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앤킵'이냐 '면도날 원칙'이냐.. SKB-넷플릭스 법정 공방 2라운드
‘망 사용료’를 둘러싼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B)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법정에서 ‘빌앤킵’(Bill and Keep·상호무정산) 관행이나 ‘오컴의 면도날 원칙’이라는 낯선 개념·용어까지 내세우며 대립각을 세운다.
두 회사의 법정 공방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인 통신사 측이 과도한 트래픽(자료 전송량)을 유발하는 콘텐츠사업자(CP)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최초의 판결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지난 18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항소심의 2차 변론기일이 열렸다. 두 회사는 지난 3월 열렸던 항소심 1차 변론기일에서 내놨던 주장을 고수했다. 넷플릭스의 자체네트워크 ‘오픈커넥트어플라이언스(OCA)’의 법적 지위를 두고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넷플릭스 주장의 핵심은 “넷플릭스도 OCA를 통해 통신망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ISP이고, SKB와 통신사 간 대등한 지위에서 연결(피어링)을 했다”는 것이다. ISP 사이에서 트래픽 양에 큰 차이가 없으면 ‘상호무정산’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는 ‘빌앤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넷플릭스 측은 “192개국 1500만개의 피어링 중 99.9996%가 빌앤킵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나머지 0.0004%만이 망 이용량에 따라 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OCA는 넷플릭스에서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로 구축한 캐시서버다.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데이터를 임시 저장한 뒤 데이터 요청이 있을 때 빠르게 보내준다. 여러 단계의 국제망을 거치지 않아도 돼 해외에서 한국까지 국제 구간의 트래픽을 줄일 수 있다. 넷플릭스 측은 “SKB는 2016년 1월 미국 시애틀에서 최초로 대가 지급이 없는 OCA와 직접 연결을 시작했다. 이후 SKB의 요청으로 연결지점을 2018년 5월 일본 도쿄로 변경했고, 2020년 1월에는 홍콩도 추가했다”면서 “만약 SK브로드밴드가 ‘망 이용 대가를 지급받아야 연결한다’는 의사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면 OCA 연결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맞서 SKB는 “OCA는 데이터를 분산된 서버에 저장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SKB 측은 “넷플릭스는 기간통신망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ISP에 해당하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상호무정산 원칙은 동등한 수준의 ISP 사이에서 적용되는 정산 방식”이라고 맞섰다.
오히려 SKB는 ‘상거래의 기본은 유상거래’라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무정산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망 이용 대가를 주장하고 있다는 넷플릭스 논리는 틀렸다는 지적이다. SKB 측은 “교통사고가 나고 진료비를 협상할 수 없어 일단 수술했는데, 나중에 무상 아니었느냐고 주장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어 “‘오컴의 면도날 원칙’은 복잡한 논리나 설명의 경우 거짓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면도날로 베어버리라는 원칙이다. 우리 주장은 단순하지만 넷플릭스 주장은 생소한 개념이 계속 등장한다. 넷플릭스는 사실관계를 왜곡하기 위해서 사안을 비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음 달로 예정된 3차 변론기일에서 쟁점별 심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전 세계와의 자유로운 연결’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감안해 사안을 판단해야만 한·미 통상 마찰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 국회에서 이른바 ‘망 사용료법’을 추진하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충돌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었다. “인터넷통신과 관련해 차별적 조건을 달아선 안 된다”는 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망 사용료법’으로 불리는 법안 6개가 발의돼 있다. 세부 사항에서 일부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국내 및 해외 콘텐츠 사업자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CP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것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국내 ISP와 망 사용료 계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하게 하는 식이다. 국회는 업계 간 의견 충돌, 통상 마찰 우려 등이 불거지자 법안 통과를 보류했다. 공청회를 열어 추가로 논의할 방침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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