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명사역 시작" 대구동신교회 물러난 권성수 목사

강주화 2022. 5. 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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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십자가도 져야..'구관이 명관'이란 말 말라"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목사가 2018년 4월 대구 수성구 교회에서 개최된 ‘제4회 생명사역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구동신교회 제공


20여년간 담임하던 대구동신교회에서 물러난 권성수(71) 원로목사는 홀가분해 보였다. 권 목사는 최근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교단 행사장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달 담임목회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감사다. 힘든 고비도 없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마치 제 옆에 따라다니시면서 도우신다는 느낌을 받으며 목회 했다. 2000년부터 지난달까지 목회한 기간 전체가 감격”이라고 했다.

권 목사는 총신 신대원 교수로 재직하다 2000년 대구동신교회 담임으로 청빙됐다. 그는 “학교에서 가르칠 때는 새벽기도하면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 내가 너무 편하게 지내는 거 아닌가. 주님 앞에 갔을 때 부끄럽지 않을까. 기획실장을 하면서 미래학 서적을 30권 가까이 읽고 21세기가 실천적 지식인의 시대라는 걸 깨달았다. 목회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5년간 기도했다”고 했다.

부친은 목회자였다. 그는 오형제 중 차남이다. 형제들은 모두 목회자나 신학자다. 교회 담임이 쉽게 결정되지는 않았다. “당시 서울 대구 여러 큰 교회에서 청빙 요청이 왔다. 그런데 마음이 안 움직이더라.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행 20:22) 선교하지 않았나. 대구동신교회 청빙 요청에는 내 마음이 매이더라. 대구동신교회가 선교에 열려 있는 거 같았다. 그 오픈 마인드가 좋았다”고 했다.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원로목사가 최근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교단 행사장에서 은퇴 후 하게 될 생명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천=강주화 기자


그는 생명사역에 매진했다. “옥한흠 목사님은 예수님 사역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료하는 것(마 9:35)에서 찾았다. 평신도로 제자로 세워 목회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나도 비슷한 본문(마 4:23)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이라고 정의했다. 생명사역의 틀로 제자훈련을 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강조하는데 성도들의 변화를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다. 권 목사가 신학교 총장 후보가 된 적이 있다. “한 장로님이 교회를 버스에 비유하면서 ‘지금 버스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기사가 내리면 어떻게 되겠냐고 했다. 내가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 그 말씀이 내게도 와 닿았다.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다. ‘주님 제 힘으로 못 넘어갑니다. 도와주세요’라고.”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통과했다. 그는 “목회자인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위기는 온다. 어떤 위기가 와도 주님께서 그 자리에 늘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 같다. 나 스스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어도 주님은 극복하게 하신다는 걸 믿자”고 했다. 생명사역으로 성도도, 교역자도, 장로도 성장했고. 대구동신교회는 교회가 있는 만촌동을 섬기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목사(오른쪽)가 2016년 11월 대구 수성구 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웨스트민스터 콘퍼런스 인 코리아’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구동신교회 제공


동장이나 구청장에게 하도 자주 ‘필요한 거 없습니까’라고 묻다 보니 나중에는 ‘이제 그만 물어보시라’고 할 정도였다. 주부들을 위한 문화대학,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대학을 운영했다. 어르신들이 매 회기 700~1200명이 등록했다. 대구 전역을 돌면서 가가호호 전도하고 대구성시화 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15장에서 보듯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 주님의 일을 하신다”고 했다.

대구동신교회는 그가 부임했을 때 출석 성도가 800명정도였다. 지금은 약 10배가량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분 교회는 쇠퇴하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 가장 큰 문제는 십자가는 사양하면서 면류관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영광이 아니라 고난이 먼저다. 교회나 교단, 연합사역에서 뭔가 잘못 돼도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몇 명 없다. 그런 작은 것부터 안 되면 교회가 바로 서기 어렵다”고 고언했다.

권 목사는 후임 목회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미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앞으로 생명사역을 이어갈 계획이다. 매년 국내에서 생명사역컨퍼런스를 열고 미국에서도 개최한다. 동부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서부 베델교회, 남부 세미한 교회를 중심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해 이민 목회하시는 분들을 섬길 예정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백석대학교에서도 강의한다.

권성수 목사와 김난숙 사모가 지난달 29일 대수 수성구 대구동신교회에서 은퇴 및 원로 추대식 후 강단 앞에 섰다. 대구동신교회 제공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성도들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새로 오신 문대원 목사님 정말 훌륭한 분이다. ‘구관이 명관이다’ 이런 말 하지 마시라. 또 내가 교회에 갔을 때 ‘목사님, 많이 늙으셨네요’라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목사가 아니라면 ‘당신도요’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하긴 어렵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낫다. 서로에게 덕이 되는 말을 하자. 하하.”

홍천=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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