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 나오나

장지영 2022. 5. 2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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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년 된 '명기 중의 명기'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엑스 세이델
내달 9일 미국서 경매, 낙찰예상가 256억원
미국 악기 전문 경매회사 타리시오가 다음 달 9일 경매에 내놓는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 엑스 세이델의 소리통과 머리 부분. 최고 낙찰 예상가가 2000만 달러(약 256억원)로 역대 바이올린 최고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타리시오 홈페이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들어본 적 있는 현악기 브랜드다. 17~18세기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지역 현악기 제작 가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명기 중의 명기’로 평가받는다. 제작된 지 300년이 넘은 지금도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미술품처럼 많은 투자가의 관심 속에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공개된 역대 바이올린 최고가 기록은 2014년 경매에서 1600만 달러(약 205억원)에 낙찰된 1741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비외탕(Vieuxtemps)이 갖고 있다. 다음은 172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레이디 블런트(Lady Blunt)다. 2011년 1590만 달러(약 204억원)에 팔렸는데, 일본음악재단이 2008년 1000만 달러에 샀다가 동일본 대지진 직후 구호기금 마련을 위해 내놓은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악기 이력 중 유명한 소유자의 이름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과르네리 델 제수 비외탕은 19세기 벨기에 출신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비외탕이 소유했던 데서 유래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레이디 블런트는 영국 시인 바이런 경의 손녀인 앤 블런트 부인이 가졌던 데서 이름이 지어졌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지스 파스키에와 그가 소유한 1736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이 바이올린은 다음 달 3일 프랑스 경매회사 아퀴트가 경매에 올린다. 아퀴트 홈페이지


이들 명품 바이올린 2대가 다음 달 미국과 프랑스의 경매에 잇따라 나온다. 역대 최고가 역사를 새로 쓸 가능성이 크다. 먼저 3일(현지시간) 프랑스 경매회사 아퀴트에 나오는 1736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는 최고 낙찰 예상가가 1050만 달러(약 135억원)로 역대 바이올린 거래 탑5에 들 수 있다. 노령으로 무대에 잘 서지 않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레지스 파스키에(76)가 내놓은 것으로 10여년 만에 경매에 나온 과르네리 델 제수다.

러시아 출신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토스차 세이델과 그가 사용했던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 엑스 세이델. 타리시오 홈페이지


9일에는 미국 악기 전문 경매회사 타리시오에 171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 빈치·엑스 세이델(da Vinci·ex-Seidel)이 출품된다. 최고 낙찰 예상가가 2000만 달러(약 256억원)로 역대 바이올린 최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 이 악기의 이름은 1923년 프랑스 파리의 악기상이 당시 보유하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이탈리아 화가들의 이름을 붙인 뒤 제정 러시아 시절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930년대 미국으로 건너온 바이올리니스트 토스차 세이델(1899~1962)이 소유한 데서 붙여졌다. 세이델은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 등 여러 할리우드 작품에서 이 악기를 연주해 인기를 얻었다.

바이올린의 탄생과 명기 음색의 비밀

크레모나는 ‘바이올린의 고향’으로 불린다. 16세기 즈음 아마티 가문이 중세 시대 현악기를 개량해 오늘날의 바이올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와 두 아들이 만든 현악기를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 90세 넘게 장수하며 현악기의 표준을 완성한 아버지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것을 지칭한다. 18세기에는 라벨에 제작자와 지명을 라틴어로 써야 했는데, 요즘은 대체로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악기·스트라디바리는 제작자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어린 시절 아마티 공방에서 배운 뒤 독립한 스트라디바리는 젊은 시절부터 섬세한 음질과 정교한 세공으로 명성을 얻었다. 평생 1100여대의 악기를 만들었지만 현존하는 것은 바이올린 550여대, 첼로 50여대, 비올라 12대를 포함해 650대 정도다. 실제 연주되는 것은 100대가 채 안 되며 소장용 가운데 일부는 연주자에게 대여해주곤 한다.

아마티, 스트라디바리와 함께 3대 바이올린 제작 가문으로 불리는 과르네리는 1650년대 안드레아 과르네리가 아마티 공방 견습생을 하면서 시작돼 손자인 주세페 과르네리(1698~1744)에 와서 이름을 떨쳤다. 주세페 과르네리는 악기 라벨에 자신의 라틴어 이름인 요제프 과르네리우스와 함께 십자가, 예수의 첫 세 글자를 로마자로 표기한 I.H.S를 적었기에 ‘과르네리 델 제수’(예수의 과르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과르네리 델 제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비해 디자인은 거칠지만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낸다. 유럽 궁정에선 수요가 거의 없었지만 높지 않은 가격에 좋은 소리를 원하는 일반 음악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주세페 과르네리는 평생 200대 정도의 바이올린밖에 만들지 않았다.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희소성은 더 크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델 제수가 명기인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연구가 행해졌다. 제작자의 기량 외에 1645년부터 100년간 지속한 ‘미니 빙하기’가 바이올린 음색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작자들은 크로아티아산 단풍나무를 썼는데, 추운 겨울로 인해 나무의 밀도가 높아 음색이 좋아졌다고 한다. 나무를 갉아 먹는 해충과 곰팡이를 억제하기 위해 각종 화학 약품으로 방부 처리를 하고 이전과 다른 고품질의 바니쉬(니스칠)를 한 것도 음색의 질을 높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가격 높아질수록 악기 둘러싼 논란도 이어져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바이올린의 가격은 보관상태, 음질, 이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며 1700~1725년 ‘황금기’에 만들어진 것은 50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된다. 사적 거래에선 경매 등에서 공개된 가격보다 더 높게 팔렸을 가능성이 크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가다 보니 2000년대 들어 이들 악기에 투자하는 전문 펀드도 등장했다. 이들의 평균 수익률은 20% 안팎이나 됐고 일부는 40%에 육박해 다른 펀드 수익률을 압도했다. 이 때문에 요즘 연주자들은 고가인 이들 악기를 직접 소유하기보다 임차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연주자들은 콩쿠르에서 우승하거나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연주 기회를 얻곤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의 가격이 타당한지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수차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현대 악기가 이들 악기 못지않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안대를 낀 채 연주하고, 음악에 식견 있는 청중은 무작위로 소리를 듣는 실험을 한 결과 연주자와 청중 모두 소위 ‘명기’와 현대 악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음색과 음향방사도 등에서 현대 악기가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300년 이상 되면서 원목의 심한 건조로 음색이 점점 나빠진다는 연구도 나왔다.

하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에 대한 열망은 시들지 않고 있다. 이들 악기가 단순한 연주를 넘어서는 영감과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경매에 나올 때마다 최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큰 것은 이 때문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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