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유머는 분노를 녹인다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진 농담에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자신이 마음속으로 가장 걱정하고 가장 약하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을 상대가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때 자신을 보호하는 무의식적인 심리 작용이 일어난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누구나 방어기제를 사용하는데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부정’, 남에게 잘못을 돌리는 ‘투사’, 화를 참지 않는 ‘행동화’, 육체적 질병을 호소하는 ‘건강염려증’, 이전 발달 단계로 돌아가는 ‘퇴행’ 등이 있다. 반면 성숙한 방어기제로 ‘이타주의’ ‘금욕주의’ ‘유머’ 등이 있다. 모든 방어기제는 마음의 아픔을 가리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지만 마음의 진실을 감추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 돌아보면 자신의 방어기제를 알 수 있다.
유머는 멋쩍음을 감춰주고 난처한 국면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기도 하는 중요한 능력이다. 유머 감각을 적절히 활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고, 친밀감을 더할 수도 있다. 좋은 리더가 구사하는 최고의 방어기제는 유머인 듯하다.
인도의 독립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의 영국 유학 시절 이야기다. 식민지 청년이란 이유로 그를 업신여긴 한 영국인 교수가 학교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간디에게 말했다. “돼지와 새는 한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네.” 이에 간디는 “그럼 제가 다른 자리로 날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앙심을 품은 교수가 수업시간에 간디에게 질문했다. “지혜와 돈 보따리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나?” 간디는 돈 보따리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교수는 “어찌 배우는 학생이 그럴 수 있지? 나라면 지혜 보따리를 챙길 텐데”라고 핀잔했다. 이에 간디가 답했다. “네, 누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걸 취하는 법이지요.” 또다시 교수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다. 교수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간디의 답안지에 ‘idiot(멍청이)!’라고 썼다. 이를 받아든 간디가 교수에게 물었다. “제 답안지엔 점수가 없고, 교수님 서명만 돼 있는데, 무슨 일이죠?” 유머를 구사하는 이들은 이미 상대방의 공격을 예상하기에 날카로운 분노를 부드러운 유머로 녹여버린다.
또 그가 영국 정부 초청을 받아 런던에 갔을 때 일화다. 영국 정부는 간디를 귀족들의 저녁 만찬에 초청했다. 영국인 귀족 한 사람이 간디를 골려주려고 자기가 먹은 생선의 가시를 간디 쪽으로 밀어 놓고 말했다. “간디 옹은 식욕이 대단하시군요. 아니면 굶주리셨거나.”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간디는 태연하게 상대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식욕이 대단하시군요. 굶주리셨거나. 생선을 가시째 다 드신 걸 보면요.” 가시가 하나도 없는 그의 식탁을 보며 한 말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껴질 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분노의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한 재치만으론 부족하다. 평소 ‘아무리 화가 나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와 같은 삶의 철학을 세워두고 이를 지키려 노력할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는 선에서 약점을 유머로 승화해 자조할 줄 알면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혀 주변에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의 품위를 손상하지도 않을 정도의 농담은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시킨다. 단 절대 상대의 외모에 대한 농담은 하지 않아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다른 사람의 농담을 웃어넘기거나 자조 섞인 유머를 구사하려면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반성이라고 해서 자신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친구가 무심히 한 농담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경험이 있다면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라고 자문해 보면 된다. 분노의 이면에 자신이 마주하기 싫었던 약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유머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내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열등감의 무거운 갑옷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당당하게 말해버리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약점을 자꾸 마음 안에 감추다 보면 어느새 열등감은 무거운 갑옷이 돼 세상과 부딪힌다. 그러나 갑옷을 벗고 여린 속살을 햇볕에 쬐어주면 온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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