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밖 청소년의 새로운 '팸'.. 사고 치고 떠돌다 와도 늘 그 자리

최기영 2022. 5.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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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방금 네가 넣은 거야. 골 먹은 거지. 그치." "에이~ 목사님. 당근(당연히) 제가 넣었죠. 피파(축구 게임) 짬(경력)이 얼만데요."

이 목사는 "멋있고 능력 있는 모습이 아니라 숱하게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서든 거리에서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내 '찌질한' 모습이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회상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끌어안은 이 목사의 사역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팸'(패밀리)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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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울타리를 만들다] ③ 상처를 녹이는 용광로
이요셉(양떼 커뮤니티 대표) 목사가 16일 서울 관악구 양떼 커뮤니티 센터에서 가정 밖 청소년과 함께해 온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설마 방금 네가 넣은 거야. 골 먹은 거지. 그치.” “에이~ 목사님. 당근(당연히) 제가 넣었죠. 피파(축구 게임) 짬(경력)이 얼만데요.”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상가건물 2층에 들어서자 게임방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왁자지껄한 대화가 귀에 꽂혔다. 그중 컴퓨터 게임을 하는 청년들에게 다가가 장난을 치며 익살스레 웃기도 하고 축구 게임에 집중하는 청년에게 동네 형처럼 핀잔을 주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올해로 11년째 ‘양떼 커뮤니티’(양떼)를 목자이자 아빠처럼 이끌어 가는 이요셉(36) 목사다.

고교 1학년이던 2019년 집을 나와 ‘가출팸’(가출과 가족의 합성어)을 전전하던 연희(가명·20)씨는 이 목사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거리에서 만난 희진이(가명·20)가 교회 가면 맛있는 거 준다고 해서 갔는데 웬 ‘조폭’ 같은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게 목사님이었어요.”(웃음)

양떼의 출발점은 위기 청소년과의 만남이었다. 2011년 설립 후 이 목사에겐 밤이 낮이었고 길거리가 일터였다. 매일 자정부터 새벽까지 거리를 돌며 성매매 절도 마약매매 등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가정 밖 청소년을 보면 무작정 말을 걸었다. 배고플 땐 주머니를 열어 밥을 사주고 고민이 있을 땐 귀를 열었다. 그렇게 ‘밥 잘 사주는 동네 형·오빠’가 돼 주며 아이들과 예배모임을 만든 게 양떼다. 성경 속 ‘양무리 떼’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양아치 떼’의 준말이다. 이 목사가 직접 만들었다.

센터에서 게임하는 청년들과 장난치며 교제를 나누는 이 목사 모습. 신석현 포토그래퍼


연희씨보다 가출팸 경력이 오래된 희진씨가 노랑머리를 쓸어넘기며 “목사님 배고파요”라고 투정을 부리자 이 목사는 익숙하게 스마트폰 배달 앱을 켜고 간식을 주문했다. “솔직히 얘네들 처음 봤을 때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은 진짜 사람 된 거다”라고 하자 희진씨는 멋쩍은 듯 피식 웃었다. 영락없는 현실 부녀의 모습이었다.

오후 11시에 문을 닫는 양떼 센터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곤 하는 동석(25)씨는 6년 전 소년원에서 기독봉사단체 선우회 사역을 하던 이 목사를 처음 만났다. 세상의 시선에서 길거리 술집 소년원 가출팸 등에 머무는 아이들은 가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불안전하고 위험한 이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목사에겐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그리운 아이들’일 뿐이다.

거친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지고 몸 곳곳엔 갖가지 문신이 거리의 삶에서 얻은 훈장처럼 새겨진 아이들이 쉽게 마음 문을 열 리 없다. 이 목사는 “멋있고 능력 있는 모습이 아니라 숱하게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서든 거리에서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내 ‘찌질한’ 모습이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회상했다.

왜 이곳에 오느냐는 질문에 연희씨는 “목사님이 착해요. 의외로”라며 웃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끌어안은 이 목사의 사역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팸’(패밀리)을 선물해준다.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20여명이 모이는 예배는 ‘상처를 녹여주는 용광로’ 같은 시간이다. 희진씨는 찬양 ‘꽃들도’가 자신의 ‘최애 띵곡’(가장 좋아하는 노래)이라 했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 목사의 말이다. “떠돌다 와도 사고를 치고 와도, 때로는 뒤통수를 치더라도 늘 그 자리에 오면 있어 주는 거. 그게 가족 아닐까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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