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강경론 뒤집은 이재명계 한마디 "부결은 즉사, 연기는 고사"

오현석 2022. 5. 2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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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3시간 넘게 격론을 벌였다. 윤석열 정부 초반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된다는 ‘강경론’과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역풍이 불 수 있다는 ‘현실론’이 거세게 맞붙었다. 민주당 내부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이날 오후 4시 본회의는 두 시간 연기됐고, 민주당은 세 차례에 걸친 거수 투표끝에야 ‘인준 찬성(가결)’ 입장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지도부는 ‘부결’ 기류…거세게 붙은 강경론 vs 현실론

당초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한덕수 부결’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민주당이 반대하는 인사들이 줄줄이 임명되는 상황에서, 소속 의원 다수가 ‘부결’을 주장한다는 게 근거였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지난 이틀간 사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자는 의원은 61명, 가결시키자는 의원은 34명이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20명)거나 ‘당론 정해지는대로 따르겠다’(13명)고 답했다.


지도부가 취합한대로 의원총회에서도 초반엔 강경론이 우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인사청문특위 간사인 강병원 의원은 한 후보자의 부적격 사유를 열거하며 “총리 후보자 인준 반대를 우리 당의 공식 입장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켜야 오히려 지방선거 결과가 좋을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한 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우리 지지층이 실의에 빠져 있는데, 국무총리까지 동의해주면 우리 지지자들이 아예 투표장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대표적인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은 자유발언을 통해 “눈치 보지 말고 어깨동무 하고 연대해서 가자”고 외쳤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의원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에 노웅래·김민석 등 다선 의원들은 “지지층만 챙기는 정치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중도층도 생각해야 한다”는 반론을 펼쳤다. 지방선거에서 ‘새 정부 발목잡기’ 프레임에 갇힐 수 있으니, 대승적인 차원에서 윤석열 정부의 첫 국무총리 임명에 동의해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2002년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적이 없다는 점도 부담으로 거론됐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의원총회에선 “표결을 연기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대통령실이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 처리전까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정 후보자 지명 철회 없이 표결했다간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민주당은 그간 윤 대통령이 임명을 보류해 온 정 후보자를 ‘부적격자’로 규정하고, 지명 철회를 요구해 왔다.


친(親)이재명계도 ‘가결’ 요구…“부결은 즉사, 연기는 고사”

이날 의총에선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영진 의원도 토론에 나섰다. 김 의원은 “한 후보자를 부결시키면 즉사하는 것이고, 연기하면 고사(枯死)하는 것”이라며 “아예 찬성으로 당론을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6·1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현실론이었다.

김 의원의 발언은 이 위원장이 전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첫 출발하는, 또 새로운 진영을 준비하는 단계라는 점도 조금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과도 궤를 같이했다. 친이재명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덕수 총리 후보자에 대한 조건 없는 표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 20일 인천 계양구 귤현동 일대에서 유세하는 모습. 이 위원장은 한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이라면서도 인준 표결에 대해선 유연한 입장을 밝혀 왔다. 국회사진기지단

결과적으로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이재명계’의 주장이 당론으로 관철됐다.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등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임명동의안 가결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전한 것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왔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의원총회 직후 “논의 과정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의중까지 감안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론 결정은 세 차례의 거수투표를 거친 뒤에야 가까스로 이뤄졌다. 그만큼 강·온 양론이 팽팽했다. 민주당은 우선 이날 표결에 참여하느냐 여부를 두고 첫 투표를 실시했고, 그다음엔 당론으로 정할지 말지를 두고 투표했다. 마지막엔 당론을 한 후보자 가결로 할지, 부결로 할지를 두고 투표가 이뤄졌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가결·부결이 거의 엇비슷한 숫자였다”라고 전했다.


박홍근 “한 후보자는 44억원 축재한 분”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에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김성룡 기자

민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한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참석해 상당수가 찬성표를 던졌으나, 한 후보자가 부적격이라는 입장은 명확히 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표결 직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한 후보자는) 15년 공직에서 물러나서 나랏일 했던 경력으로 44억원을 축재한 분”이라고 말했고,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선 고성이 터져 나왔다.

최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밀어붙이며 강경 모드로 일관하던 민주당이 한 후보자 찬성으로 전환한 배경엔 최근 급락하고 있는 민주당 지지율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한국갤럽이 발표한 17~19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9%로 2주 전에 비해 12%포인트 하락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날 의원총회 직전엔 일부 온건파 의원들이 “검수완박 하면 지지층이 결집해서 선거에서 이긴다며, 검수완박 주장했던 사람들 올라가서 얘기해 봐”라고 말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오현석·김준영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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