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 엄지 척' 바이든..첫 일정으로 삼성 평택 달려간 까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한국을 방문하면서 첫 발걸음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으로 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오후 5시 21분 오산 미 공군기지에 착륙한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뒤 곧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캠퍼스를 찾았다. 캠퍼스 내 사무 2동 1층 로비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이든 대통령을 맞았다. 한ㆍ미 정상 간 첫 만남이다. 양국 정상은 첫 식순으로 방명록이 아닌 반도체 재료인 3나노(㎚, 10억분의 1m) 웨이퍼에 사인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이 부회장 안내로 반도체 공장을 둘러봤다. 약 22분간 시찰 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공정 과정에 깊은 관심을 표하며 양손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어 삼성 임직원 등 500여명 앞에 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은 내 방문에 있어서 상서로운 출발"이라면서 "우리 두 나라가 함께 건설할 수 있고 반드시 건설해야 하는 협력과 혁신의 미래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이 만드는 최첨단 반도체 칩은 놀라운 성과"라면서 "단 몇 나노미터 두께의 이 작은 칩이 우리를 다음 세대 인류의 기술 발전으로 이끄는 열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공지능, 양자 기술, 5G를 예로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이 지난해 5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 투자를 발표한 데 감사를 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칩을 만드는 이 같은 시설이 테일러시에 들어선다"면서 "이 투자로 텍사스에 첨단기술 일자리 3000개가 창출된다"고 말했다. 삼성이 미국에서 만든 일자리 2만 개에 추가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같은 투자는 삼성에도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명한 사업 결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면서 "미국에 흔히 쓰는 표현대로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고 170억 달러를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세계 1위 투자국이고 고급 노동력, 혁신과 기업가 정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법 제도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칩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많은 기술과 설비는 미국에서 설계되고 생산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두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발전된 기술을 만들기 위해 협력한다"면서 "이 공장은 그 증거"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우리 경제와 국가안보를 의존하지 않도록 중요한 공급망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한국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 관계와 전면적인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공동 번영과 21세기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방법이라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반도체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꺾고 세계 리더 자리를 유지하는 데 필수 원동력이다. 한국, 일본, 대만 같은 반도체 생산 강국이면서 민주주의 국가들로 ‘반도체 동맹’을 만들고 산업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른바 ‘기술 민주주의 국가(techno-democracies)’들이 합심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고 미국은 기술 초강대국 지위를 이어나가겠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백악관으로 반도체업계 최고경영자(CEO)를 초대해 반도체 공급망 회복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국이 중요 기술(critical technologies)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생산 주도권은 대만과 한국 등으로 넘어간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반도체 공급 차질로 미국 내 자동차 공장라인이 멈춰 서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적시 생산방식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면서 자동차를 비롯한 소비재 등의 수급 불안정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부활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야심 찬 계획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한 사례가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투자 발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20조원을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11월 중간선거를 약 5개월 남겨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미국 내 투자 유치와 일자리 만들기로 최하위급으로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려 보려는 것이다.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첫 일정으로 삼성이 텍사스에 지을 새 반도체 공장 모델을 견학했다"고 전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평택캠퍼스를 ”삼성이 미국에 지으려는 시설과 매우 비슷한 모델“이라고 부르며 “수십억 달러 대미 투자는 미국인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공급망 탄력성을 제공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월 출범하면서 ‘중산층을 위한 외교(Foreign Policy for the Middle Class)’를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며 외교를 등한시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세계무대 복귀를 알리면서(America is back) 국내적으로는 미국인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외교를 약속했다. 삼성의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투자와 현대자동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신설 계획은 '중산층을 위한 외교'의 성과 사례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한국을 떠나기 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만날 계획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현대차가 미국에 하는) 상당한 규모의 투자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한국 시간으로 21일(미국 시간 20일)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와 이 지역에 전기차 공장을 짓는 계획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차 투자 규모는 약 70억 달러(약 8조9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공장 신설로 신규 일자리 8500개가 만들어진다고 전했다.
평택=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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