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밥이 하늘이다

2022. 5. 1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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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실내에 들어설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벗는 게 귀찮지만 두 해 만에 여름다운 여름을 맞고 있다.

여름을 나타내는 한자 하(夏)는 '크다'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황제내경'에는 여름을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교감해 만물이 번성하고 견실해지는" 계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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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서재 바깥 목련의 잎들이 짙푸르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 때마다 사이사이 햇빛이 반짝인다. 새벽에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포근하고 따뜻하다. 반소매 티셔츠에 겉옷을 걸쳐도 어느새 어색하지 않다. 아카시아들이 풍성한 흰 꽃을 주렁주렁 매달아 온 거리의 공기가 달콤하다. 살짝 혀를 내밀면 끝이 달짝지근한 느낌이다. 전염의 공포가 낮아진 덕분에 민얼굴로 거리를 걷는 이들이 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실내에 들어설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벗는 게 귀찮지만 두 해 만에 여름다운 여름을 맞고 있다.

여름을 나타내는 한자 하(夏)는 ‘크다’라는 뜻이다. 햇빛은 자연의 비료이고 영양제이다. 이 계절에 모든 식물이 무럭무럭 자란다. 강렬한 햇빛을 품고 풀은 무성해지고 열매는 탱글탱글해진다. 이 때문에 ‘황제내경’에는 여름을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교감해 만물이 번성하고 견실해지는” 계절이라고 했다.

여름의 우리 옛말은 ‘녀름’이다. 본래 뜻은 정확지 않다. 그러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농사’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녀름 짓다’가 곧 ‘농사 짓다’였다. 조선 후기에 ‘녀름’의 발음이 ‘여름’으로 바뀌자 자연스레 열음, 즉 열매의 뜻도 머금게 됐다. 여름은 무엇보다 열매가 영그는 계절이다. 때맞춰 농사일에 힘써야 하는 시기다. 절기도 이에 부응한다.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등 여름 절기의 절반은 농사와 관련이 있고,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 등 이어진 절반은 더위와 관련 깊다. 입하의 입(立)은 ‘곧’이라는 뜻이다. 지난 5월 5일, 자연은 우리에게 여름이 올 것을 이미 알렸다. 그사이 햇살이 한층 풍부해지고 바람은 더욱 온화해졌다. 주말(5월 21일)에 다가올 소만은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들어차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선인들은 이 무렵엔 첫 보리를 베어서 작은 풍요를 누리면서 모내기를 준비하는 등 농사에 바짝 신경 쓸 때라고 말했다. 소만을 잘 보내야 가을의 풍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 온 끝에 볕 비치니 날씨도 맑고 좋다./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로 울고,/ 보리 이삭 패었나니 꾀꼬리 소리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치기도 바야흐로라/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정학유의 ‘농가월령가’)

대다수 인구가 도시에 사는 요즈음, 사람들은 농사보다 나들이와 더위에 더 신경 쓴다. 그러나 농사를 잊으면 사달이 난다. 세계화가 종말을 고하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중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식량이 곧 무기인 시대가 열렸다. 두 나라는 세계적 밀 수출국이자 해바라기씨유, 카놀라유 등 식용유의 주요 공급처이기도 하다. 전쟁은 전 세계 농산물 공급망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는 중이다. 한 달 전엔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멈추더니 지난주엔 인도가 밀 수출을 중단했다. 식용유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밀가루 가격이 올랐으며, 관련 물가가 무섭게 치솟으면서 서민들 장바구니엔 먹거리 대신에 점차 한숨이 담기고 있다.

히브리의 신은 황폐한 광야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만나를 내렸고, 예수는 다섯 덩이 빵과 두 마리 물고기만 있는 빈곤한 세상에서 모두가 넉넉히 먹는 법을 알려줬다. 밥이 곧 구원이다. 밥에는 사람의 근본 마음이 담겨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지하 시인이 “밥은 하늘”이라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이라고 노래한 이유다. 하늘을 못 모신 마음은 흉흉해진다. 식량 자급자족이 제대로 안 되는 나라에서 듬성듬성해진 판매대를 보는 사람들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닌가. 서민들 시름이 잦아들어 여름을 넉넉히 즐길 수 있도록 농업을 돌보고 물가를 챙기는 일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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