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코로나 이후를 앓는 이들을 위해

지호일 2022. 5. 1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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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되어 있다.

'이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브레인 포그(Brain fog) 증세일까.' 머릿속에 막이 서린 듯 멍한 상태로 인터넷을 검색해 코로나 후유증, 롱코비드(long COVID) 관련 정보를 찾아 읽었다.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 생활을 한 이후 과거의 우울증이 다시 악화돼 환청이 들린다는 사람, 과일에서 하수구 냄새가 날 정도로 미각·후각에 이상이 생기더니 결국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환자.

불면의 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코로나 이후를 앓고 있는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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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사회부장


뭔가 잘못되어 있다. 시곗바늘이 새벽 2시를 지날 무렵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잠드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벌써 2주일째던가. 밤의 긴 시간이 두려울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평생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문제로 고민했던 적이 드문 터라 이런 돌발적 증상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 시작은 분명 코로나19 격리가 끝난 뒤였다.

나는 두 번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20년 12월과 지난달. 추정컨대 델타와 오미크론 변이가 차례로 침투했으리라. 크게 앓지는 않았다. 잔기침과 함께 목이 며칠 아픈 수준. 문제는 7일간의 격리가 해제된 이후였다. 첫 1주일은 목이 심하게 잠겨 듣는 사람이 더 힘들어할 정도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니 그다음 찾아온 것이 불면증이다. 침대에 누워 ‘자, 이제 그만 자자’고 생각하면, 곧 형광등 스위치가 망가진 것처럼 잠들어야 할 뇌세포들이 깨어 활동을 하는 것이다. 밤새 한두 시간이나 잤는지, 아예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은 건지 모를 날들이 이어졌다. 낮 동안 머리는 띵하고, 몸은 물 먹은 솜이불처럼 무거웠다. 그간 경험하지 못해 알지 못했던 불면증의 고통은 이렇게 독했다. ‘이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브레인 포그(Brain fog) 증세일까.’ 머릿속에 막이 서린 듯 멍한 상태로 인터넷을 검색해 코로나 후유증, 롱코비드(long COVID) 관련 정보를 찾아 읽었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다. 내 증상은 약한 축에 들었다. 어느 20대 여성은 초여름 날씨에도 목을 완전히 덮는 긴팔 옷에 두 겹의 장갑을 끼고서야 외출을 한다고 했다.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 생활을 한 이후 과거의 우울증이 다시 악화돼 환청이 들린다는 사람, 과일에서 하수구 냄새가 날 정도로 미각·후각에 이상이 생기더니 결국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환자. 국민일보 사건팀이 취재한 코로나의 심리적 후유증 사례들이다. 바깥세상의 일상 회복 풍경이 이들에겐 현실감 떨어지는 TV 속 장면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개별적 롱코비드가 쌓이면 사회 전체의 보편적 롱코비드가 된다는 점이다. 확진자의 20~30%가 롱코비드를 경험한다는 해외 연구도 있다. 국내 누적 확진자가 1800만명에 근접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수백만명이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거나 겪을 수 있는 셈이다. 이미 롱코비드 이슈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또 다른 위협이자 도전이 될 거라는 경고가 나온다.

많은 전문가가 정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는 이유다. 아직 국내에선 롱코비드 관련 명확한 정보나 실증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표준화된 진단 기준이나 진료 지침 역시 당연히 없는 실정이다. 방역 당국은 지난해 12월부터 ‘코로나19 임상 기반 후유증 양상 분석 연구’에 들어갔지만 3~6개월 추적 관찰을 위한 샘플 모집도 아직 끝내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하루 수십만명씩의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 나와 확산 억제와 환자 치료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었음을 감안해도 분명 아쉬운 대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완연히 일상 회복에 접어든 모습이다. 도심의 밤거리가 들썩이고, 심야 택시 잡기 전쟁이 벌어진다. 그래도 코로나 그늘로부터의 진정한 탈출 길은 술집들이 즐비한 거리가 아니라 코로나가 몸과 마음에 남긴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이는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과 다시 올 유행에 맞서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집단적 후유증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감염병과 대면하는 건 부상당한 병사들과 허물어진 성벽을 정비하지 않고 다음 전투에 임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불면의 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코로나 이후를 앓고 있는 이들을 응원한다.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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