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대통령' 되겠다는 박지원..직전 국정원장의 이례적 꿈 [뉴스원샷]
회사 앞이나 집 근처 편의점에 갈 때면 가끔씩 견디기 어려운 고충을 느낀다. 극소수 편의점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때문이다. 다른 불친절은 다 참겠는데, 무선 이어폰으로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손님 응대를 하는 건 정말 불쾌하다. 처음엔 내게 말을 거는 것으로 착각해 실수로 몇 마디 대꾸도 하곤 했다. "손님은 왕"이란 구닥다리 표현을 꺼내지는 않더라도,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으면 싶을 때가 있다.
말과 태도가 직무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는 다른 영역에도 꽤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지난 7일 당시 현직이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조선일보 인터뷰 한 대목을 읽고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사퇴하면 어떻게 지낼 건가.
“건강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것이다. 어린이날에 직원들 가족을 만났더니 TV조선 ‘강적들’ 얘기를 많이 하더라. 거기부터 나가서 마이크 권력을 장악하겠다.(웃음)”
기자는 박 전 원장이 다른 자리에서도 ‘마이크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냥 농담으로 웃어넘기기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정치인 박지원'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호감도 갖고 있다. 그 만큼 부지런한 정치인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중에서도 워낙 박식하고 달변으로 통하기 때문에 마이크 권력에 대한 포부를 가질 수는 있겠다 싶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민감한 정보를 주무르던 스파이 대장의 퇴직 후 행보로는 ‘마이크 대통령’이 잘 와닿지 않는다. 아마 전세계적으로도 흔한 사례는 아닐 것이다.
박 전 원장의 경우 지난 고발사주 논란 때 롯데호텔 38층 일식집을 즐겨찾는다는 사실이 다른 이의 SNS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또 “어제 DC(워싱턴)도, 오늘 NY(뉴욕)도 비가 5도다”,"교회갑니다"란 SNS 메시지가 ‘동선 공개’논란을 낳은 적도 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자기 홍보에 능수능란한 노련한 정치인이 국정원장에 발탁되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생각이다. 스파이 대장 퇴임 후 마이크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포부도, 국정원장 재직시의 동선 공개와 자기 PR논란도 모두 마찬가지다. 박 전 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개인만의 문제라기 보다 정치인이나 대통령 측근을 국정원장에 임명해온 그간의 인사 관례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을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제대로된 정보기관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윤석열 대통령이 친분이 별로 깊지 않은 김규현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국정원장에 지명한 데 주목한다.
기자가 과거 취재 현장에서 접했던 김 지명자는 자기관리에 빈틈이 없고, 업무에 깊숙하게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마이크 권력을 접수하겠다는 달변가 전임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와의 식사 자리는 무미건조하고 지루하다. 그러나 자신의 직무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 또 자기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최고였던 기억이 난다.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뒤 그가 이끌 국정원에 큰 기대를 건다.
서승욱 정치팀장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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