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지도자는 백화점에 안 간다고?
마크롱은 사마리텐 개업식 참석
김어준 혹세무민 방송 언제까지?
“이전 대통령들은 백화점에서 살 것이 없어서 아무도 재임 기간 중 백화점 공개 쇼핑을 안 했을까. 아니죠. (중략) 다른 백화점과의 형평 문제가 발생하니까. 그뿐 아니라 다른 신발 브랜드와의 형평 문제, 아예 백화점에 입점하지 못한 중소 브랜드와의 형평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이며, 나아가 지금 신발이라는 특정 공산품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한 상황인지까지. (중략) 이런 과정들을 거치게 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대통령이 주말에 개인적인 백화점 쇼핑을 안 하게 되는 것이죠.” 중략된 부분에 경호와 그에 따른 시민 불편 문제가 언급됐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지난 17일 김씨가 한 말이다. 그 방송을 듣지는 않는다. 그가 윤석열 대통령의 백화점 쇼핑을 비판했다는 보도를 보고 ‘다시 듣기’를 해 봤다. 목소리를 깔고 심각한 어조로 말해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그의 윤 대통령 비판에 환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문제 제기로 인식됐을 것 같다. 이런 말이 밥·술자리 대화에 끼게 된다. 중·조·동에는 왜 이런 지적이 보이지 않느냐는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가 말하는 ‘다른 나라 대통령’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이든, 내각책임제 국가의 총리든 백화점에서 쇼핑한다. 구글에 가서 영어 단어 몇 개를 넣어 검색하면 사진이 줄줄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재임 중에 갤러리 라파예트 식품관에서 장을 자주 봤다.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서. 갤러리 라파예트는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프랑스 백화점이다. 왜 백화점에서 쇼핑하느냐, 왜 하필 프랑스 백화점이냐는 비난을 메르켈이 받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부부는 존 루이스라는 영국의 중·상류층이 좋아하는 백화점의 단골이다. 재임 중에도 그곳 상품을 애용했다. 캐머런이 백화점 물품만 쓴 것은 아니다. 이케아에서 특유의 대형 비닐 쇼핑백에 물건을 담아 나오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나라 현직 총리 보리스 존슨은 막스 앤드 스펜서라는 잡화점에 자주 간다. 그는 2년 전 런던의 웨스트필드(한국의 스타필드와 유사한 곳)에 가서 코로나 사태로 줄어든 매출이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사마리텐 백화점 개장식에 갔다. 대주주인 루이뷔통(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나란히 섰다. 파리의 퐁 뇌프(새로운 다리) 북단에 있는 사마리텐은 16년간 영업을 중단했다가 리모델링해 재개장했다. 사마리텐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마크롱 대통령이 등장하는 사진 덕에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관광객이 그곳에서 쓰는 돈은 프랑스의 수입으로 연결된다.
영상을 보니 김씨는 노트북을 보며 윤 대통령의 쇼핑 비판 발언을 했다. 즉흥적 코멘트가 아니라 준비된 말이었다. 외국 지도자들이 백화점에 간다는 것은 단 몇 분의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했다.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게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선동 방송이 만들어진다. 허위 정보가 원체 많은 세상이기는 하지만 시민이 낸 세금으로, 공공재인 라디오 전파를 통해, 서울시장이 바뀌어도 이런 방송이 계속된다.
윤 대통령이 또 백화점도 가고, 재래시장도 가기를 바란다. 백화점의 주주, 고객, 직원 모두 우리 국민이다. 백화점 손님이 줄면 국민 살림을 걱정해야 한다. 검찰에서 ‘밥 총무’ 하던 시절에 다닌 식당들도 들러 보시라. 물가 수준을 직접 겪어 보고 주인과 손님들의 애로사항을 들어 보시라. 경호에 드는 비용을 따질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엉뚱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런 계산을 떠나 대통령도 신발을 고르고 신어 볼, 가족과 주말 나들이를 할, 반려동물을 데리고 산책할 자유인의 권리를 가진다. 상식이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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