 전승기념식에서 도시락 폭탄을 터트린 윤봉길 의사의 헌신이 있고 나서야 '혐한'의 분위기는 누그러졌고 장제스 등이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경극이 사라진 날>은 사계절이 기획한 '평화 그림책' 시리즈 13권 중 한 권이다. 난징 대학살을 다룬 그림책은 깊이 들여다보면, 그저 난징의 한 시절을 다룬 풍경을 넘어선다. 조선에서부터 난징에 이르기까지 침략의 야욕을 무자비하게 뻗어나가던 일본 식민주의가 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서로에게 등 돌린 채 '유혈' 충돌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비극의 기억을 가진 한국과 중국의 아픈 기억들이 담겨있다.

평화를 향한 첫발은 묻어두고 싶은 역사에 대한 진솔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는 그 시절의 화교와 같은 우리 안의 '타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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