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수도공고 장동원 교장의 학교 혁명

김동호 2022. 5. 1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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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90.2%, 기업 앞다퉈 선발
마이스터고 도입 12년 만의 성과
실무에 강한 교육 더욱 강화해야
김동호 논설위원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수도전기공업고 견학은 경탄의 연속이었다. 놀라운 경험은 축하방으로 이름을 바꿔 단 교장실의 문을 열 때부터 시작됐다. 명칭을 바꾼 이유부터 들어봤다. 학생이 취업할 때마다 파티를 열고, 상을 받을 때 축하하는 자리다. 음료와 과자를 내놓고 벽에 걸린 전광판엔 이 학교 장동원 교장이 입력한 축하 자막이 흐른다. 학생이 주인공 되는 날이다.

신선한 느낌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중충한 복도는 미술관이 돼 있었다. 고흐를 비롯해 유명한 그림이 걸린 복도 공간은 번듯한 미술관의 품격을 뿜어냈다. 컬러 복사판이 아니라 복원작가가 그린 고급스러운 모작을 활용했다. 학생들은 재학 중 저절로 이 작품들과 친해진다. 복도 벽면은 안전을 위해 환하고 매끈한 마감재로 개선했다. 학교 분위기가 저절로 밝아진다.

수도공고 복도에 고흐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 학교 강당은 시리우스 홀이고, 체육관은 정약용체육관, 도서관은 혜윰터라는 이름을 가졌다. 전교생이 공모를 통해 작명했다. 시리우스는 밤하늘에서 북두칠성보다 더 밝은 별로 꼽히는 큰개자리의 대장별이다. 학생들에게 시리우스처럼 빛나는 별이 되라는 취지다. 다산 정약용은 18세기를 살다 간 인물이지만,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실학의 선각자였다. 수도공고 학생들에겐 정약용만큼 좋은 롤모델이 없는 셈이다. 혜윰은 '생각'이라는 우리말에서 비롯됐다.

새로운 발상은 710그루에 달하는 교내 모든 나무에 이름표 달기로 이어졌다. 요즘은 나무가 울창해도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름표를 붙이면 “그 나무”가 아니라 “박태기나무”“라일락”처럼 구체적으로 부를 수 있게 된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의미가 부여된다. 교내 테니스장은 방과 후 일반인에게 대여된다. 이런 시설 업그레이드는 변화의 표피에 불과하다.
이 학교의 변화는 2018년 장 교장이 부임하면서 본격화했다. 한국전력 간부 출신인 그는 학생이 3년 동안 내 집처럼 머물고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겨울엔 바람이 숭숭 들어오던 창문을 2중 창호 시스템으로 교체하고, 낡았던 강당은 시리우스라는 명칭 부여와 함께 의자도 양질의 제품으로 바꿨다. 이 강당에선 배달의 민족 김봉진 창업자의 강연도 있었다. 이 학교 전자과를 졸업한 그는 강연 며칠 후 후배들에게 태블릿PC 600개를 선물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 역시 이 학교 졸업생이다. 그의 동상은 학교 앞에 자리 잡고 있다. 개교 98년 역사를 거치면서 걸출한 인물이 적지 않다.
축하방 화이트보드에는 장 교장의 취임사부터 학교 비전과 목표까지 그의 청사진이 치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취임사는 단 두 문장이었다. “학생들이 행복해서 선생님이 즐거운 학교, 선생님이 행복해서 학생들이 즐거운 학교!” 수도공고는 장 교장의 취임사대로 됐다. 공부하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가 됐다. 교내에선 학생들이 환한 웃음으로 장 교장에게 달려들며 인사를 했다. 장 교장은 “안녕”이라며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학교 경영자로서 그의 미션 역시 실현되고 있다. “미래 에너지 산업을 이끌어갈 건강하고 행복한 인재 육성!” 이 학교 취업률은 90.2%. 취업처는 더 놀랍다. 유수한 중견·중소기업은 물론이고 한국전력·한수원·가스공사 등 공기업은 물론 삼성전자·포스코·현대오일뱅크에도 취업한다. 2학년 때 입도선매 되는 학생도 있다. 왜냐고? 실무 위주로 교육해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지원자가 많아 선발시험을 치른다. 오히려 여기서 떨어지면 일반 고교에 배정된다.

이런 변화는 2010년 농고·공고·상고 중에서 요건을 갖추면 마이스터고로 전환해 기업인 출신이 교장으로 부임할 수 있도록 하면서 가능해졌다. 지금 기업은 실무에 투입할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청년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 수도공고 같은 실용적인 학교가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장 교장이 증명한 학교 혁명은 계속돼야 한다.

장동원 교장이 미술관처럼 바뀐 복도에 서 있다.
강당을을 시리우스 홀로 바꾸었다.
학교 정문에 취업률 90.2%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주호 준위의 동상이 학교 앞에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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