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조국' 감독 "잘 몰랐던 조국 사태, 일단 한 번 보시죠" [쿠키인터뷰]
“조국 사태에 대한 다큐멘터리, 어떻게 생각해?”
처음부터 조국 사태에 깊은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국민들과 검찰, 언론의 반응이 뜨겁다는 정도, 유죄가 났으니 조국 전 장관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다큐멘터리 연출 제안을 받고 ‘조국의 시간’을 읽었다. 이전에 몰랐던 정보가 주는 충격이 컸다. 재판에 참여한 증인과 검찰 조사를 받은 참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통스러웠겠다고 생각했다. 이승준 감독은 그렇게 영화 ‘그대가 조국’을 시작했다.
‘그대가 조국’(감독 이승준)은 이미 가장 논쟁적이고 뜨거운 영화다.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이 알려지던 때부터 비난과 응원이 줄을 이었다. 5000만원을 목표로 시작한 텀블벅 후원은 지난 15일 26억원을 넘기며 종료됐다.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언론 시사회 다음날인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잠깐이라고는 하나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이었던 자가, 법원의 판결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진실을 찾겠다는 건 그 자체로 언어도단”이라며 “유죄 판결 난 가족 범죄에 대한 포장을 멈추고 자중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영화는 아직 개봉(25일)도 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이승준 감독은 이처럼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니까 당연한 현상”이라며 “다만 일단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영화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과정부터 조국 전 장관과의 촬영, 사태를 판단하기보다 보여주려고 한 이유 등을 하나씩 밝혔다.
- 감독님이 ‘그대가 조국’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진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연출을 맡게 된 건가요.
“기획은 지난해 봄부터 시작됐어요. 제작자들이 ‘조국 사태로 다큐멘터리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봄부터 공유를 했고, 제가 연락을 받은 건 여름쯤이었어요. 친분이 있던 제작자들이 전화로 조국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대한 생각과 만들어야 하지 않냐고 물었어요. 전 조국 사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깊게 팔로우 하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아주 시끄럽다는 것, 유죄가 났으니 조 전 장관도 잘못한 거 아냐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죠.
연출자로서 중요했던 지점은 참고인과 증인에 대한 대목이었어요. 조 전 장관이 지인들과 멀어지고, 지인들이 겪은 이야기들이 훅 오더라고요. ‘고통스러웠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사자와 가족, 증인과 참고인들이 겪었을 고통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죠.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고 ‘합시다’라고 말했어요. 그러고 나서 물어봤죠. 조 전 장관께서 출연하시는 거냐고요. 지금 얘기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 조국 전 장관 섭외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 번에 승낙하시진 않았죠?
“처음부터 하자고 하진 않으셨어요. 아무래도 가족과 본인이 재판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세상에 나가는 걸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세요. 하지만 영화의 당위성에 대해선 공감하셨던 것 같아요. 제작자가 ‘그대가 조국’은 주장이 가득 차있고 선언적이고 공격적이고, 한쪽 이야기를 강하게 대변하는 형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 정치적 이슈를 강하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를 안 했어서 저에게 제안이 왔어요. 그럼 저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지점을 조 전 장관이 공감해주셨어요. 저를 아시거든요. 영화 ‘달팽이의 별’ VIP 시사회 때 조 전 장관이 오셨어요. 그때 인사도 하고 지난해 ‘그림자꽃’도 보여드렸죠. 제가 만드는 영화 스타일을 알고 계셔서 신뢰도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 영화에 조 전 장관의 일상을 담은 장면과 인터뷰 장면들이 여러 번 나와요. 촬영은 어땠나요?
“연출자로서 제가 필요한 장면들이 있어요. 그걸 촬영하려고 요청을 드렸죠. 일상을 담고 싶다고, 법정에 갈 때 차 안에서도 한 번 찍었으면 좋겠다고요.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주변 인물을 팔로우 하는 장면이 많은데, 조 전 장관은 못하는 내용이 많았어요. 연출자로서 변호사를 만나서 회의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잖아요. 하지만 안 되는 거죠. 조율하면서 가능한 장면 위주로 촬영했어요. 이런 촬영을 처음해보니까 낯설어하셨던 것 같아요. 이 장면은 전에 찍은 것 같다고 하시면 그때는 이래서 그런 거고 이번 건 다르다고 설명드렸어요. 어색해하면서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안하셨어요. 촬영이 끝나고 갈 때 꼭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죠.
지난 3월에 ‘그대가 조국’ 편집한 걸 보여드렸어요. 음악도 없이 스태프들과 보는 가편집본이었어요. 조 전 장관이 제 옆자리에서 보시는데 자꾸 상영관을 나가세요. ‘뻔한 얘기라 재미가 없으신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다 아는 내용인데도 그때 감정이 확 올라왔다고 하셨어요. 힘들어서 계속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고요. 책을 쓰신 학자고 인쇄 매체에 익숙하신 분이잖아요. 영화를 보고 영상의 힘을 느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감독이 왜 자꾸 찍자고 그랬는지 알게 됐다고 말씀하셨죠.”
