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 품은 채.. 이주노동자 눈물로 짓는 밥상

김남중 2022. 5. 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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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깻잎 투쟁기
우춘희 지음, 교양인, 250쪽, 1만6000원
깻잎 밭에서 깻잎을 따는 이주노동자들. 깻잎은 1년 내내 일거리가 있고 사람의 손으로만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는 데 맞춤한 작물이다. 우춘희 제공


‘고용허가제’로 불리는 외국인 고용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약 22만명이다. 필리핀 몽골 태국 캄보디아 중국 등 16개국에서 1년에 약 5만5000명의 20~30대 젊은 노동자가 한국에 입국한다. ‘깻잎 투쟁기’는 농업 분야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최초의 르포르타주다. 캄보디아와 한국을 오가며 이주노동자를 연구하고 지원하는 연구활동가 우춘희(미국 메사추세츠대 사회학 박사과정)씨의 4년여 관찰기다.

그런데 왜 ‘깻잎’일까. 저자가 만난 이들이 주로 깻잎 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깻잎은 이주노동자에게 의존하는 한국 농업을 상징하는 작물이다. 1년 내내 일거리가 있고 사람의 손으로만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는 데 맞춤한 작물인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농장주는 고추 배추 사과 같은 작물을 재배하다가 깻잎으로 바꾼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 사이에선 깻잎 밭에서 일하는 게 힘들고 고되기로 악명이 높다. 오전 6시 30분에 밭에 나가서 오후 5시 30분까지 쉬지 않고 깻잎을 따야 하루 할당량인 1만5000장(15상자)을 채울 수 있다. 깻잎은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상징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숙소인 컨테이너 가설물. 우춘희 제공


저자는 경기도 포천의 채소 농장에서 일하다 ‘기숙사’로 불리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세상을 떠난 캄보디아 여성 속헹의 이야기로 시작해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조명한다. 그들 중 70%가 화장실도 없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가건물에 거주한다. 농장에선 한 달에 두 번 쉬고 하루 9∼10시간씩 일한다. 매일 1∼2시간씩 공짜 노동을 강요받는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체불이 빈번하다. 2020년 임금 체불을 신고한 이주노동자는 3만1998명이고, 체불 금액은 1287억원이나 된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피해를 입어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 입증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한국에서 더이상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 아파도 일을 쉴 수 없고 병원 이용 절차를 몰라 약만 먹고 만다. 그런데도 건강보험료는 한국인 평균을 기준해 떼어간다.

그들에 대한 비하나 혐오는 어떤가. 농촌 노인들의 일자리를 다 빼앗아 간다거나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최저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이 일하러 오지 않는 곳에 외국인이 일을 하도록 돕는 제도”라면서 “한국이 필요로 해서 만든 제도이지 저개발국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현행 고용허가제의 반인권성을 고발하는 것도 이 책의 주요한 목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쉽게 옮길 수 없게 만든 ‘사업장 변경 제한’이다. 임금을 못 받아서, 성폭력을 당해서 작업장을 떠나려 해도 사업주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 취업 기간 중 작업장 변경이 없으면 잠시 귀국 후 다시 한국 취업을 보장하는 ‘성실 근로자 제도’도 이들을 옭아매는 수단이다.


저자는 고용허가제가 그들이 한국에 정주해 살 기회를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취업 기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강제추방 사유도 많다. 그 결과 불법 체류자가 양산됐다. 하지만 농촌에선 불법 체류자도 구하지 못해 안달하는 게 현실이다.

책은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현대판 노예로 부려 먹는 게 아닌지, 우리가 먹는 채소가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 농업과 농촌은 그들이 없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인데 아직도 그들을 이용만 하고 내쫓는 게 옳은지, 이제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토론해야 하는 게 아닌지 묻는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동력’만 보지 말고 ‘삶’을 보자고 호소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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