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로 읽어야 하는 책이 건넨 감동

황왕용 2022. 5. 2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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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5.18을 기억하는 방법

[황왕용 기자]

1980년 5월 24일, 총에 맞아 죽은 어린이가 있었다. 이름은 전재수, 나이는 12살이었다. 동네 언덕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계엄군의 오인 사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 자리에 있었던 친구 4명의 증언에 따르면 도망치다 벗겨진 고무신을 신으려고 돌아가는 길에 총에 맞았다고 한다. 고무신은 1969년 5월 15에 태어난 전재수 군의 어머니가 주신 11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이 사건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중에 생긴 사건 중 하나다. 인간 개인 생존의 의미로 5.18을 보더라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역사적 의미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묻는다면, 우리는 더더욱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또 다른 모습의 국가폭력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5.18을 기억하는 방법

대한민국의 10대는 5.18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왜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을까?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고등학교 사서교사다. 전남 광영고등학교의 인문 기획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인문 기획단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운영하는 1318 책벌레리더스로 활동하면서 배움의 깊이를 확장하는 친구들이다. 주제를 정하고 탐구하고, 전체 학생들에게 확장하면서 배우는 인문 기획단과 함께 5월의 주제를 '5.18 민주화운동'으로 정했다. 인문 기획단 학생들과 함께 협의한 끝에 '5.18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슬로건으로 정했다.

기억하기 위해서 자세히 알아야 한다. 임광호 등이 쓴 <5월 18일, 맑음>이라는 책을 주제 도서로 선정했다. 읽고, 서평을 작성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5월 10일에는 비경쟁 독서토론을 진행했다. 주제 도서를 읽고 떠오르는 질문들을 다른 친구들과 나누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사 시간, 저녁 시간을 활용하여 '도서관 활용 수업'을 진행했다. 문미연 한국사 선생님과 함께 '슈톨퍼슈타인'을 제작하는 수업을 했다. 슈톨퍼슈타인은 망각에 저항하는 예술이다. 독일의 군터 뎀니히라는 예술가가 1992년에 시작한 프로젝트로써 길바닥에 작은 추모 동판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독일어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stolpern(걸려 넘어지다)과 stein(돌)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어휘로, 걸림돌로 해석하면 된다. 길바닥에 걸리적거리는 돌이 있다면 한 번쯤 쳐다보게 된다. 작은 동판에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 5.18 기억하겠습니다 슈톨퍼슈타인 설치로 전체 학생이 5.18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 황왕용
 
슈톨퍼슈타인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사서교사가 담당했고, 5.18 주제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역사교사가 했다. 관련 도서나 누리집을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각자가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광영고 1학년 학생 모두가 슈톨퍼슈타인을 제작하는 예술가가 되는 수업이었다. 수업에서는 실제 동판을 활용하는 것이 어려워 주방이나 목욕탕에 사용하는 블록타일(10*10cm)을 활용했다. 실제 슈톨퍼슈타인을 학교 곳곳에 설치하더라도 신경은 쓰이지만, 걸려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두께라서 더 좋았다.

광영고 강덕현 학생(3학년)은 "망각에 저항하는 예술 슈톨퍼슈타인을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5.18에 접목하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 기억하겠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고 전했다. 5월 10일 비경쟁 독서토론한마당이 끝나고 늦은 저녁 시간에 학생들이 만든 슈톨퍼슈타인을 설치했다. 인문 기획단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사이버 추모관도 만들어 운영했다(5월 20일 기준 98개의 추모글).

5월 11일에는 주제 도서의 작가분을 모시고 강의를 듣고 대화를 했다. 광영고등학교 인문기획단장인 장지영 학생(2학년)이 작가분에게 직접 연락해서 초대했던 터라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뜨거운 대화가 오갈 수 있었다. 비경쟁 독서토론한마당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기도 하고, 42년 전으로 돌아가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느낌으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 작가와의 만남으로 학생들에게 아로새겨지지 않았을까?

'손과 발로 읽는다'는 독서의 의미

손과 발로 읽어야 오롯이 읽었다고 생각되는 책이 있다. <5월 18일, 맑음>이 딱 그런 책이다. 5.18 관련 사진, 기록, 의미 등이 담긴 책은 눈과 머리로 읽는 것만으로도 좋겠지만, 손과 발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은 학생들과 함께 5월 18일 독서 기행을 떠났다. 40여 명의 학생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실제 현장에서 확인하기로 했다.
  
▲ 참배를 위한 행렬 민주5.18국립묘지.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민주의 문을 통과하고 있다.
ⓒ 황왕용
 
전일빌딩245,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국립5.18민주묘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민주묘지에서는 전재수의 비석, 박금희 등 비석에 새겨진 추모의 글을 읽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책에서 봤던 주먹밥과 투사회보의 실체를 확인하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기도 했다. 전일빌딩245에서는 헬리콥터에 사격한 것으로 확인되는 총탄의 흔적을 보고 숙연해지는 학생들의 모습에 역사를 몸에 새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광영고 김혜지 학생(3학년)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손과 발로 읽는다는 표현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광주에서 두 발로 걷고, 손으로 만지면서 사서 선생님의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두 발로 걷고, 손으로 만지며 5월의 독서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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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러가지 활동 사진은 전남 광영고등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합니다. https://g-yeong.hs.jne.kr/user/indexSub.action?framePath=unknownboard&siteId=g-yeong_hs&dum=dum&boardId=845204156&page=1&command=list&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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