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야학 노동자들은 왜 5.18 민주항쟁에 적극 참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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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기자]
"학생 여러분은 돌아가십시오. 가서 여러분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들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윤상원)
5.18 민주화항쟁 42주기인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 정부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국립5·18민주묘지의 정문인 '민주의 문'으로 입장해 5·18 유공자 유족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 전남대 정문 앞 5.18 민주항쟁의 불씨를 지핀 전남대 정문 4.18 기념전적지 1호 앞 |
ⓒ 이명옥 |
'임을 위한 행진 코스'는 전남대 민주의 길-들불야학 옛터(광천성당)-광천동 시민아파트-5.18 자유공원 들불열사기념탑-윤상원 열사 생가로 이어진다.
1978년부터 들불야학의 강학으로 활동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윤상원 열사와 5.18 민주항쟁의 중심축이 되었던 들불야학 장소를 둘러보는 코스다.
▲ 들불야학 옛터 1978년 처음 들불야학이 시작됐던 광천 성당 교리실 |
ⓒ 이명옥 |
전남대는 정의·평화·인권의 민주길을 조성해 오월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정의의 길에는 법대 앞에 박관현 언덕을, 사회과학대 앞에 도청에서 최후까지 민주주의를 사수했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숲을 조성해 열사를 기린다. 윤상원 숲은 '님을 위한 정원'으로 불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가 적힌 기념비도 있다.
▲ 광천동 시민아파트 들불야학 배경지인 광천동 시민아파트 |
ⓒ 이명옥 |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들불야학 환경은 열악했다. 들불야학 교실로 사용했던 교리실은 시멘트 벽돌 건물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1978년 12월 25일 박기순은 야학 학생들과 난로의 땔감인 나무를 주으러 다녀와서 피곤한 몸으로 잠을 자던 중가스에 중독되어 스물두 해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박기순은 1978년 여름 노동운동을 하러 광주로 돌아와 시간당 120원의 공장 노동자로 취업한 윤상원을 설득해 들불야학 강학(교사)로 활동하도록 만든다. 1978년 당시 자장면 한그릇 값이 200원 정도였고 쌀 40킬로그램이 17250원이었다니 한달 내내 10시간씩 일하고 받는 월급 36000원으로 쌀 사고, 월세와 차비를 내면, 자장면 한 그릇 마음대로 사먹기 어려웠을 것이다. 윤상원 열사는 노동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온몸으로 확인했기에 야학이 단순한 검정고시를 위한 학교가 아닌 광주지역 노동 운동의 토대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들불야학은 3기 특별 강학으로 함께한 박효선이 가르친 탈춤과 연극으로 '노동운동'에서 '학생운동', '청년운동'에서 '문화운동'과 '빈민운동'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 윤상원 생가 들불야학 강학이자 5.18 시민군 대변인이던 윤상원 열사 생가 |
ⓒ 이명옥 |
현재는 '광천동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에 따라 들불야학 옛터(5.18시적지27호)는 존치구역으로 포함돼 보존될 예정이지만 들불야학의 배경지인 시민아파트는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 믄재인 대통령 기념사 믄재인 대통령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 |
ⓒ 이명옥 |
들불야학 강학(교사)들과 인간의 삶에 눈 뜬 들불야학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5.18 민주항쟁에 참여한 이유일 것이다.
아직도 오지 않은 노동자의 봄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2월 20일 들불 야학을 처음 만들고 헌신했던 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에서 뜻을 기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를 결집하자는 의미로 제작한 노래극 '넋풀이' 마지막 행진곡으로 만들어진다. 백기완의 장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김종률이 곡을 붙인 것이다.
우리는 5.18 민주항쟁이 이뤄낸 역사를 기억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곤 한다. 노동자 민중의 집회엔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이어진다. 원작자 백기완 선생은 한평생 독재와 독점자본에 맞서 싸우며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서서 '노나메기' 세상을 꿈꾸며 걸어왔다.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스스로의 몸을 제물삼아 분신항거했다. 전태일의 항거는 들불야학을 태동시킨 박기순을 비롯한 수많은 대학생 지식인을 일깨워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미완으로 남겨진 채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태일재단 한석호 사무총장은 함께 역사탐방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40년동안 민주화와 노동해방이라는 두 개의 심장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오늘 윤석열 정부 요인과 국민의 힘 의원들이 총 집결해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제창한다고 한다. 이제 민주화는 어느 정도 안착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전태일의 꿈과 들불야학를 통해 이루려던 노동자의 꿈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복잡한 마음으로 숙제를 안고 돌아간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앞선 자를 따를 것인가. 앞서서 나간 자들이 남긴 숙제를 풀어내는 것은 산 자인 우리들 몫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자들이 5월 광주 민중 항쟁을 승리로 기록해냈듯이 전태일의 꿈, 들불야학의 꿈, 노나메기 세상을 향한 꿈을 잊지 않고 행동하는 한 노동자가 주인되는 노동자 참세상은 기필코 오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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