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난민 애환·식민주의를 그리다

김남중 2022. 5. 19. 17: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 압둘라자크 구르나 대표작 3권 동시 번역 출간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영국 캔터베리에 사는 구르나는 자신의 대표작 세 권이 한국어로 동시 출간된 것을 계기로 18일 한국 기자들과 줌으로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캔터베리의 켄트대에서 평생 학생을 가르쳤으며 4년 전 은퇴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학동네 제공


출판사 문학동네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프리카 난민 출신 영국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4)의 대표작 세 권을 동시 출간했다. 구르나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까지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그의 소설이 아시아권에서 번역돼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4년 발표된 ‘낙원’(Paradise·왕은철 번역)은 구르나에게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 후보작이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구르나의 다른 소설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바닷가에서’(By The Sea·황유원)는 2001년 발표됐으며 그를 두 번째 부커상 후보로 올려놓은 작품이다.

구르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낭독 작품으로 선택해 애정을 표시했다. ‘그후의 삶(Afterlives·강동혁)은 2020년 출간된 구르나의 최신작이다. 그의 열 번째 장편소설이다.

18일 오후 한국판 출간을 기념해 줌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구르나는 “‘낙원’은 1914년에서 18년까지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을 다룬 작품으로 주인공이 어떻게 식민주의에 휩쓸렸는지 얘기하고 싶었다. 이 사건은 30년 후 쓴 ‘그 후의 삶’에서 더 깊이 다뤘다”며 “두 소설은 연결돼 있다. 식민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어떤 주제로 쓰겠다고 정해 놓고 시작하기보다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며 “주로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제 눈길을 끄는 일에서 시작한다”고 얘기했다.

“잔지바르에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아버지는 굉장히 연로했다. 길 건너 모스크까지 매우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소년이었을 때, 잔지바르에 식민주의가 도착했을 때, 그가 어떤 경험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낙원’으로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

‘바닷가에서’는 아프가니스탄 항공기 납치 사건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 비행기가 런던에 들어왔다. 다들 아프가니스탄 국내 여행객이어서 평범한 차림이었는데 백발의 노신사가 한 분 계셨다. 탑승객은 전원 영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 그걸 보면서 백발의 노신사는 왜 영국에 남기로 생각했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 소설을 구상했다.”

‘바닷가에서’의 주인공은 65세 난민이다. 그는 난민 신청을 하며 “나는 살아왔지만, 살아버린 것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달라서, 마치 하나의 삶을 끝내고 이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고 말한다. 이어 “그럼에도 나는 예전의 삶이 내 뒤에서, 또 내 앞에서 무례한 건강함으로 충만하게 고동친다는 걸 안다. 내 손에 시간이 주어져 있고, 나는 시간의 손안에 있으니, 내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편이 좋겠다”고 얘기한다. 소설 속 이 인물은 구르나 자신의 모습과 겹친다.


세 권의 소설은 거의 30년에 걸쳐 쓰였지만 분위기나 주제가 비슷하다. 어떤 책을 골라 읽어도 낯설다는 느낌부터 받는다. 구르나가 그리는 아프리카는 낯설다. 그는 흑인의 아프리카가 아니라 이슬람의 아프리카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가 떠나온 고향의 세계다.

1948년 동아프리카 해안 지역인 잔지바르 섬(현 탄자니아)에서 케냐와 예멘 출신의 부모 아래 태어난 구르나는 흑인의 아시아인·아랍인 박해를 피해 68년 영국으로 왔다. 영국 켄트대 영문학 및 탈식민학 교수가 된 그는 87년 발표한 첫 장편 ‘떠남의 기억’(Memory of Departure)에서부터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이야기를 써왔다.

동아프리카의 아랍계 아프리카인 이야기는 구르나 자신의 이야기이자 그가 남겨두고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동아프리카는 인도양 무역의 중심지였고 유럽 식민주의의 전장이었다. 스와힐리어뿐 아니라 아랍어 힌두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성당 기도실 모스크 등 다종교적 시설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모르는 아프리카다. 이것이 구르나의 소설을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기존의 영미문학에서는 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기존 아프리카 문학과도 달랐다.

‘낙원’을 번역한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석좌교수는 “흑백 구도로만 아프리카 대륙을 파악하다 보니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아랍인과 다른 인종을 배제하게 된다”며 “아프리카는 구르나의 소설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묘사된다”고 평가했다.

구르나는 “저는 동아프리카와 유럽 식민주의, 이 둘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 소설은 아프리카에 국한된 게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인들은 종교적·문화적으로 전 세계와 교류하며 수백년 역사를 쌓아왔다. 그런 다층적 측면을 조명하고 싶었다. 이 지역의 역사만이 아니라 동시대적 중요성도 얘기하고 싶었다.”

구르나는 이날 문학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문학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즐거움을 위해 문학을 집어 들고 읽는다. 문학을 통해 타인의 삶을 깊게 이해하고 천착할 수 있다. 인간의 관계랄지 타인의 행동이나 생각을 더 깊게 이해하고 알아나가게 한다. 문학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가 굉장히 진실된 글을 쓸 때는 삶의 조건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잔혹함이나 불공정함만이 아니라 따뜻함이나 친절함도 써야 한다. 둘 다를 써야 한다”며 “가혹하고 불공정한 것을 많이 얘기하는데 그 이면의 친절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르나는 켄트대에서 교수를 하면서 글쓰기를 병행해 왔다. 그는 “학기 중에는 교수로 일하고 안식년이나 방학 기간을 이용해 소설을 써왔다”며 “4년 전 은퇴하면서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동아프리카 출신 무슬림에 망명자인 구르나는 동아프리카, 식민주의, 난민이라는 주제로 문학을 펼쳐왔다. 난민문학이다. 그는 아프리카 난민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유럽 백인 또한 난민의 자손 또는 후예임을 알려준다. ‘바닷가에서’에 는 등장하는 거의 모든 유럽 백인이 자신이 디아스포라의 자손임을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 구르나는 “난민은 모든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구르나는 “풍요를 누리고 평화를 누리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를 환대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닷가에서’가 식민주의의 역사를 가진 한국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작가로서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 가진 즐거운 측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른 나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게 바로 문학”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