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은행에 저금만 열심히 하면 될까?_돈쓸신잡 #46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단어 하나로 요약하면 '인플레이션'이다. 요즘엔 누구와 대화를 하든 "물가가 미친 것 같아요"라는 주제가 쉽게 화두에 오른다. 실제로 생활 물가가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다. 자주 가는 평양냉면 가게가 있는데, 냉면 한 그릇 가격은 1만3000원이다. 처음 이 식당에 다녔을 땐 9000원이었다. 약 7년 만에 가격이 50% 가까이 올랐다. 냉면에 수육까지 곁들이면 결코 “가볍게 냉면이나 먹을까?”라는 말을 하기 어려운 가격이 나온다.
물가가 이렇게 오르니 월급이 뻔한 직장인의 지갑은 얇아질 수밖에 없다. 점심에 밖에 나가서 밥을 사 먹고, 커피 한 잔만 먹더라도 2만 원은 우습게 깨진다. 만약 내가 밥을 사야 하는 자리라면 소소하게 먹어도 10만 원은 훌훌 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치킨 3만 원’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높다. 한번 오른 물가는 경제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짜장면이 한 그릇에 2500원 하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즉, 현재 무서운 속도로 치솟는 물가는 분명 비정상적 현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오른 물가 역시 '뉴노멀'로 받아들여질 테다.
개인이 인플레이션에게 멱살 잡히지 않는 방법은 명확하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려 등 뒤에서 쫓아온다면, 나는 그 사람보다 더 빠르게 도망치면 된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물가 상승에 대처하는 방법은 돈을 더 버는 방법밖에 없다. 생산성을 올려야 한다. 방법은 2가지다. 첫 번째는 커리어를 탄탄히 쌓아서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것. 두 번째는 좋은 자산에 투자해서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 여파로 투자 시장에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투자는 중요하다.
그래서 '현금 비중을 늘려라'라는 조언에는 당연히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 그런데, 이 조언을 자세하게 뜯어봐야 한다. 어디까지나 현금의 '비중'을 늘리라는 조언이다. 모든 금융 자산을 현금으로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현금 비중을 늘릴 때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영원히 현금을 보유하라는 뜻이 아니다. 현금은 일종의 총알이다. 타이밍이 오면 우린 총을 쏴야 한다. 적절한 기회가 왔을 때, 현금을 활용해 좋은 자산을 값싼 가격에 담아야 한다. 그래서 현금 비중을 늘리는 목적도 궁극적으론 투자하기 위해서다.
현금은 그 자체로 하향 곡선을 그리는 자산이다. 때론 현금의 가치가 치솟을 때도 있지만, 자본주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현금의 가치는 무조건 내리막길이다. 20년 전에 1억 원으로 할 수 있었던 일 상당수는 지금 같은 돈으로 절대 할 수 없다.
물가가 오르면 개인도 힘들지만, 기업도 힘들다. 제품을 생산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늘어난 비용을 그대로 제품값에 반영하면 고객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기업은 다르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늘어난 비용을 제품 가격에 수월하게 반영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 독점적인 기업, 브랜드 가치가 압도적인 기업, 시장 지배력을 갖춘 B2B 기업은 손쉽게 비용을 외부에 전가할 수 있다. 고객 눈치를 보지 않고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강점이다. 이런 기업을 눈여겨보고 기회가 오면 우리는 아껴둔 총알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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