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이·착륙 소리 정도 OK? 지방선거운동 '데시벨과의 전쟁'
나운채 2022. 5. 21. 05:01
“유권자분의 신고가 들어왔어요, 소리 좀 줄여주세요…”
서울의 한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이 요즘 가장 많이 한다는 멘트다.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부터 연설·대담용 확성장치의 데시벨(㏈)이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기준치를 넘어서면 과태료 대상이다. 일각에선 단속 수치가 ‘비현실적’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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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지사 150㏈까지 허용…이외 127㏈ 제한
공직선거법상 소음 기준 규정이 생긴 건 헌법재판소가 지난 2020년 “선거 과정에서 수인한도(受忍限度·공해나 소음 등으로 발생한 피해에서 참을 수 있는 정도) 내 소음 규제 기준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과소하게 이행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후보자의 차량·확성기의 소음 허용치를 신설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동차에 부착한 확성장치는 정격출력 3㎾(킬로와트), 음압 수준 127㏈(데시벨)을 넘으면 안 된다. 다만 시·도지사 선거 후보자용은 40㎾, 150㏈까지 허용된다. 휴대용 확성장치 역시 정격출력이 30w(와트)를 넘으면 안 되지만, 시·도지사 후보자용은 3㎾ 미만까지 가능하다. 정격출력과 데시벨이 높을수록 더 크게 멀리까지 소리가 들린다. 확성장치 등의 사용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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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이·착륙 소리 수준까지 허용하는 셈
공직선거법상 소음 기준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허용치와 비교해봤다. 집시법은 주간과 야간, 심야 등 시간대와 장소에 따라 최저 55㏈, 최고 95㏈ 사이에서 확성기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선거 운동과 집회·시위라는 차이가 있지만 공직선거법상 소음 허용치가 여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환경공단이 소개한 사례별 소음 크기를 보면 열차가 지나는 철도 변의 소음이 100㏈, 전투기의 이·착륙 시 발생하는 소음이 120㏈ 정도다. 한 경찰 관계자는 “대규모 도심 집회에서도 120㏈이 넘는 수치가 측정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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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확인한다지만…경찰은 곤혹
선거 과정에서 허용치를 넘는 소음에 대해선 공직선거법상 최대 과태료 1000만원이 부과된다. 그러나 단속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한 일선 경찰관은 “선거 때마다 소음 신고가 가장 많은데 법에 정해진 기준이 너무 비현실적이다”며 “피신고자에게 ‘법에서 정한 대로 하라’고 안내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나”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찰도 “결국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들이 소음을 줄여달라고 계속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사전 규제 방식이어서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고 설명한다. 선관위 측은 “집회·시위처럼 사후 규제가 아니라 확성장치 표지 교부를 신청할 때 제출하는 소음 기준 증빙서류를 통해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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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져…기준 조정해야”
일각에선 소음 기준을 다시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관 출신 변호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기준이다. 유세의 목적 달성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수준으로 기준을 조정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며 “현행 기준으론 각종 소음 신고 등 부작용이 여러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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