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해?

2022. 5. 1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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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조선대 교수·소설가)


소설가 김혜진의 단편 ‘다른 기억’에는 대학신문사 주간 교수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으로 갈등을 빚고 멀어지는 두 친구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소설을 읽으면 어떤 사안 혹은 어떤 인물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 의해 갈라져 있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징후와 만나게 된다.

신문사 주간 교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너’의 캐릭터에 대해 소설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옳고 그르고, 좋고 싫고, 그런 것들을 한번 정하고 나서는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주간 교수의 비리가 밝혀져 물러난 후에도 그는 교수에 대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해?”라고 그는 묻는다. “선생님한테 그럴 만한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라는 말도 한다.

우리는 이 인물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라는 용어를 어렵지 않게 불러낼 수 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것이 확증편향이라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합리화하는 것은 인지부조화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 무시와 우기기, 궤변이 동원되고 그 결과 사회 구성원 간에 메꾸기 힘든 갈등과 대립의 골이 생긴다.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해? 이 질문의 함의는 분명하다. 사실을 알 필요가 없다. 사실이 무엇이든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사실 파악은 중요하지 않다. 이쪽의 어떤 나쁜 사실도 미화할 수 있고, 저쪽의 어떤 좋은 사실도 트집 잡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수년 동안 경험했다. 합리화와 궤변은 이쪽을 미화하고 저쪽을 트집 잡기 위해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사용되고 있다.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냐고? 당연히 중요하다. 물론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에 관한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해석과 평가가 사실에 대한 분석과 이해에 앞설 수는 없다. 제대로 분석도 하지 않고 이해도 무시한 채 해석과 평가를 앞세우는 것은 옳은 독해가 아니다.

분석과 이해와 해석은 순차적이다. 순차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순서를 바꿔서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그런 불가능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문제다. 보지도 않고 평가한다. 해석이 사실을 만들어낸다. 한 말이나 일은 보지 않고, 그 말이나 일을 한 사람만 본다. 그 말이나 일을 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달라진다. 그러니 신념이나 입장에 따라 사실이 다르고 기억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입장과 신념에 따라 세상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같은 사실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는 있다. 그 경우에는 소통이 가능하다. 갈등이나 대립이 생기더라도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사실 자체를 다르게 알고 있거나 사실 자체를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을 아는 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묻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소설에서 문제의 교수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추앙하는 ‘너’의 발언에 대해 테이블을 닦던 식당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픽 웃는다. 작가는 이 식당 여자의 웃음에 대해 ‘별일을 다 보겠다는 듯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라고 주석을 붙였다. 조금 떨어져서 보는 관찰자의 눈에는 이 ‘어이없는 별일’이 보인다. 맹목과 비합리의 부끄러운 속살이 훤하게 보인다. 그런 위치를 지키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옳고 그르고, 좋고 싫고, 그런 것들을 한번 정하고 나서는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문을 닫고 들어앉아 귀를 닫은 사람들. 문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사람들. 왜 이렇게 다들 맹렬하고 투철한 신념의 사람들이 되어 있는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마구 던지는 후안무치의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 나는 것은 아무 말이나 해도 무조건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볼 수 있는 문턱의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렇게 돼야 어이없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다. 그래야 별일을 덜 보며 살 수 있게 된다.

이승우 (조선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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