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달의 몰락과 어른의 말
국내 개발자가 만든 암호화폐 테라(UST)와 자매코인 루나(LUNA)가 지난주 폭락했다. 일주일 사이 두 코인의 시가총액 450억 달러(57조7800억원)가 증발했다고 하니 ‘달(Luna)의 몰락’으로 불릴 만하다. 손해를 본 이들 숫자도 만만치 않다. 국내 거래소를 통해서만 지난 15일 기준 28만 명이 루나를 보유하고 있다.
언론 기사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온갖 사연이 넘친다. 전세자금을 마련하려다 월세방도 힘들어졌다는 20대, 대출금 5000만원의 절반을 잃었다는 30대 등 대부분의 사연은 집값 급등에 좌절한 20, 30대의 투자 실패기로 귀결된다. 정치권도 나섰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조속히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발언에서 시작해 관련 청문회를 열어 책임자를 국회 증언대에 세우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암호화폐 관련해 투자자 보호장치는 부족하다. 깜깜이 상장 절차와 불투명한 공시,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한탕을 노리고 상장되는 불량코인 등을 막을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암호화폐 541종이 상장 폐지됐고, 관련 투자자 피해액만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달러 등 법정통화에 가격이 연동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율도 전무하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쟁점이 많다 보니 입법도 더디다.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금융당국도 소극적이다. 암호화폐 1차 광풍이 불었던 2017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격변과 균형』에서 “정부도 최소관여 입장에서 벗어나 법제화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투자자 보호 강화만 강조되다 보니 놓치는 것도 있다. ‘피해자’로 불리는 루나 보유자 28만 명 중 적어도 10만 명은 가격 하락이 시작된 후 단기 차익을 노리고 진입한 투자자다. 금융당국 내에서는 최근 부쩍 강조되는 투자자 보호가 이런 단기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경을 넘어다니는 암호화폐를 국내 제도만으로 규율하기도 힘들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4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 “잘못된 길로 가면 잘못된 길로 간다고 분명히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다”며 “하루에 20%씩 올라가는 자산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게 (투자를 부추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 전 위원장은 퇴임 때도 “시장 과열에 대해 누군가는 얘기해야 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은 전 위원장의 말처럼 지금은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고 ‘지옥의 단타’에 나선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줄 필요도 있다. 마음먹고 한 경고가 필요한 순간이다.
안효성 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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