- ‘그대가 조국’이 제작되고 공개되는 시점을 어떻게 잡았는지 궁금해요. 이미 재판이 진행된 이야기를 이렇게 빠르게 공개한 이유가 있나요.
“지난해 8월 스태프를 구성하고 이야기 방향과 기획 방향을 고민했어요. 당시 저희가 초점을 맞췄던 건 8월9일 지명되고 10월14일 사퇴할 때까지 67일이 메인이란 생각이었어요. 이 시간을 현미경으로 보듯이 타임라인을 만들고 당시를 기억하는 인터뷰를 넣는 게 처음 계획이었죠. 지금 영화처럼 재판을 다루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재판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물었죠. 설마 아무리 의도가 있어도 상식선에서 그랬겠지 싶었거든요. 정경심 교수의 대법원 판결도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어요. 어떤 결론이든 재판부에서 부담스러우니까 대선이 끝나고 진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죠. 그러면서 재판 장면이 처음 기획보다 더 풍성하게 들어갔어요. 하지만 전체 기획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어요. 재판을 통해서 그때 일어난 일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 영화 제작을 시작할 때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이렇게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잖아요. 제작 과정에서 후보로 출마하고 당선이 됐는데 그 점을 의식하진 않았나요.
“시작할 때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이제 막 정당에 들어가고 후보자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지지율이 높아지고 이재명 후보와 차이가 벌어지면서 ‘우리가 언제 개봉해야 하는 게 맞지’라는 고민을 했어요. 무한정 길게 끌고 갈 생각은 없었어요. 2022년 상반기에 개봉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영화적으로 더 풍성하게 하고 더 많은 걸 담으려면 2~3년 걸리죠. 하지만 ‘그대가 조국’은 그렇게 기획된 영화가 아니에요. 조국 사태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나는 시점에 기억이 사라지기 전 한 번 정리해야 한다는 의도에서 만들었으니까요. 그게 올해 상반기였어요.
- ‘그대가 조국’이란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이렇게 제목을 정했는지 이해되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정해진 제목이었나요.
“거의 막바지에 정해졌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부에서 일단 ‘조국’을 제목에 넣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죠. 넣는 게 낳겠다고 생각한 이후에도 수십, 수백 가지 제목을 두고 진짜 많이 고민했어요. 제목을 공식 발표하기 며칠 전에 결정된 제목이에요. 시위 당시에 ‘우리가 조국이다’라 말이 있었던 것과 비슷한 의미예요. 단순히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거죠. 사실은 출연한 분들 모두가 조국이니까요.”
- 언론 시사회에서 “조국 사태를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가요.
“저한테 가장 중요했던 건 조국 사태와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이었어요. 조 전 장관과 국회 청문회를 취재한 기자, 그리고 참고인 조사를 받은 사람, 검사와 직접 대면한 조교 등 사람들의 기억이 제일 중요했죠. 그 사람들의 얘기는 주장이나 의견이 아니잖아요. 본인들이 정확하게 느끼고 본 것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거죠. 그게 제일 중요하게 배치돼야 한다는 게 첫 번째 기준이었어요.
과연 검찰과 언론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외쳤던 공정이 그들에겐 있었을까요.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장에 나갈 때, 언론이 기사를 쏟아낼 때 그들은 공정한 룰을 지켰을까요.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건 룰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는 거예요. 일반 국민들은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딱 한 가지만 기억해요. 유죄라고요. 조국은 잘못했다고요. 조 전 장관이 나와 가족은 법리적 책임을 지고 사과도 할 거라고, 하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도 언론과 검찰이 잘못한 게 있는 것 같다고 느꼈으면 그걸 천천히 봐달라고 하셨어요. 그 점에 정확히 공감했어요.”
- 시사회 마지막에 나온 영상에서 조국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을 찍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기사도 굉장히 많이 났더라고요.
“중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찍은 분들을 조 전 장관은 지칭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 중엔 박근혜 정부 때 광화문에 나온 분들이 꽤 많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분들에게 호소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크라우드 펀딩으로 많은 후원금이 모였어요. 하루가 지날수록 금액이 계속 올라가더라고요.
“독립영화가 어렵잖아요. 원래도 어려운데 예민한 문제를 다룬 영화예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내부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펀딩을 생각보다 훨씬 잘 되면서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켜줬어요. 영화는 개봉할 때 힘이 있어야 하거든요. 배급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많은 관객이 와서 봐야 하고요. 독립영화는 자금이 부족하니까 소규모로 홍보할 수밖에 없어요. 크라우드 펀딩으로 너무 많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후원금이 아니라 영화를 보겠다는 뜨거운 마음을 준 거라고 생각해요. 안심했어요. 저희 뒤에 국민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대가 조국’이 개봉하면 다양한 관객들이 영화를 볼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보수든, 진보든,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든, 안 찍었든 상관없이 ‘그대가 조국’을 보시고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당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다시 생각해봐도 내 생각이 맞다고 느끼면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고, 아니면 아닌 것이고요. 다만 우리는 ‘여러분들이 잘 몰랐던 것들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라고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한 번 질문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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